1막. 입사

이제까지와는 다른 삶

by 안드레아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고 있었다. 이제껏 부모님과 떨어져 멀리 가본 것은 대학교 때 친구들과 졸업여행이랍시고 윈난 성과 쓰촨 성에 일주일 놀러 갔다 온 것이 전부다. 어릴 적부터 몸이 허약해서 병치레가 잦았다. 게다가 중학교 때는 폐렴까지 걸려 한동안 독한 약을 먹으며 치료를 받았던 경험도 있다. 엄마는 그런 그녀를 늘 걱정했으며, 그녀의 건강을 위해 음식이며, 약이며 신경을 많이 써왔다. 제이는 고등학교 때까지 늘 엄마의 자상하고 세심한 보살핌을 받으며 온실 속의 화초처럼 곱디곱게 자라온 것이다. 그러나 엄마에 대한 고마움과 엄마를 많이 의지하는 것에 반하여 언젠가부터 집을 떠나 멀리서 홀로 독립하여 살아보고 싶다는 욕구가 마음속에 자라고 있었다.


그녀의 나이 올해 스물넷. 1990년생 4월생. 작년 6월에 대학을 졸업하기 몇 달 전부터 외국계 회사를 위주로 원서를 썼다. 몇 군데 회사에 면접을 봤다. 실제로 면접시험에 응하기 위해 각 회사를 찾아 가보니 생각했던 것과 많이 달랐다. 시내 한복판의 제일 높은 빌딩인 Citic Plaza(中心广场,쭝신광창)에 위치하고 있어 기대하며 찾아갔던 한 일본 J항공사는 정문에 들어서면서부터 면접보고 싶은 욕구를 싹 가시게 만들었다. 사무실 분위기가 어쩐지 어수선했고 무엇보다 입구에 앉아 있던 안내 여직원부터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틱틱대는 말투며 공손하지 못한 태도가 회사의 첫 이미지를 완전히 망치고 있었다.


일단 면접을 보긴 했지만 나중에 친구한테 들은 바로는 J항공사의 경영 상태가 악화되어 직원들이 많이 나갔고, 임대료가 비싼 쭝신광창에 버티지 못하고 좀 싼 곳으로 이사를 가기 직전이라는 것이었다. 또 한 곳은 미국계 회사였는데 알아보니 회사는 분명 굴지의 이름난 미국 회사인데 직원 복지나 시스템은 중국 회사와 별 차이가 없었다. 그 밖에 몇 군데 중국 회사에 합격했지만 그다지 마음이 가지 않았다. 시간은 자꾸 흘러가는데 정작 마음에 드는 직장을 찾지 못하고 착잡한 심정으로 지내고 있던 차.


하. 눈에 띄는 직원 모집 광고를 발견했다. 최근 들어 자주 들여다보는 대학교 취업게시판의 한 구인 광고였다.

*Daewoo International Guangzhou Co., Ltd.


*Job Description:

Steel raw materials(Iron ores, scraps, pig irons etc.)/Steel products/ Non-ferrous Metals(Copper,Aluminium,Nickel,Lead, Zinc)/ Chemicals/Coals/ Electronic products/ Machineries etc. Import/Export and Entrepot Trading.


Daewoo? 어디서 들어봤더라? 그래, 대우자동차! 맞아, 자동차 브랜드 중 하나였지. 한국 회사구나. 제이는 바로 레주메를 접수시켰고 연락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학교 친구들 사이에서 한국 회사는 좋은 이미지와 나쁜 이미지를 함께 지니고 있었다. 한국 회사는 외국 회사답게 급여가 괜찮은 편이었다. 물론 평균적으로 볼 때 일본 회사나 미국계 회사보다 낫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월 500~1,000 rmb는 더 준다고 들었다. 안 좋은 이야기는 한국 매니저들에 대한 것이다. 한국 매니저들은 중국 직원들을 무시하고 함부로 대할 때가 많다는 것이다. 아마 자기네들이 선진국이고 우월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나 보다. 대우는 그런 회사가 아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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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가 울렸다.


“Hello? May I talk to Juliet? This is Kim from Daewoo Int’l Guangzhou. After receiving your resume, I called you. Can I see you for an interview?”


전화 속의 목소리는 적당히 낮은 톤의 듣기 좋은 음성이었다. 그가 한국 사람일 거라 생각했지만 영어 발음만 듣고서는 서양 사람이 아닐까 잠시 착각했다. 깔끔하고 정확한 미국식 영어를 구사했다. 대우인터내셔널 광주무역법인의 매니저라고 자신을 소개한 남자는 다음 주 화요일 오전에 시간이 되느냐고 물었다.


대우인터내셔널의 사무실은 티엔허(天河)에 위치해 있었다. 티엔허는 광저우에서 외국인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곳 중 하나이다. 외국계 회사 사무실들이 밀집해 있고 집값과 상가 등 임대료가 꽤 비싼 지역이다. 지금은 주쟝 (珠江: 광저우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강)쪽에 국제금융센터가 들어서 사무실 빌딩으로는 제일 높지만, 그 전까지만 해도 티엔허의 Citic Plaza(中信广场:쭝신광창)가 83층으로 제일 높았었다. 대우인터의 사무실은 쭝신빌딩 바로 옆에 있는 China Shine Plaza (耀中广场:야오중광창)였다. 어떤 친구들은 티엔허에 위치한 쭝신빌딩이나 야오중빌딩에 자기 회사 사무실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뿌듯해하곤 한다. 그만큼 업무 환경이 깨끗하고 물이 좋다는 거다.


- 제이 양은 혹시 외국에서 학교를 다닌 적이 있나요?


- 아닙니다.


- 호, 그런데 발음이 상당히 좋으시네요. 공부 열심히 하셨나 봐요.


- 한국과 한국 회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 한국은 비록 땅이 작고 천연자원이 부족한 나라지만, 한국 사람들은 아주 근면하고 똑똑해서 전쟁으로 폐허가 된 나라를 단숨에 산업화시키고 부유한 국가로 만들었습니다. 저는 한국이 이미 선진국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한국 사람들이 일하고 있는 한국 회사 역시 세계 곳곳에서 서양 강대국의 다국적 기업들과 경쟁하며 좋은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직장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또 듣기로는 급여도 괜찮은 편이라고 하구요. 하하.


- 키가 상당히 크시네요. 실례지만, 이력서상으로는 광저우가 고향으로 되어 있는데 혹시 북방 쪽과 관련 있는 건 아니에요? (웃음)


- 아니에요. 광동 사람입니다. 저의 집안이 실은 커자(客家: 중국 남쪽에 기반을 두고 상업에 능했던 사람들을 일컬음)인데요. 저는 커자말은 못합니다. (웃음)


그랬다. 제이는 여느 중국 남방 여인들과는 달리 키가 컸다. 게다가 광동의 뜨거운 햇살 아래 검게 그을린 많은 사람들과 달리 유독 피부가 하얀 편이었다. 그녀의 눈은 흔히 중국에서 볼 수 있는 쌍꺼풀이 없었다. 쌍꺼풀이 없으면 으레 눈이 작게 마련인데, 그렇지가 않았다. 쌍꺼풀 없이 커다란 눈. 그리고 눈을 깜빡일 때마다 도드라져 보이는 긴 속눈썹. 면접관은 아마도 그녀의 출중한 영어 실력 이상으로 그런 그녀의 외모에 자연히 눈길이 끌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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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휴, 속 시원하다.

제이가 말했다.


- 와, 속이 후련하다.

옆에서 같이 면접을 봤던 사람도 한 마디 했다. 알고 보니 같은 학교 출신이다.


저, 다들 이것도 인연인데 우리 시간 되면 얌차나 하러 가자.


* 얌차 (饮茶:표준어는 인차라고 발음하지만, 광둥어로는 얌차라고 한다. 본래 차를 마신다는 뜻이지만, 실제로는 차를 마시면서 광동의 맛난 딤섬 등을 같이 먹고 가족 혹은 친구끼리 담소를 나누는 광동지역 특유의 문화이다.)


화남이공 대학에 다닌다는 남자가 자기가 안다는 얌차 식당으로 가자고 제안했다. 어차피 다들 점심때가 다 되었기 때문에 함께 면접을 본 다섯 명은 티엔허베이루(天河北路)에 있는 한 식당으로 가기로 했다. 식당은 티엔허베이루의 쨔이구오지호텔(嘉逸国际酒店) 옆에 있는 위징시엔 이라는 커다란 광동 요릿집이었다. 식당 안은 이미 얌차하러 온 손님들로 가득 차 있었다. 한 테이블당 5~10명이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이 한 30개 이상 들어선 넓은 홀에 손님들이 그득그득 들어차 저마다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하긴 이미 시간이 이렇게 됐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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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는 특히 얌차를 좋아한다. 주말에 10시를 넘겨 느지막이 일어나서 엄마와 아빠 혹은 동네 친구들과 집 근처의 얌차집을 향한다. 푸얼차를 시키고 각자 먹고 싶은 딤썸을 세 개쯤 시킨다. 제이는 특히 닭발을 즐겨 먹는다. 광동 사람들이 워낙 좋아하는 요리여서 어려서부터 많이 먹어온 탓도 있지만, 닭발은 여자들에게 비장의 무기다.


닭발은 피부에 좋다는 콜라겐이 듬뿍 들어있기 때문이다. 하하. 제이는 가끔 나중에 돈을 벌면 자기만의 얌차집을 하나 운영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규모가 크지 않아도 좋다.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여유로운 시간에 와서 마음껏 마시고 먹고 왁자지껄 이야기를 나누고… 혹은 신문을 보고나 좋아하는 소설을 읽거나… 제이는 자기 자신이 그런 여유를 누리는 걸 좋아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삶의 여유를 누리는 모습을 보는 걸 좋아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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