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본사의 영민 그리고 중국법인의 제이
“喂你好?广州大宇。웨이,니하오? 광쩌우다위” (여보세요?안녕하세요?광저우대우입니다.)
“Can I talk to Jay?” (제이와 통화할 수 있을까요?)
“Speaking. Who is this? ” (전데요. 누구세요?)
오전 9시 25분. 철강원료팀의 주영민이 광주무역법인의 제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철강 반제품 빌렛 12,000톤 판매 관련 상의를 하기 위해서였다.
“아, 제이씨 안녕하세요? Steel Raw Materials Team의 주영민입니다.”
“아, 네. Mr. Joo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어요?”
“요새 무지 힘들어요. 장사 안 돼서. 하하. 광저무역법인은 어때요?”
“저희도 참 힘드네요. 특히 우리 본부 매출이 없어서 걱정이에요. 본사에서 좀 도와주세요!”
영민이 제이를 찾은 것은 러시아산 빌렛 재고 12,000톤을 판매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이 재고는 러시아에 있는 것이 아니고 현재 중국 장자강시에 있다고 했다. 영민이 속한 본사 철강원료팀은 이미 각 담당자별로 대련, 심양, 북경, 청도, 상해, 광주, 하문, 산두의 지사 혹은 법인에 연락을 취해 판매 협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현재 본사가 줄 수 있는 Offer (공급 견적) 가격은 USD 325/mt CFR Southern China main port. 즉 중국 남부 주요 항구의 도착도로 톤당 미화 325달러 수준이었다. 제이는 이 건에 대해 바로 담장 주재원인 대니스 과장에게 보고했고 대니스는 즉시 광동 지역과 홍콩의 철근 생산 업체와 접촉하여 빌렛 판매 협의를 해보라고 지시했다.
대니스에 따르면 현재 동아시아 시장 상황으로 볼 때 도착도 325 달러면 시세보다 5불 이상 저렴한 가격을 보여지기 때문에 충분히 가격 경쟁력이 있다는 것이었다. 제이는 기존 빌렛 바이어 리스트 내의 잠재 수요가 군을 비롯해서 인터넷 조회를 통해 신규 바이어를 찾기 시작했다.
오후 2시 10분 경.
오전부터 빌렛 바이어들과 쉴 새 없이 전화 통화와 이메일을 주고받았다. 관심을 보이는 업체들이 몇 군데 있었으나 가격차이가 났다. 우리가 제시한 가격이 중국 본토에서는 아직 좀 비싸게 여겨지는 것 같았다. 제이는 조바심이 났다. 12,000톤이면 390만불(약 40억원 상당)어치 계약이 된다. 제이의 올해 연간 매출 목표가 2천만 달러인데 이 한 건이면 매출 목표의 20%를 달성할 수 있었다.
그 순간이었다. 제이의 휴대폰이 울렸다. 홍콩의 유일한 철근 생산업체인 윙 스틸의 구매 담당자인 해리슨한테서 온 전화였다.
“하이, 제이. 그 물건 아직 살아 있어요? 저희 사장님하고 상의해봤는데 우리가 USD 323/mt CFR Hongkong으로 구매할 수 있어요. 빨리 본사와 협의해서 입장 받아주세요.”
해리슨은 급한 듯 용건만 끝내고 전화를 끊었다. 제이는 바로 대니스에게 보고하고 윙 스틸의 가격 조건을 써서 본사에 이메일로 전달했다. 그리고 바로 본사 담당자인 영민에게 전화를 걸었다.
“헬로우, Mr. Joo? 제가 방금 메일 보낸 거 혹시 확인하셨어요?”
“오, 제이, 봤어요 봤어. 323불이네요. 흠, 어쩌죠. 10분 전에 북경 바이어한테서 같은 가격으로 Bid(*공급선의 가격이 담긴 Offer에 대한 바이어의 공식 카운터 가격조건)가 왔어요. 혹시 1불만 올릴 수 있으면 좋을 텐데..”
“324불이요? 324 달러 받으면 바로 끝낼 수 있나요?” 제이는 확실한 입장이 듣고 싶어 분명한 어조로 확인 질문을 했다.
“네, 30분 드릴 테니 그 안에 네고해서 324불 받아 주시면 윙 스틸 향으로 계약할게요.”
제이는 윙 스틸의 해리슨과 바로 통화를 했고 해리슨은 자신의 보스인 오너 사장에게 보고했다. 해리슨의 전화를 기다리는 그 짧은 시간이 제이로서는 처음 느껴보는 긴장감과 흥분으로 다가왔다.
10여 분 정도나 흘렀을까. 해리슨한테서 다시 연락이 왔다.
“제이, 324 달러 Confirm 합니다. 바로 계약서 준비해주세요.”
아! 해냈다. 드디어 첫 계약을 그것도 400만 불짜리 계약을 따냈다. 제이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대니스에게 보고하고 본사에 바로 연락했다. 대니스가 다가와 “Congratulation!!”이라 말하며 제이를 크게 격려했다. 대니스는 제이의 자리를 지나 곧장 법인장실로 보고하러 들어갔다. 대니스의 발걸음도 무척이나 가벼워 보였다.
철강원료팀의 주영민은 메일로 계약서 초안을 보내왔다. 메일 내용을 보니 계약 조건에 대한 확약과 더불어 본사에서 홍콩 수요가(바이어) 방문을 위해 출장을 오고자 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이번에 계약이 된 윙 스틸과의 미팅이 주요 목적이었고 철근 바이어 몇 군데도 같이 만나고자 한다고 씌어 있었다.
홍콩 출장
제이는 홍콩에 친척 할머니가 사시기 때문에 이따금 놀러 오곤 했다. 그러나 이렇게 사회인이 된 후 일로 홍콩을 방문하게 되니 느낌이 좀 달랐다. 항상 캐주얼한 차림으로 편하게 놀러 오던 곳인데 지금은 까만 스커트에 하얀색 블라우스를 입고 긴 머리는 단단하게 말아 올려 고정시켰다. 캐리어를 끌고 광저우 동역에서 기차를 타고 약 2시간 정도 걸려 홍콩의 구룡역에 도착했다.
홍콩 진입을 위해 출입국 심사대 앞에 늘어선 사람들 뒤에 섰다. 홍콩은 이제 중국의 영토로 귀속되었지만 제이는 홍콩에 올 때마다 언제나 외국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출입국 심사를 받으려고 줄 서 있는 사람들은 국적도 인종도 너무나도 다양한 그야말로 인간시장의 다름 아니었다.
앞줄에 서양인 부부가 아이들 셋을 데리고 서 있었는데 위의 둘은 여자 아이들이었고 엄마가 안고 있는 아기는 아들로 보였다. 마치 아기 용품점의 포스터에서 본 어린이 모델처럼 속눈썹이 진하고 길디길며 눈망울이 얼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도 큰 인형 같은 아이들이었다. 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자신이었지만 이다음에 아기를 갖는다면 부디 눈이 예쁜 아기가 태어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하철을 타고 센트럴 역에서 내렸다. 언제 와서 보아도 이곳은 고층빌딩이 숲을 이룬 도시 중의 도시, 바로 홍콩의 중심가다웠다. 거리는 누군가 매일 치우고 쓰는 티가 나는 듯 반질반질하고 깔끔한 모습이었다. 본사 출장자를 만나 첫 계약을 따낸 바이어를 찾아가는 이 길에서, 제이는 살짝 드는 긴장감과 홍콩만 오면 스멀스멀 올라오는 들뜬 감정이, 투명한 물에 퍼지는 잉크처럼 번져 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