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막. 샤오탄(小谭)

MLM vs 피라미드

by 안드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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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오탄(小谭)

어제는 샤오탄(小谭)이 선물을 보내왔다. 그와는 이미 헤어졌지만 매년 생일이 되면 그는 제이에게 선물을 보내온다. 어김없이. 샤오탄은 지금 여자 친구도 있다. 제이는 그 여자 친구를 잘 알고 있다. 왜냐하면 그의 여자 친구는 제이의 학교 후배이므로. 그것도 과 후배.


샤오탄과 제이는 학교 노래 모임에서 만났다. 둘 다 노래를 끔찍이도 사랑했다. 샤오탄은 노래를 잘 했다. 그냥 잘 하는 정도가 아니었다. 그의 목소리는 낮은 톤의 맑고 부드러운 음색을 지녔다. 평소에 그냥 하는 말도 감미로왔고 기분마저 행복하게 만들곤 했다. 그가 노래할 때면 마치 발라드 가수가 그녀만을 위해 노래를 불러주는 듯했다. 한 곡을 부른 후에도 여운이 남아 한 곡으로 끝낼 수 없었다. 제이는 매번 한곡만 더. 한곡만 더. 하며 샤오탄의 노래를 다시 청해 듣곤 했다.


窗外阴天了 音乐低声了 창밖이 흐려지고 음악소리는 잦아들고
我的心开始想你了 내 마음은 너를 그리워하려 하지
灯光也暗了 音乐低声了 등불도 어두워지고 노랫소리는 잦아들고
口中的棉花糖也融化了 입 속의 마쉬멜로우도 녹아들고
窗外阴天了 人是无聊了 창밖은 흐려지고 사람은 무료해지고
我的心开始想你了 내 마음은 너를 생각하려 하네
电话响起了 你要说话了 전화가 울리고 너는 무슨 말인가 하려 하지
还以为你心里对我又想念了 난 아직 네 마음이 나를 그리워하는 줄 알았는데
怎么你声音变得冷淡了 네 목소리가 어찌 그리 차갑게 변해버렸는지
是你变了 是你变了 너 정말 변한 거니 너 정말 변한 거니
灯光熄灭了 音乐静止了 등불은 꺼지고 노랫소리는 멈추고
滴下的眼泪已停不住了 흐르는 눈물은 그칠 줄을 모르고
天下起雨了 人是不快乐 비가 내리기 시작하네 사람은 우울해지네
我的心真的受伤了 내 마음은 정말 상처입었지

(歌手가수: 王宛之 wangwanzhi) 歌名곡명:我真的受伤了 워쩐더쇼우샹러)


제이가 무척 좋아했던 노래였다.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 않던 그 노래. 샤오탄은 제이가 원하면 몇 번이고 그 노래를 불러주곤 했다.


제이가 대학교 2학년 때 (겨울 방학 때) 하루는 샤오탄이 이틀만 시간을 내달라고 했다. 꼭 보여주고 싶은 것이 있다면서.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을 내기로 하고 그를 따라나섰다. 지하철을 타고 우리는 하이주광창 근처에 있는 비교적 깔끔하게 생긴 20층짜리 건물로 들어섰다.


- 샤오탄: 안녕하세요?


- 낯선 사람들: 샤오탄, 안녕하세요? 친구분 모셔 왔네요~~ (웃음)


건물 15층에서 엘리베이터를 내리자마자 우측 정면에 보이는 회사에 들어가자 유리문 앞에서 나오던 젊은 여자들이 샤오탄을 향해 반갑게 웃으며 인사했다. 제이는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이건 뭐야. 왜 이렇게 사무실이 넓을까. 사람은 또 왜 이렇게 많은 거야. 아마도 건물의 한 층의 절반을 다 쓰고 있는 것 같았다. 어림잡아 50m쯤 될까. 사무실은 길이 방향으로 단거리 전력질주를 할 수 있을 만큼 길어 보였다.


제이와 샤오탄은 거의 떠밀리다시피 하며 넓은 사무실 측면에 일렬로 늘어선 방 하나에 구겨 넣어졌다. 입구 쪽에서 시작하여 세 번째 방에 들어간 것이다. 방 안에는 이미 예닐곱 명의 남녀들이 앉아 있었다. 제이네와 함께 들어온 사람들이 약 서너 명. 사람들은 원탁 테이블 옆에 앉도록 되어 있었는데 샤오탄은 제이를 앞줄에 앉히고 자신은 뒤쪽에 서 있었다. 가만 보니 그곳을 처음 간 사람들은 모두 원탁 주위에 앉았고 그 사람들을 데려온 사람들은 뒤쪽에 서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이 각자 자기 자리를 잡고 앉거나 서 있게 되자 앉아 있던 한 사람이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MLM. 혹시 들어보신 분 있으세요?"


원탁 테이블 안쪽에 앉아 있던 회사 직원인 듯한 사람이 간단히 자기소개를 하고 서두를 꺼내며 이렇게 물어보았으나 사람들의 반응은 다소 시큰둥했다.


Multi-Level Marketing


바로 그때였다. 제이의 왼쪽 편에 앉아 있던 여자 하나가 사나운 표정으로 뒤쪽에 서 있던 다른 여자에게 무어라 무어라 몇 마디를 던졌다.


야, 너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어?

미안해. 샤오왕(小王), 잠시만 앉아 있어봐. 30분만 있으면 다 끝나.

30분은 무슨? 짜증 나! 이런 거!!!


순간 분위기는 험악해졌고 방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처음 서먹하고 조용하던 분위기는 사라지고 그곳에 처음 온 사람들과 그들을 그곳으로 데리고 간 지인들 간의 실랑이가 여기저기 벌어졌다. 설명을 하던 회사 측 직원은 샤오왕라 불리던 그 여자를 만류하며 조금만 더 앉아 있다 가라고 권유했으나 여자는 막무가내였다. 결국 여자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 나가버렸다. 그 순간엔 이미 제이도 이것이 어떻게 된 상황인지 알아차리고 있었다.


피 라 미 드


하지만 제이는 자리를 뜨지 않았다. 샤오탄이 자기를 어디로 데려왔는지 알게 되었고 그래서 가슴이 쿵쾅거리며 긴장이 되었지만 그냥 아무 말하지 않았다. 뒤를 돌아 샤오탄을 한 번 쳐다보았다. 그도 제이를 마주 보았다. 그러나 이상하리만치 그의 눈빛은 차분해 보였다. 아니 오히려 눈이 빛나 보였다고 해야 할까. 샤오탄은 제이에게 말없이 이야기하고 있었다. 자신을 믿어달라고. 그리고 나쁜 일은 없을 거라고.


"여러분, 많이 놀라신 분도 계실 거예요. 지금 여러분은 이곳이 어쩌면 여러분 마음속에 생각하고 있는 그런 곳이 아닐까 걱정하고 있을지 모르겠네요. 하지만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이곳은 여러분께 결코 해가 되는 곳이 아니라는 겁니다! 여러분을 이곳으로 모시고 온 친구를 보세요. 여러분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닌가요? 왜 그분들이 여러분을 여기에 모시고 왔는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판단은 조금 나중에 해도 결코 늦지 않습니다."


직원이 장황하게 말하는 것을 듣는 가운데 제이의 머리 속에는 수백수천 가지의 생각이 마치 영화 매트릭스 한 장면의 CG처럼 휙휙 지나쳐갔다. 그리고 생각의 꼬리를 물고 제이의 가슴은 차분했다가도 갑자기 뜨거워지고 쿵쾅거리게 되었다. 그러다가 다시 가슴을 가라 앉히고. 또다시 뜨겁게 달아오르고. 마음을 다잡을 수 없었지만 어쨌든 끝까지 한 번 들어보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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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제이가 처음으로 커스터머를 데리고 오는 날이다.


- 아,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2주 전에 샤오탄과 MLM 회사인 Guangzhou Pingli 유한공사 (广州平利有限公司)에 처음 와서 이틀 간의 설명회에 참석한 후 제이는 회사를 다니기로 결심했다. 아직 이런 회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썩 좋지 않지만 잘 생각해보면 정말 획기적인 마케팅 방법이 아닐 수 없었다. 하버드 대학원생들이 미국 대공황 당시에 괜히 이런 걸 만들어냈을까. 그 머리 좋은 사람들이.


제이가 오늘 처음으로 데리고 올 사람은 학교 후배이다. 가장 친한 후배라고까지는 말 못해도 그럭저럭 자주 밥도 먹고 같이 다른 사람들과 영화도 가끔 보러 가고 베이징루에 가서 쇼핑도 같이 하고 그러는 사이다.


그 후배의 영어 이름은 에린(Erin). 당연히 중문 이름이 있지만 학교 다닐 때에 영문과 학생들은 원래 이름보다 영어 이름을 많이 쓰곤 했다. 일부러 영어 잘 한다고 티 낸다기 보다는 영어 이름이 서로 쓰기에 편했던 것 같다.

에린은 이쁘고 늘씬하다. 항상 주변에 남자들이 넘쳐난다. 게다가 성격도 그만하면 인물값 한다는 여자애들보다 훨씬 나은 편이다. 사실 남자애들한테도 잘 하지만 여자 동기들이나 언니 선배들한테도 깍뜻하고 친절해서 에린을 싫어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샤오탄도 에린을 알고 있었다.


한 번은 샤오탄에게 에린 같은 스타일이 어떠냐고 물어보았다. 그는 “ 어, 에린 예쁘지. 성격도 좋고. ” 제이는 에린이 예쁘고 성격도 좋은 괜찮은 여자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자기 남자 친구가 어떻게 평가하는지 직접 듣고 싶었던 것이다. 샤오탄의 입에서 막상 좋은 평가가 나오자 제이는 역시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조금은 서운한 느낌도 약간 들었다. 그렇지만 샤오탄이 담백하고 간단하게만 말할 뿐이었다는 데서 약간의 위안이 되었다. 그래도 제이는 다시 한 번 물었다. “ 남자들이 좋아하지? 에린 같은 스타일.”

그는 웃었다. 제이를 향해 씨익 웃었다. 그리고 더는 말이 없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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