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광석 트레이딩
샤먼(厦门Xiamen)에 도착했다. 제이는 푸지엔(福建)성이라면 사실 푸조우(福州)를 빼놓고는 와본 적이 없다. 샤먼은 큰 도시는 아니지만 거리가 잘 정돈된 느낌이고 구랑위(샤먼 앞바다에 위치한 작은 섬으로서 외지인들이 자주 찾는 관광 명소임)를 끼고 있는 샤먼 앞바다와 근처의 전경이 아름답다고 들었다. 이번엔 출장으로 왔기 때문에 샤먼의 정취를 제대로 느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촬리가 지난번에 묵었던 호텔이 바다가 보이고 깨끗하다며 추천해주었다. 호텔에 도착하여 차를 내렸다. 과연 촬리 말대로 바로 코앞이 바다였다. 그러나 바다 하면 으레 떠오르는 탁 트인 전경은 아니었다. 어쩌면 큰 강이 앞에 있는 것과도 같은 느낌이었다. 왜냐하면 바로 눈 앞에 구랑위 섬이 보였기 때문이다. 망망대해가 눈앞에 펼쳐져 있는 것이 아니었다. 빽빽이 들어선 나무와 군데군데 자리잡은 별장 그리고 깎아지른 절벽들. 눈으로 섬을 왼쪽에서부터 오른쪽까지 천천히 쭈욱 훑어나갔다. 아, 저건 뭘까. 하얗고 커다란 저 것은? 시선을 멈추고 좀더 정성을 들여 절벽 위에 우뚝 서 있는 형체를 살폈다.
석상이었다. 높이가 30m는 되어 보이는 명나라 때의 충신 정성공의 입상이었다. 관광지 엽서 같은 데서 볼 수 있을 법한 풍경. 제이는 시간이 되면 배를 타고 구랑위로 넘어가 저기 석상에 한 번 가까이 가서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저러나 이번 출장에서는 필히 한 건 해야 하는데. 제이는 벌써 광주무역법인에 입사한 지 5개월이 되도록 제대로 된 오더(계약)를 해보지 못해 조금은 불안한 느낌이 있었다. 내일 오전 9시 미팅으로 잡혀 있는 수요가는 ‘샤먼 데코’ 라는 곳으로 푸젠 성에서는 ‘샤먼 지앤파’ 다음가는 큰 트레이더였다. 주로 철강재 내수 및 수출입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인데 최근 우리와 인도산 철광석 수입 건으로 자주 연락하고 있는 중이었다.
제발 이번에는 가격이 좀 맞았으면 좋겠다. 최근 들어 철광석 시황이 완만하게 오르고 있으니, 데코 입장에서는 적당한 물건을 사고 싶어 할 것 같긴 한데. 아, 그 유 총경리는 너무 조심스럽단 말야.
제이는 데코의 유 총경리 얼굴을 떠올리며 조바심을 느꼈다. 근 몇 달 간 공을 들여 본사에서 보내준 인도산 철광석 오파를 가지고 샤먼 데코에 팔아보려고 애를 써왔다. 한 번은 가격이 톤당 1불 차이로 거의 성사되는 듯했는데 다른 중국 지사의 수요가 측에서 이미 본사 오파를 컨펌해버려 첫 오더 기회를 날렸다. 또 한 번은 서로 가격까지 정확히 맞추었지만 Payment 최종 정산 방식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카고를 놓쳐버렸다. 데코는 인도 공급선을 믿지 못해 자꾸만 최종 정산시, 중국 Inspection 기관인 CIQ 검사 결과를 적용하자고 주장하는 바람에 선적항의 Inspection 결과를 Final로 수용하겠다는 다른 중국 지사 수요가에 계약을 뺏기고 말았다.
철광석 Biz는 정말 우리가 하기에 너무 어려운 아이템이 아닐까. 우리가 광산을 가진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지분 투자가 일부라도 들어간 데도 없고. 이건 뭐 매번 Back to Back으로 남의 물건을 받아서 하려니 가격 경쟁력도 없고, 가격이 요동치면 셀러나 바이어 한쪽에서 만세 부르기 일쑤고. 본사 사람들도 정말 힘들겠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서도 철광석 오더를 곧잘 해내는 동료가 있었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친하지 않은 선배다. 이 사람은 입사한 지 8년 되었다고 한다. 영어 이름을 해머라고 쓰는 독특한 사람이다. 대우에 입사하기 전에는 고등학교에서 영어 선생님을 했다고 하는데 평소에 본사 사람들 혹은 한국 매니저들과 얘기할 때 보면 꽤 고급 영어를 구사하는 것 같긴 했다. 해머는 엄청나게 많은 Customer군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매일매일 회사 전화로 핸드폰으로 수도 없이 전화 통화를 한다. 본사와는 영어나 보통화(중국 표준어)로, 중국 수요가들과는 광둥어와 보통화로 쉼 없이 재잘재잘 얘기하면서 열심히 일한다. 그런데 성격이 그렇게 까칠할 수가 없다. 뭘 좀 물어보면 친절하게 가르쳐 주는 법이 없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란다. 다 나온다고. 하!
어쨌든 이번 만큼은 제이도 멋들어지게 첫 오더를 해서 자존심을 좀 살리고 싶다. 샤먼 데코의 유 총경리가 좀 도와주었으면 좋겠다. 정말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