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드레아 Aug 24. 2017

청년 경찰

박서준 + 강하늘

 바람을 맞았다. 그리고 성당으로


 약속 시간 3시간 전에 약속 장소 근처에 와서 지인에게 전화를 하고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그런데 전화 연결도 되지 않고 문자 회신도 받지 못했다. 아마도 그가 바쁜 일을 하고 있는 것이라 여기고 혼자 시간을 잘 보내기로 했다.


 마침 양재동 성당이 근처에 있어서 살며시 성당 마당으로 들어섰다. 평일 낮의 성당은 한산했다. 주일의 성당은 신자들로 붐비는데 평일의 성당은 대체로 조용하고 인적이 드물다. 그래서 가끔 기회가 닿으면 평일에 성당에 가는 걸 좋아한다. 그렇지만 지난 4년여 기간 동안 일본에 살면서 평일에 성당을 찾은 적은 드물었다.


 처음 만나는 성당에 들어서면 묘한 느낌이 들곤 한다. 성당은 어디를 가든 기본 구조가 비슷하기 때문에 친숙한 느낌이 들지만, 처음 가 보는 성당은 그 친숙함 속에서도 미묘한 긴장감과 흥분이 서려 끌린다.


 요새 기도가 부족했다. 절실하게 기도해야 하는 이유들이 몇 가지 있음에도 행동이 따라 주지 않았다. 그래서 이런 기회는 무척 소중하다. 가장 좋아하지만 가장 부족함을 느끼는 묵주 기도를 5단 바쳤다. 지향을 드리는 데 수많은 사람들이 떠 올랐다.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대상들이 많다. 그래서 가끔은 본기도에 앞서 누군가를 떠 올리며, 지향을 두는 사람들을 위한 기도가 꽤 길어지기도 한다.

 

 

 오후의 고요한 냄새가 흐르는 성당 안에 홀로였다. 모든 성당의 대성당에는 제대가 있고 그 뒤로 십자가에 예수님이 손발에 못이 박힌 채로 매달려 있다. 그런데 각 성당마다 조각되어 있는 예수상이 조금씩 혹은 많이 다른 모습들을 하고 있다. 오늘 만난 예수님은 유난히 마르고 골반이 작았다. 묵주기도를 하는 내내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기도를 마치고 잠시 성당 안에 앉아 숨을 쉬었다. 8월이지만 오늘 성당 안은 그리 덥지 않았다. 가만히 앉아 그 고요함과 적막함을 느끼는 데 방해가 되지 않는 온도였다.


 성당 밖으로 나왔다. 조금 걸어서 큰 길가로 나오자 성당 주변과는 사뭇 다른 빌딩숲과 대로의 복잡한 차량 흐름이 보였다. 겨우 걸어서 3분 차이 정도 될까 말까 하는 거리인데 이렇게나 다를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문자가 띠링 울린다. 약속을 잡았던 지인이 정말 너무너무 미안하지만 집안일이 생겨 만날 수 없게 되었다고 했다.


 허허.


 몇 년 만의 만남이라 기대도 되고 궁금한 마음도 컸는데 바람을 맞은 것이다.



바람맞은 남자의 행보


 하지만 나는 전혀 기분이 상하거나 당황스럽지 않았다. 약속 시간 몇 시간 전에 나와서 혼자만의 시간을 잘 보내고 있던 차라 오히려 약속이 깨진 것이 더 편안하고 홀가분하게도 느껴지는 게 아닌가.


 자, 그렇다면 이제 남은 이 풍부한 저녁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잠시 생각하다가 그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던 모교 경기 고등학교를 찾아가기로 했다. 그리고 산책을 좀 하다가 근처 조용한 카페에 들러 쌓아두고 못쓰고 있는 글을 쓰고 싶어 졌다.


 공항터미널 앞 도로에서 차를 몰아 봉은사 방향으로 다다랐다. 그리고 우회전을 시도했다. 그런데 차량 흐름이 너무 많았다. 도저히 거기서 좌회전을 하기 위해 차선 변경을 시도할 수 없었다. 불과 5km 정도 되는 거리를 차로 가는 데 40분 가까이 걸린 것 같았다. 계획을 수정했다. 바로 눈앞에 보이는 코엑스 주차장으로 우회전해서 들어갔다.


 어제저녁에 똑같은 곳에 와서 주차를 하고 영화 '택시 운전사'를 보고 갔는데 오늘 또 같은 곳에 주차를 하러 들어온 것이다. 코엑스에서도 카페를 찾아 글을 쓸 수는 있었으나 참새가 방앗간을 어찌 그냥 지나치리오. 글은 나중에 다시 써도 된다고 스스로에게 한 마디 던지고 바로 영화관으로 발길을 돌렸다.


청년 경찰


 어떤 특별한 영화를 보기 위해 간 건 아니었다. '택시 운전사'도 보고 싶다는 생각만 했지 어제 영화관 매표소에 갈 때까지 마음에 두고 간 건 아니었다. 오늘도 역시 그런 상태로 매표소 앞에서 여러 가지 상영 중 영화 리스트 가운데에 하나를 급하게 찍었다. 번호표를 받자 얼마 지나지 않아 차례가 되었기 때문에 빨리 골라야만 했다. 몇 가지 영화 제목들을 훑어보고 모니터에 나오는 광고들을 슬쩍슬쩍 참고했다. 짧은 순간에 고른 영화는 '청년 경찰'.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이 영화를 찍은 것은 어제 영화관에 와서 로비에 비치된 모니터에서 나오던 이 영화 광고를 봤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박서준과 강하늘이라는 배우들을 좋아하는 편이라 호감이 가기도 했다.


 박서준은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자주 보았고, 강하늘은 영화에서 주로 만났던 것 같다. 둘 다 기럭지가 길고 얼굴이 작은 현대형 미남들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이 두 완소남들의 외모가 빛을 발했다. 경찰대학교에 재학 중인 신분으로 등장하는 두 남자는 러닝타임 내내 풋풋하고 앳된 젊은 남자의 매력을 한껏 발산해 주었다.


배우의 목소리가 중요하다!


 개인적으로 배우들의 목소리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외모가 받쳐 주는 이 두 남자의 보이스는 합격이다. 물론 이병헌 같은 중저음의 매력은 아니지만 깔끔하고 세련된 외모를 깎아먹지 않을 만큼의 좋은 음성을 지녔다고 생각한다. 하정우의 경우 약간의 허스키한 느낌이 가미되어 있지만 터프하면서도 안정감이 드는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홍반장'의 김주혁도 매우 기름지고 좋은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별에서 온 그대'의 김수현도 매력적인 남자의 목소리를 지녔다. 발음이 또박또박한 그는 바리톤의 굵직한 목소리톤은 아니다. 그렇지만 신뢰가 가고 무언가 가볍지 않고 진중한 느낌을 주는 목소리다. 최근 '리얼'이라는 매우 특이한 영화를 찍고 마음고생이 많았다고 들었다. 부디 아픈 기억은 빨리 털고 건강히 군 복무를 마치고 우리들 곁에 다시 돌아오기를 바란다.


 배우 이병헌의 경우, 그 강렬하고 깊은 눈빛과 울림이 있는 낮은 톤의 목소리만으로도 대체 불가의 경지에 있다고 한 번 짚고 넘어가고 싶다.  


지금 내가 다시 찾고 싶은 나


 청년 경찰의 내용을 언급하고 싶지는 않다. 영화의 후기를 쓰려고 글을 시작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하루를 보내며 내가 느꼈던 것들을 남기고 싶을 뿐이다.


 아, 그런데! 박서준과 김하늘이 연기한 두 경찰대생들은 또 한 번 내 가슴을 뜨겁게 만들어 주었다. 영화의 스토리 전개상 무리하게 설정한 부분이 없지 않았으나 넘어갈 수 있다. 내게 더 와 닿았던 것은 순수함으로 똘똘 뭉친 두 젊은이들의 모습이었다. 그들의 연기 속에서 내 과거의 모습을 잠시 기억할 수 있었고, 중년의 나이가 됐지만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는 지금 다시 꼭 찾고 싶은 무언가를 상기시킬 수 있었다.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잠시 동안이라면 매너리즘에 빠져 지낼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 기나긴 인생길에서 평생을 매 순간순간 치열하고 열정적으로만 살 수는 없다.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없지 않은 것 같지만 그런 사람들은 신 바로 아래의 인간들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 휴식을 취했다면 난 다시 열정적으로 살고 싶다. 내 이 소중한 삶을 뜨겁게 지펴 활활 타오르게 하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시간과 운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