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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드레아 Jan 18. 2018

지금의 직장을 떠나면 13편

호주 시드니  이야기

중국에서 의대를 졸업한 한 청년


 진로가 결정되고 출근을 약 삼 주 앞둔 시점에서 마지막으로 의미 있는 여행을 하고 싶었다. 몇 군데가 떠 올랐다. 대부분 만나고 싶은 지인들이 나가 살고 있는 곳이었는데 특히 가고 싶은 나라가 호주였다.


 시드니에 살고 있는 그는 내가 중국 광저우에서 첫 해외 생활을 하면서 만난 특별한 인연이다. 2008년에 막 광저우에 도착해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일을 하며 적응하고 있던 어느 날 그가 성당 후배를 따라 우리 집에 놀러 온 적이 있다. 중국 북쪽 한 도시에서 의대를 졸업한 이 한국인 청년은 사회생활을 시작할 곳을 물색하던 중이었다. 당시 상하이와 광저우 두 후보를 물망에 올리고 있었다. 각 도시의 지인들과 상의하고 직접 현지를 찾아보기도 하면서 최종 결정을 위한 근거를 찾고 있었다.


 마침내 대학 졸업 후 첫 정착지로 광저우를 선택하게 됐다. 그가 훗날 고백하기를 성당 선배를 따라 우리집에 왔을 때 나를 비롯한 성당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눴던 영향이 컸다고 했다. 무역을 하는 나와 의사인 그는 하는 일만 보면 연관이 없었다. 그러나 둘 다 천주교 신자였고 우리는 함께 성가대에서 활동했다.



열에 들떠 있던 순간들


 그는 어려서부터 피아노를 쳐서 상당한 수준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성가대의 반주를 맡아 주었다. 당시에 나는 지휘와 성가단장 역할을 동시에 하고 있었다. 성가대 조직이 없었던 광저우 한인 성당에서 노래에 관심이 있는 몇몇 신자들을 찾아 작은 중창단처럼 성가대를 시작했다. 음악 전공자가 아닌 나로서는 성가대를 이끌어가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러나 내 능력 범위 안에서 좋아하는 노래들을 성가단원들과 즐기며 불렀다.


 그와 내가 함께 했던 또 하나의 중요한 매개체는 바로 테니스였다. 둘 다 테니스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엄청난 열정으로 테니스에 몰입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복식 파트너가 되었다. 거의 일주일에 평균 네 번 이상 코트로 향했고 주말에는 오전에 세 시간 정도를 하고 오후나 저녁에 다시 다른 모임에서 서너 시간을 친 적도 종종 있었다. 무리해 보이는 강행군이었지만 우리는 당시 테니스라는 마법에 사로잡혀 마치 홀린 듯 테니스장을 헤매고 다녔다. 시합이란 시합은 거의 다 참가했고 광저우에서 함께 한 몇 년 동안 크고 작은 수많은 시합에서 우승이나 준우승 등 짜릿한 순간들을 함께 경험했다.


이별과 떠남


 우리가 함께 하던 열정과 행복의 시간은 내가 한국 본사로 귀임하면서 막을 내렸다. 언젠가 다시 함께 할 날이 있을까 하는 진한 아쉬움을 느끼며 우리는 각자의 길로 접어들게 된 것이다.


 귀임 후 약  일 년 반이 지난 후 나는 일본으로 이직을 하게 되었는데 우연히 그도 비슷한 시기에 호주 이민을 떠나게 되었다. 중국의 해외 기업과 외국인들에 대한 불안정한 태도와 정책에 미래를 고민하던 그는 새로운 대안을 찾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호주는 해외 이민자들에 대해 상당히 호의적이었고 중의(중국 의대를 졸업한 의사)인 그로서는 중국인과 한국인 교민이 엄청나게 살고 있는 시드니가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었다.


호주 이민


 이민 5년 차인 그는 벌써 정원이 딸린 번듯한 독립 주택을 소유하고 있었다. 시드니 시내에서 차로 40분가량 떨어진 마을. 높은 건물은 찾아볼 수 없는 한적하고 깔끔한 주택가였다. 그러나 근방에 공사가 한창이었다. 앞으로 그 지역에 커다란 몰이 들어설 예정이며 근방에 메트로역이 들어설 거라고 했다. 시내가 아니지만 교외의 한 마을이 불어나는 이민자들로 열기를 띠고 있었고 부동산 가격이 짧은 시간 안에 급하게 올랐다.


 그가 그렇게 빨리 집을 장만한 것은 충분한 자금이 있어서가 아니다. 목돈이 들어가는 일이라 열심히 돈을 모아 어느 정도 여력이 될 때 부동산 구매에 나서는 것이 맞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것이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에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오래전부터 들어온 중국 이민자에 더하여 어느새 세를 불린 한국, 인도계, 레바논을 위시한 중동, 베트남 이민자들이 시드니 시내를 중심으로 외곽에 모여 살며 일종의 타운을 형성했고 그 수는 호주의 적극적인 이민 정책과 맞물려 급속히 늘어났다. 사람이 살기 위해서 꼭 필요한 의식주 가운데 하나인 집. 자연히 수요가 급증했고 일자리가 몰려 있는 시내를 중심으로 부동산 가격이 비례하여 올랐다. 언제 돈을 충분히 모아 집을 살 수 있겠는가. 금융 기관의 도움을 받아 끌어올 수 있는 돈은 최대한 끌어와 빚을 안고 집을 살 수밖에.


아! 그 총알도 뚫지 못할 것 같던 스테이크


 잠시 여행으로 들른 나에게 호주는 맑고 푸른 청정 자연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멋진 나라로 비쳤다. 언젠가 미국 미시간, 앨라배마, 켄터키, 텍사스, 서부, 북동부 여행을 다니며 느꼈던 것처럼 찍는 사진 하나하나가 작품이 되는 듯했다. 공기가 깨끗하고 볕이 강한데다 쉽게 찾을 수 있는 푸른 바다와 녹음을 느낄 수 있는 산과 나무와 잔디가 산뜻한 공원 등 피사체가 너무도 훌륭했기 때문이다.


 반가운 손님이 왔다고 매일매일 진료소를 옮겨 다니며 바쁘게 사는 그가 살뜰히 챙겨 주는 게 조금 미안하고도 많이 고마웠다. 일이 끝나고 평일 저녁에 그리고 토요일, 일요일 주말이 되면 그가 나를 데리고 쉬지도 못하고 여기저기 차를 몰아 달렸다. 호주 여행을 왔으니 당연히 관광객들의 발길이 닿는 시내와 외곽의 명소를 찾았고, 집 테라스에서 혹은 공원 바베큐장에서 손수 호주산 소와 돼지고기를 구워 주었다. 아! 그 총알도 뚫지 못할 것처럼 보이던 두꺼운 스테이크용 쇠고기. 지글지글 끓는 소리를 내며 최적으로 구워진 후 마침내 적당한 크기로 썰려 눈앞에 놓인 스테이크 덩이들은 과속 딱지가 떼일 만큼 빠르게 사라졌다. 협곡과 바다가 만나는 아쿠나 베이의 한 국립공원 바베큐장에서 먹던 삼겹살의 맛은 또 어떤까! 바다가 육지 안쪽으로 깊이 들어와 마치 저수지나 큰 호수처럼 보이던 그곳. 그런 곳에 잔디와 나무 조경을 어찌도 그리 이쁘고 깔끔하게 잘 해 놓았는지 감탄이 절로 나왔다. 마침 바베큐장 바로 옆으로 황홀한 보랏빛의 자카란다가 끝물임에도 아름답게 서 있었다. 아마도 삼겹살을 먹었던 장소 가운데 내 평생 가장 로맨틱한 곳이 아니었다 싶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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