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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골이 좀 당깁니다

by 안드레아
17년 몸 담았던 필드를 떠나 새 무대로


새 회사에 출근한 지 이 주가 조금 넘어갑니다. 서류 전형과 두 번의 면접 그리고 과제물 제출을 거쳐 최종 합격 통보를 받기까지 약 한 달의 시간이 걸렸나 봅니다. 17년의 제 경력과 전혀 다른 분야로 오게 되었습니다. 종합상사와 메탈 원자재 가공 및 수출 업체에서 일해왔던 제가 교육 서비스를 하는 기업에 오게 된 겁니다.


전에 다니던 종합상사는 여성 직원들의 비율이 매우 적었던 반면에 최근 제가 입사하게 된 회사는 분야의 특수성 때문인지 여성 근로자 수가 월등히 높습니다. 어찌나 똑 소리 나고 세련된 모습들인지 회사의 위상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들 정도입니다. 역시 남초 조직과 여초 조직의 느낌은 출근 첫날부터 차이가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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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렇게 일찍 퇴근해서 책상 앞에 앉아 마음 편히 글을 쓰는 시간을 가진 지가 얼마만인지...

야근을 해서가 아니라 처음 들어간 조직이다 보니 입사 동기들 혹은 같은 소속의 동료들과의 모임이 꽤 있었습니다. 또한 귀국한 후 한동안 못 보던 지인들과 만나느라 귀가가 늦어질 때가 많았습니다.


일본의 한 중소기업에서 4년 반 정도 있으면서 '경쟁'이라는 분위기에서 좀 멀치감치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기업으로 돌아오자마자 그 잊혔던 느낌이 복원되는 것 같았습니다. 매일 촘촘히 짜인 교육 프로그램에 참가했고 교육 중간중간 수시로 퀴즈를 풀었으며 하루 일과를 마감할 때 필기시험을 보았습니다.


그럼 제가 상당히 스트레스를 받고 힘들었겠다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네! 오랜만에 스트레스 제대로 받았고 중년에 접어들어 시험 보느라 진땀 좀 흘리긴 했습니다. 하지만 간만에 경험하는 이 타이트한 느낌이 싫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동안 큰 조직을 떠나 사람과 조직 사이의 치열한 경쟁 관계에서 오는 긴장감을 덜 느끼며 잘 있었기 때문일까요? 조금 더 있다 보면 싫어질까요?


어떻게 될지 저도 궁금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경력이 상이한 저에게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데 대해 감사한 마음이 작지 않습니다. 한편으로는 17년 동안 비슷한 일을 하다가 '교육 서비스'라는 전혀 새로운 세계를 접하며 도전 의식이 생기고 흥미롭게 하루하루 배우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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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이 회사에 합격 통보를 받기 전까지 상당히 많은 회사의 서류 전형에서 탈락했습니다.


네댓 개 이상의 헤드헌터 회사들을 통해 알아보기도 했고, 잡코리아/사람인/링트인 등 구직 사이트를 통해서도 수십 통의 이력서와 경력기술서 등을 보냈습니다. 당연히 서류 전형은 통과할 거라 생각했던 수많은 회사에서 단 한 번의 연락도 받지 못하는 좌절감을 마흔 중반에 접어들어 경험해야만 했습니다.


아마 구직해 본 경험이 있거나 현재 구직 중인 분들은 제 이야기가 어떤 걸 의미하는지 생생하게 이해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이렇게 서류 전형에 지원하고 또 지원하고 또 지원하며, 떨어지고 떨어지고 떨어지다 보면 몇 개월이 후딱 지나가 버립니다. 그나마도 미혼일 때는 경제적인 압박감이 덜하지만 부양해야 할 식솔들이 있다면 흘러가는 시간에 입이 바싹 타 들어갑니다.


지금 제가 느꼈던 것처럼 혹은 그 이상으로 힘든 시간을 지나고 있는 분들이 많이 계실 거라 생각합니다. 그 시간이 너무 고되지 않기를 그리고 하루빨리 그 어둡고 긴 터널을 통과하시기를 간절히 빕니다. 다만 그 어려운 시간도 틀림없이 우리 인생에서 어떤 특별한 의미와 역할이 있다는 진실을 점점 더 믿게 되었다는 말씀을 드려 보고 싶습니다. 당신은 당신 인생의 트랙에서 결코 늦지 않았습니다. 꼭 지나가야 할 코스를 지나가고 있으며 그 페이스는 각자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뒷골이 좀 당깁니다. 잠이 조금 모자란 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홀로 책상 앞에 앉아 두서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글을 쓰고 잠자리에 일찍 들어갑니다.


내일 아침에는 머리가 한결 맑아질 거라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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