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 크리스마스이브에
중학교 졸업 후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내가 귀국했다는 걸 알고서 고맙게도 기별을 준 것이다. 우리는 눈 대신 비가 내리는 크리스마스이브에 상가의 문들이 대부분 문을 닫은 서울 어떤 거리에서 28년 만에 조우했다.
그나 나나 28년의 세월이 비껴갔을 리 만무하지만 첫인사는 같았다.
" 넌 어째 어릴 때랑 똑같니? 변하질 않았네. "
브런치에서 그간 내가 쓴 글들을 꽤 많이 읽었던 모양인지 나의 근황과 이야기들에 대해 잘 아는 눈치였다. 주로 나 자신의 이야기들을 많이 담아왔기 때문에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는 내년에 이직을 해야 한다고 했다. 지금 다니는 회사가 청산 작업에 들어가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상황이 같지는 않았지만 일본에서 갈등을 겪으며 회사를 떠나야 했던 나의 이야기들을 접하면서 한 번 만나서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고 했다.
사십 대 중반. 겉보기엔 다른데 조금만 안으로 들어가면 우리들은 어쩌면 그렇게도 비슷한 고민을 하며 살고 있는지 놀라고 신기하게 느껴지곤 한다. 서로의 문제와 고민거리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걸 속 이야기를 꺼내 놓고서야 깨닫는다. 그리고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
똑똑한 친구였다. 좋은 회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중간에 해외 유학까지 다녀왔으며 유명 다국적 기업에서 일할 기회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의 인생이 지나고 보면 그렇듯이 생각처럼 풀리지 않는 때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나도 몇 번 그랬고 이 친구도 몇 번 그랬으며 이제 다시 그런 순간을 맞이할 것처럼 느껴지는 것 같았다.
나는 결코 그 친구에게 조언을 해 주거나 좋은 아이디어를 제시할 수 없었다. 28년 동안 단 한 번도 연락이 닿지 않은 친구를 이제 처음 만나서 무슨 기발하고 묘한 방법을 제시해 줄 수 있을까.
오히려 그 친구의 고민과 마음속의 짐을 전해 들으면서 내가 더 도움을 받는 기분이 들 뿐이었다. 그저 어릴 적 친구와 오랜만에 만나서 이렇게 살아가는 이야기와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들에게 쉽게 털어놓지 못하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고 하겠다.
친구는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나도 일본에서 떠나기로 하면서 느꼈던 불안과 좌절의 느낌이 적지 않았지만 조급해지기보다는 즐기려 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내 깜량으로는 결코 예상할 수 없었던 일들이 생기더라고 말했다. 태평스러운 모습으로 있는 것이 능사가 아니지만 자신을 더 힘들게 하지 않을 필요가 있다고 했다.
흐린 바깥 하늘 아래 한산한 식당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눈 우리는 헤어지기 아쉬워 차 한 잔의 시간을 더 가졌다.
비가 추적이는 크리스마스이브의 서울 거리는 낯설었다. 하지만 정말 오랜만에 보는 어릴 적 친구와 차분한 거리에서 만나 마음속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좋았다.
새해가 오면 다시 시간을 맞춰 만나기로 했다. 내가 얕지 않은 방황의 시간을 끝내고 길을 찾아 들어선 것처럼 친구도 틀림없이 그가 열어야 할 문을 찾을 거라 믿는다.
오후 들어 공기가 한층 더 차갑게 느껴졌다. 그래도 친구와의 몇 시간은 온기로 남아 있다.
그레이 크리스마스가 그리 우울하게 느껴지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