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드레아 Feb 04. 2018

도쿄 다이어트

매력남 큰 섬 씨 ^^

이직 후 첫 출장을 도쿄로


 난생처음 프랜차이즈 박람회에 참가했다. 장소는 도쿄였다. 혼자가 아니라 회사의 선배 한 분과 함께 하는 출장이었다. 지난 18년 동안 무수히 많은 출장을 온갖 나라로 돌아다녔지만 대개 비슷한 직급의 동료와 함께 하는 출장은 드물었다.


 이번 경우는 좀 예외적인 경우인데 원래 선배가 기획한 출장에 갑자기 한 사람이 추가된 것이다. 내가 일본에서 직장을 다니다 들어왔기 때문에 뭔가 일본 출장 준비와 현지에서의 일 진행에 도움이 되리라는 윗분들의 판단이 있었던 것 같다.


 이직한 직장에서의 첫 출장으로서 설레기도 하고 책임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다행히 베테랑 선배와 함께 가게 된 것이 여러모로 마음 든든하게 여겨졌다. 아직 이 분야에 대한 이해가 얕고 경험이 없기 때문에 더 그러할 터였다.


 지난해까지 큐슈 지방의 키타큐슈에서 일할 때는 우리나라로 출장을 갈 때 인천공항만을 이용했었는데 이번 도쿄 출장은 김포 공항에서 출발했다. 김포 공항에 국제노선이 있는 줄은 알았지만 도쿄 하네다 공항으로 가는 항공편이 있는 줄 몰랐다.


독특한 '큰 섬'씨


 평일 오후 비행기는 출발 직전 내리던 눈으로 반 시간 정도 지체가 있었다. 안내방송에 따르면 날개에 쌓인 눈을 치워야 한다고 했다. 새로 옮긴 회사에서의 첫 출장지가 생각지도 못한 일본이 되자 기분이 묘했다. 내게 있어서는 꽤나 드라마틱한 사연을 안고 일본땅을 떠날 적에 다시 오게 될 때까지 시간이 좀 걸릴 거라 느꼈기 때문이다.


 하네다 공항에 내렸다. 키타큐슈에서 일할 때 지사 방문을 위해 도쿄를 이따금 들렀었다. 그때는 물론 일본의 국내선으로 왔다. 이번엔 서울에서 우리 국적기를 타고 국제선 청사로 방문하게 되었다. 도쿄에 올 때마다 가와사키 지사의 영업 책임자였던 '큰 섬'씨가 마중 나오곤 했다. 한자로 '클 대 大'자와 '섬 도 島'자 성을 가지고 있어 본사에서 같이 일하던 한국인 후배와 말할 때 그를 그런 별명으로 칭하곤 했다.


 이번 출장 일정을 짜면서 큰 섬 씨가 생각이 났다. 일본 회사를 떠난 후 몇 달 동안 연락을 하지 못했지만 막상 도쿄 출장이 잡히자 그를 만나고 싶었다. 그래서 SNS상에 남아 있던 그의 연락처를 찾아내 전화를 걸었다. 시간이 허락하면 저녁 식사나 한 끼 나눌 요량이었다. 큰 섬 씨는 오랫동안 연락이 없던 나의 전화에 반가운 표를 해 주었다. 출장을 가게 되었다고 하자 대뜸 공항으로 마중을 나오겠다고 말했다. 이제는 같은 회사를 다니는 것도 아니라서 그럴 필요가 없는데 기대하지 못했던 반응이었다. 사실 살짝 감동을 먹었다.


 선배와 나는 도착 후 수속을 마치고 나왔고, 입국장에서 사람 좋은 얼굴로 기다리던 큰 섬 씨를 발견할 수 있었다. 큰 섬 씨는 나와 동행했던 선배와 약간은 수줍은 듯 첫인사를 나누고 주차장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주차장에는 그가 영업용으로 쓰는 자그마한 하이브리드차가 서 있었고 그 차를 다시 만난 나는 잠시 감회에 젖었다. 4년여를 좌충우돌 지내던 일본 직장에서의 추억이 그 은빛 차와 겹치며 떠 올랐기 때문이다.


 그는 원래 일본식 장기에 능한 친구였다. 그냥 동네 고수가 아니라 시합에도 지속적으로 출전하고 수상도 했던 아마추어의 숨은 강자였다고나 할까. 말을 나누어 보고 회의에 같이 참석해서 의견을 피력하는 걸 지켜본 바로는 그가 매우 개성이 강하고 두뇌 회전이 빠르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장기 실력이 뛰어나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면서 고개를 끄덕였던 적이 있었다.


 요새도 장기를 계속 두냐고 하자 자주 못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대신 그는 놀랄 만한 일을 꾸미고 있었다. 그가 기타를 친다는 건 들은 적이 있다. 한데 최근에 그는 일주일에 두 번 정도 기타 레슨을 받으며 작곡까지 공부하게 되었다. 공부에 그치는 게 아니라 최근 몇 달 열 곡 이상을 직접 자작했으며, 더더욱 놀란 것은 가와사키와 오사카의 직원까지 합세해 밴드를 결성한 후 열심히 연습해 리코딩까지 했다는 사실이다.


도쿄 아카사카의 한 가게


큰 섬 씨의 새로운 취미 작곡!
대표곡 '다이어트'


 그가 운전하는 차 안에서 그의 대표곡(?) '다이어트'를 들었다. 보컬은 나와도 4년을 같이 근무하다 오사카로 전근을 간 막내 여직원 구시짱이었다. 평소 말이 별로 없지만 아주 가끔 있는 회식 자리에서 술이 한 잔 들어가면 노래도 하고 동료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으며 귀여운 모습을 보이던 아가씨였다. 리드 기타를 큰 섬 씨가 맡고 현장 책임자인 코가 씨가 베이스 기타로 받쳐 주었다. 드럼은 컴퓨터 효과음을 이용했다.

DIET

작사/작곡 - 오오시마

다이~~엇! 언제부터 시작할까? 다이~~엇!
물론 내일부터지~~~
다이~~엇! 언제부터 시작할까? 다이~~엇!
그러니까 오늘은 괜찮은 거네~~~

오늘부터 다이~엇!
몇 번이나 말했던 이 틀에 박힌 말
지금부터 다이~엇!
마음속에서 결정한 건데

워킹! 봄이 온 다음부터!
 자전거로 출퇴근! 좀 더 시원해지고나서!

오늘부터 다이~~엇!
배가 불룩! 또 위험해!
지금부터 다이~~엇!
단 거 참을 수 있을까?
야채 중심! 밥은 안 먹어!
3시의 간식, 단 거 너무 좋아!
에구 다 먹어 버렸네!

다이~~엇! 언제부터 시작할까? 다이~~엇!
물론 내일부터지~~~
다이~~엇! 언제부터 시작할까? 다이~~엇!
그러니까 오늘은 괜찮은 거네~~~

오늘부터 다이~엇!
몇 번이나 들었던 그 대사
내일부터 다이~~엇!
결국 그렇게 될 줄 알고 있었어.
사람일이니까 뭐 그렇지만
인생 한 번 죽을 각오로 해 봐!
다이~엇!

다이~~엇! 언제부터 시작할까?
다이~~엇! 오늘부터 시작하자.
다이~~엇! 언젠가는 해야만 할
다이~~엇! 지금부터 시작해!

다이~~엇! 언제부터 시작할까? 다이~~엇!
물론 내일부터지~~
다이~~엇! 언제부터 시작할까? 다이~~엇!
그러니까 오늘은 괜찮은 거네~~~

내일이 되어도 내일부터!

*다이어트 노래 듣기


  이 곡을 듣는 동안 내 입꼬리가 양쪽 위로 활짝 올라갔다. 평소 고철 덩어리와 씨름하고 있는 사람들이 이런 깜찍한 노래를 만들고 함께 연주하며 노래를 불러 리코딩까지 했다는 사실이 퍽이나 신선하고 흐뭇한 느낌이었다. 구시짱의 목소리는 기성 가수와 같은 가창력이 있는 건 아니었다. 높은음으로 올라갈 때 약간 힘겨운 느낌도 들었다. 그러나 어디에서 이런 원석 같은 노래를 들을 수 있으랴! 가사 내용은 사뭇 코믹하고 지극히 일상적인데 그녀의 목소리는 매우 진지하고 순수했다.


 듣는 내내 이들의 표정과 제스처를 상상했다. 모르긴 해도 이 막내 아가씨는 약간 긴장을 한 채 아무도 보아주지 않는 아파트 살림살이 무대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노래를 불렀으리라. 기타와 베이스 드럼 연주에 어긋나지 않기 위해 귀를 쫑긋 세우고 그저 열심히 목청을 돋우었을 것이다. 한편 작곡가이자 밴드 리더인 큰 섬 씨와 베이시스트 코가 씨는 그 순간 관객 없는 뜨거운 무대 속에 흠뻑 젖어 무아지경에 다다르지 않았을까.


 만일 거리가 가까웠더라면 나도 이들과 함께 밴드 활동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내 보이스 컬러와 큰 섬 씨의 노래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이렇게 신나는 노래를 이렇게 순수한 이들과 함께 부르고 연주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행복할 것 같다.


  큰 섬 씨는 아직 골초다. 게다가 저녁을 거의 먹지 않는다고 했다. 그의 건강이 조금 염려된다. 권위에 복종하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 오오시마. 우린 이따금 서로의 안부를 물을 것이다. 때로는 몇 달 만에, 때로는 몇 년 만에. 건강하고 기쁜 얼굴로 다음을 기약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