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상해의 날씨는 으슬으슬한 느낌이 들었다. 하늘엔 파아란 조각 한 점 보이지 않고 온통 회색빛이었다. 부슬부슬 비가 내리다 멎다를 반복했다.
대만 친구가 소개해 준 상해의 두 사업가들과 낯설지만 아늑한 분위기를 풍기는 찻집에서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가볍게 저녁을 먹고 헤어졌다. 밖으로 나서니 이미 거리는 어두워져 있었고 옅은 빗줄기가 거리를 계속 적시고 있었다.
앞으로 내 삶이 어떻게 될까. 과연 이 중국 회사에 들어가 잘 적응하며 살 수 있을까. 급여가 많이 줄어들 텐데 열심히 일하다 보면 다시 회복시킬 수 있을까. 철강/비철 분야에서 일하다가 화학 쪽 일을 잘 해낼 수 있을까. 젊은 중국인 경영진들과 마음이 잘 맞을까. 사고방식이나 가치관이 너무 다르지는 않을까. 가족들과 다시 합쳐서 이전처럼 단란한 가정을 꾸리며 잘 살 수 있을까. 중국에서 건강을 해치지는 않을까.
서늘하고 축축한 밤공기를 느끼며 숙소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낮에 있었던 젊은 여자 부사장과의 면접은 비교적 순조로웠고 내쪽에서 특별히 조건을 까다롭게 내세우지 않는다면 함께 일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꾸물꾸물하고 따뜻하지 않은 날씨에 낯선 거리를 헤매고 다녀서였는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어서였는지 마음속엔 일말의 불안감이 일었다.
수저우에서 면접을 보기 하루 전에는 중국 회사에서 마련해 준 숙소에서 하루를 묵었다. 그러나 면접이 끝나고 난 다음엔 상해로 건너갔다. 약속이 있기도 했지만 예전에 중국 광저우에서 일할 때 출장으로 자주 드나들던 상해가 좀 더 익숙했고 살짝 정이 더 갔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음 상태가 그리 안정적이지 않았기 때문인지 그때는 수저우나 상해나 매한가지로 삭막한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
연락 두절 그리고 좌절
면접을 보고 일본으로 돌아온 후 이제나 저네나 하고 중국 회사의 소식을 기다렸다. 일주일 동안 똥 마려운 강아지 마냥 조바심을 내며 기별이 오기를 기대했다. 연락을 하고 싶었지만 내쪽에서 너무 서두르는 모양새가 될 것 같아 참기로 했다. 다시 일주일이 더 흘렀다. 하지만 기다리던 소식은 오지 않고 있었다.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내가 먼저 연락을 취해야 할까 고민이 되었다.
그 회사의 부사장과 위챗(Wechat)으로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쪽으로 가벼운 안부를 물어보기로 했다. 마치 면접 결과와 처우가 궁금해서 연락하는 게 아니고 친구로서 안부를 묻는 것처럼 문자를 보냈다. 금세 회신이 오리라 기대했지만 스마트폰은 다른 SNS 소식들만 전해 주었다.
하루 이틀 정도 지난 후 좀 더 긴 내용으로 그녀의 주의를 환기시키기로 했다. 혹시 대표와는 나의 이야기가 되었는지, 내 직책과 처우를 고려함에 있어 궁금한 점은 없는지, 대략 언제 정도면 회사의 공식적인 답변을 받을 수 있는지 묻는 내용이었다. 이제는 안부가 아니라 구체적인 질문으로 보낸 것이었지만 역시 아무런 회신을 받을 수 없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어 확인을 해 보기로 했다. 먼저 이메일로 내 입장을 전달하고 회사의 최종 입장을 알려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부사장에게 수 차례 전화를 걸었다. 이메일에 대한 답장도 받지 못했고 전화를 직접 걸었으나 신호만 갈 뿐 연결이 되지 않았다. 이쯤 되면 고의로 나의 연락을 피하는 것이라고 밖에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결국 이 회사를 소개해 준 친구를 찾게 되었다. 미국 서부에서 살고 있는 친구는 내가 면접을 본 중국 회사의 부사장과 함께 일했던 사이였다. 친구는 아직도 미국 기업에서 일하고 있고 친구의 옛 동료는 중국 기업의 부사장으로 스카우트되어 간 것이었다. 친구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미안하지만 연락이 닿는다면 어떻게 된 영문인지 대신 확인해 줄 수 있는지 부탁했다.
시차가 있어 친구도 중국의 그녀에게 바로 연락이 닿지은 않는 모양이었다. 소개해 준 것만 해도 감사한 일이었고 중국 회사에서 그렇게 나오는 것이 친구의 잘못은 아니었기에 결코 이번 일로 친구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 다만 내쪽에서 더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 어쩔 수 없이 도움을 청하게 되었다.
얼마 간의 시일이 지난 후에야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얘기인즉슨, 그쪽에서 내 면접을 본 이후 고민을 해 보았는데 현재 다니는 회사의 조건과 차이가 너무 많이 나서 어렵겠다는 반응이었다. 자기들로서는 외국인 채용 경험이 없어 부담이 된다는 말도 덧붙였다고 한다.
길은 틀림없이 이어지게 마련이다
그렇게 그 회사와의 인연은 끝이 났다. 당시 면접을 보고 온 이후에 이직하는 걸 거의 기정 사실화하고 가족들과 앞으로 중국에 가서 어떻게 살 것인지도 상의했었다. 너무 어이가 없는 결말을 맞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런 경험도 내겐 쓰디쓴 보약처럼 귀중하게 여겨진다. 고용계약도 쓰지 않은 상태에서 모든 것이 결정된 것처럼 어리숙하게 굴었던 내 모습이 부끄럽다.
이를 마지막으로 새 직장을 잘 찾았다면 좋았겠지만 중국 기업과의 해프닝은 뒤에 이어질 비교적 긴 시간의 방황의 서막에 불과했다. 인터넷 공간에 내 이력서를 띄워 놓고 무역이나 해외영업과 관련된 포지션을 닥치는 대로 찾아 지원했다. 물론 처음에는 근무할 지역과 기업의 인지도 그리고 고용 조건 등을 나름 까다롭게 잡아 그 범위 안에 있는 포지션에만 지원하고자 했다. 하지만 이런 똥고집을 버리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지원하는 곳마다 서류에서 탈락하는 수모(?)와 좌절을 경험하자 스스로 기준을 대폭 낮추게 된 것이다.
지난해 하반기에 이런 과정에 대해 여러 번 글을 썼다. 아마도 요즈음, 다음 직장이나 계획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퇴사를 경험하게 된 분들이라면 두말없이 공감하게 될 경제적, 정서적 문제와 방황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만일 이 글을 읽는 독자께서 혹은 주변의 어떤 이가 이런 상황에 처해 있다면 나는 그분을 마음으로 안아 드리고 싶다. 누구도 다 헤아리기 힘들 그 외롭고 막다른 기분. 안다. 너무도 잘 안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고 싶다. 당신은 지금 당신의 페이스 안에서 거쳐야 할 것들을 다 거치며 잘 가고 있다고. 누군가 내가 거치고 있는 이 서럽고 괴로운 길을 안 가고 넓고 탄탄하고 쉬운 길만 가는 것처럼 생각된다면 그건 오해라고. 만일 지금 내가 그 험한 길을 피해 쉽게 달아나더라도 언제까지나 그렇게 살 수는 없을 거라고. 오히려 지금 나는 그 거칠고 어두운 길에서 더 소중한 나 자신을 만나고 더 깊어지며 슬기로워질 것이라고.
길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길은 나 자신이 끝났다고 생각하면 막혀 버리지만, 스스로가 어떻게든 길을 찾아내고자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열리기 마련이다. 길은 틀림없이 이어진다. 그러니 의심하지 말고 나 자신을 믿고 나만의 길을 찾아 나서야 한다. 그 길은 나만의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