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드레아 Jun 12. 2018

상대가 답을 정해 놓고 말을 꺼낼 때

 요컨대 이런 것이겠지요.


 직장에서 한 선배님이 술 한 잔을 하시고 헤어질 즈음에 넌지시 물어봅니다.


" 그러니까 지난주에 교육을 잘 받았어요? " 선배님이 물어보십니다.


" 네, 기대를 아주 크게 한 건 아닌데 기대 이상으로 감동도 많이 받고 앞으로 제가 현장에 나가면 어떤 식으로 하면 좋겠다 하는 생각을 많이 할 수 있었어요. 정말 가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 제가 대답합니다.


" 그런데 매일 교육을 받지 않았던데. 그냥 계속 연수원에 남아서 교육을 받았으면 좋았을 텐데요. " 선배님이 아쉬운 듯 이야기를 보태십니다.


" 아, 네.. 실은 저도 원래 생각은 매일매일 모든 프로그램에 참가하면 좋겠다 생각했었는데요. 저희 직속 선배님들께서 커리큘럼을 보시면서 꼭 들었으면 하는 프로그램과 들을 필요가 없겠다 하는 걸 구분해 주셨거든요. " 제가 약간의 변명과 함께 자초지종을 설명해 드립니다.


" 그래도 본인이 원하면 그냥 매일 들을 수도 있었을 텐데요. 중간에 현충일이 껴서 개인적으로 쉬려고 그날 교육은 안 받은 거 아니에요? " 선배님께서 마음속에 두었다가 꺼냈음직한 이야기를 콕 짚어서 하십니다.


" 아, 네네. 사실 그런 이유도 어느 정도는 있었어요. " 제가 부정하지 않고 솔직한 마음으로 답하고자 합니다.


 그러니까 위의 대화에서 보면 선배님은 제가 휴일에도 계속되는 교육 프로그램을 제 의지가 있으면 갈 수도 있는데 쉬고 싶은 마음에 빠진 게 아닐까 생각하신 거지요. 초저녁을 지나고 꽤 늦은 밤까지 술 한 잔을 기울이며 다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대로변에서 차를 기다릴 적에 이런 이야기를 꺼내시는 거였지요.


 저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아, 선배님은 '이 친구, 의지가 강하지 않았구나' 또는 그렇게 강조한 교육을 다 참석하지 않고 골라서 들었던 것에 대해 서운함도 있고 실망스럽게 느끼신 게로구나 하고 말이죠. 그 말씀을 마지막 헤어질 때 꺼내시는 선배님을 바라보며 저는 변명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휴일에 있던 프로그램을 듣지 않아도 된다는 다른 선배님들의 말씀을 핑계 삼아 휴일을 개인적인 일정으로 보내고자 했던 마음이 어느 정도 있었기 때문이죠.


 여기서 만일 제가 그게 아니라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계속 변명과 같은 이야기를 늘어놓았더라면, 아마도 선배님은 더 아쉽고 불편하게 느끼셨을 거라는 생각을 했어요. 선배님은, 가급적 모든 프로그램에 다 참가하면 좋겠다고 몇 번 이야기했음에도 그대로 따르지 않은 제가 좀 야속하셨을 것도 같아요.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하니 그렇더라고요.


 선배님, 앞으로는 제가 좀 더 깊이 생각해 볼게요. 이번에는 너그럽게 생각해 주세요. 저를 아껴서 말씀해 주셨는데 제가 그 마음을 다 헤아리지 못했어요. 오늘 밤 편히 쉬시기를...


Photo by Anna Kang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