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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드레아 Jul 14. 2018

Giver란 어떤 존재인가

써전 스미스를 추억하며

써전 스미스를 추억하며


[1996년 부산 Camp Hialeah]


 딱 콧수염만 기른 속눈썹이 길고 눈이 제법 이쁘던 금발의 백인 스페셜리스트가 하나 있었다. 여기서 스페셜리스트는 무슨 전문가를 말하는 게 아니라 미육군 상병 가운데 명령권이 없는 계급을 말한다.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근육질의 몸집이 큰 백인 남자가 아니었다. 몸매가 날씬했고 키는 175센티미터에 조금 못미치지 않았을까 한다.


  그와 나는 당시 헌병중대의 3소대 소속이었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Private 1st Class, 그러니까 우리 계급으로 일등병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의무 병역으로 미군에 비해 진급이 빠른 한국군으로서 나 역시 금세 상병이 되었다.


 스페셜리스트 스미스는 부산 캠프에서 함께 복무를 하는 동안 진급에 필요한 각종 시험과 PT(Physical Test)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고 곧 명령권이 있는 상병 Corporal로, 또 일정 기간이 지난 후에 병장 Sergeant으로 착착 진급했다.


 그는 그때까지 보았던 미군 사내들과 구분이 되는 사람이었다. 비슷한 점도 물론 있었지만, 그가 때와 장소에 따라서 사람을 대하며 말하고 행동하는 모습을 나도 모르게 유심히 그를 관찰하게 되었다.


상남자 스미스


 여느 미군 사내처럼 그 역시 마초적인 기질이 있었다. 훈련을 하거나 체력 단련을 할 때 그는 곧잘 큰 소리를 지르며 함께 하는 대원들을 독려했고 자극을 주곤 했다. 무언가 불만이 생기면 쌍소리를 카악 내뱉으며 거친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그런데 그가 누군가에게 개인적으로 그렇게 말하거나 행동한 것을 본 적은 없었다. 그저 전우들이 힘들고 짜증날 때 그걸 정확히 감지하고 불만을 터트리고 표현했다.


 완전 군장을 하고 무기까지 든 채 몇 시간 행군을 하거나 필드에서 모의 전투 훈련을 할 때 그는 지치지 않는 용맹한 군인의 모습으로 함께 하는 동기와 부하들에게 사기를 불어넣어 주곤 했다.  틀림없이 자신도 힘들고 짜증이 날 텐데 오히려 더 박차고 일어나 마법같은 힘을 끌어내곤 했다.


부끄럼 타는 진짜 사나이


 그렇게 리더십이 강하고 진취적이며 상남자와 같은 그였으나 개인적인 대화를 나눌 때는 어쩜 그렇게 온화하고 겸손한지. 때로는 그가 부끄럼을 타는 게 아닐까 할 만큼 일대일의 관계에서는 상대의 페이스에 수동적이라는 느낌을 받곤 했다.


 써전 스미스에 대한 잔상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머리와 가슴에 남아 있다.

 

 뜨겁고 생생하며 에너지 충만했다. 수줍은 모습에 자기를 과시하는 언행이 없었다. 전체를 고려해야 하는 일에 있어서는 그 누구보다 앞장섰고 힘든 일과 지치는 일에 자신을 숨기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알면 알수록 자세를 낮출 줄 아는 인간이었으며 상대가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해 주는 묘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가 함께 하는 시간은 그것이 훈련이었든 짧디 짧은 휴식 시간이었든 시끌벅적한 파티였든 매우 유쾌했던 기억이 있다. 그는 자기가 가진 좋은 에너지와 능력과 지식을 아무 계산없이 함께 하는 이들에게 퍼다 부어 주는 이상한 존재였다.


 미군 전우들도 그를 사랑했고, 카투사 전우들도 그를 아꼈다.

 

 제대를 하고  20년 동안 그와 연락이 닿은 적이 없다. 그와 함께 한 시간은 고작 1년하고 반이 안 될 것이다.


 뜨거운 열기가 거리를 덮은 여름날 왜 그를 또 떠 올리게 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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