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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드레아 Jun 11. 2018

배우 조한철

북악산에서 만난 어린 시절 성당 식구들

6월 6일 수요일, 맑은 하늘에 감사


 얼마 전, 어릴 적 다니던 성당 지인들이 모여 있는 단체방에 알림장이 떴다. 현충일 아침 8시에 혜화동 로터리에서 모여 산행을 하자는 제안이었다.


 산을 오르는 즐거움도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무엇보다 중고등학교 시절 함께 지내던 사람들이 보고 싶었다. 그 가운데는 이따금 얼굴을 보고 온라인상으로 소식을 주고받는 사람도 있었고 이십여 년 동안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사람도 있었다.


 휴일 아침 8시 혜화동 거리는 한산했다. 해는 일찌감치 떠서 거리는 햇살로 가득한데 사람이 없는 혜화동길은 득템한 것 같은 만족감을 주었다.


 성균관 대학교 후문에서 가까운 한양 성곽길까지는 한 번 가본 적이 있다. 그러나 거기서부터 성북동으로 가는 길이 아니라 서촌으로 이어지는 길은 오늘 처음 들어가 보는 신세계였다.


 마침 혜화동에 살고 있는 친구 하나가 가이드에 나서 주었는데, 오늘의 산행 코스며 쉬는 자리, 사진 찍는 포인트, 차를 마실 곳, 식사를 할 곳, 뒤풀이를 할 곳까지 모두 일사천리로 이끌어 주어 하루가 한 줌도 버릴 시간 없이 꽉 차 흘렀다.


한길을 걸어가는 변함없는 친구를 만나


 그와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로 직접 본 적이 없었지만, 별로 낯설지 않았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 생생한 이유도 있었겠지마는 특별한 이유가 하나 있다. 그가 영화와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배우이기 때문이다. 이십여 년 동안 보지 못했던 이 특별한 인생을 걷고 있는 친구는 어린 시절의 미소와 목소리와 말투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키만 훌쩍 커 버린 채 모든 게 어린 시절의 모습처럼 느껴지는 게 신기했다.


 18년 전 당시 많은 사람들이 관람했던 영화를 나 또한 보고 있었다. 아마도 회상 장면이었을 것이다. 공장의 젊은 남녀 직원들이  풀밭에 둘러앉아 기타를 치며 노래 부르고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었다. 아, 그런데 기타 반주를 하는 젊은 남자의 얼굴을 보고 나도 모르게 소리를 쳤다. 

" 아니, 저 녀석! 저거 저거! "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소식이 끊겼던 바로 그 친구였던 것이다. 영화 박하사탕 속에서였다.


 그 이후로도 그는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넘나들며 다양한 인물로 내 눈앞에 나타났다 사라지곤 했다. 비교적 최근 작품으로 영화 곡성, 특별시민, 간신, 침묵, 판도라 등이 있는데 순수히 나만의 기억에 남는 역할은 드라마 아이리스에서 이병헌과 정준호를 단련시키던 교관이었다. 당시 이병헌, 김태희, 정준호, 김승우, 김소연 등의 화려한 캐스팅과 스케일 드넓은 첩보 드라마로 단연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기 때문에 친구의 출연이 깜짝 놀랄 만한 사건으로 다가왔다. 그가 교관으로 나오던 그 장면에서는 이병헌과 정준호보다 그의 얼굴이 더 줌인되어 보였던 기억이 떠오른다. 나와는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 속에 나와 함께 어린 시절을 보냈던 사람이 섞여 있는 모습은 다소 이질적이었고 익숙하지 않은 느낌을 주었다.



 날이 맑았던 그날 친구의 모습은 성당 마당과 지하 교리실에서 보던 그 이미지에서 달라진 게 별로 없었다. 그때처럼 날씬했고, 그때처럼 사람들에게 은근슬쩍 다가갔으며, 그때처럼 무게 잡지 않는 편안한 말투로 함께 했다. 중고등학교 시절 우리 성당의 대표적인 연극부 부원으로서 어린 시절부터 연극에 발을 담갔던 그다. 그 열정과 끼가 남다르다 느낀 건 사실이지만, 강산이 두 번 변하고도 남을 그 오랜 세월 동안 한길을 걸었던 친구에게서 뭔가 뭉클함 같은 느낌을 받았다. 살아 보았으나 그게 그렇게 쉽지 않은 일임을 이제는 알고 있기 때문일까.


 포탈에서 그의 프로필을 찾아보니 공식 데뷔는 1998년 연극 '원룸'이라는 작품이었다. 내가 늦깎이로 군 복무를 마치고 대학 3학년으로 복학하던 해에 그는 연극인으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꼭 이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는 그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연극을 포함해 이제는 드라마와 영화로 그의 세상은 훨씬 더 넓어졌다. 


 그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실로 수많은 작품에서 여러 조연을 맡았으며, 2014년에 들어서면서 영화 '숙희'에서 주연 '윤교수', 2016년 영화 '파파좀비'에서 주연 '공한철' 역을 맡는 등 점점 비중을 높여가고 있다. 그리고 2년이 지난 올해 다시 한번 주연을 맡게 되었는데 제목부터 매우 궁금증을 유발하는 영화다. 이달 21일에 개봉을 앞둔 영화 '더 펜션'에서 그는 '추호' 역으로 다시 돌아온다. 아직 이 영화에 대해서는 아무런 배경 지식도 없다. 영화를 보기 전까지 그냥 백지상태로 있을 예정이다. 그리고 꼭 영화관에 가서 커다란 스크린에 나오는 변신한 친구의 연기를 감상하고 싶다. 


 무더운 날씨는 아니었지만 몇 시간 산행을 하며 땀을 흘렸다. 친구의 안내로 윤동주 문학관 '별뜨락 카페'라는 곳에서 시원한 커피를 마시고 있을 때, 오랜 세월 잊고 지냈던 또 하나의 친구가 등장했다. 아들이 벌써 고등학생이라는 그녀는 어떻게 관리를 했을까 궁금해질 만큼 젊고 생기 가득한 모습으로 나타나 주었다. 중학생 시절 성당에서만 만나게 되는 친구들. 남자아이들과 여자 아이들이 학교에서와는 달리 허물없이 가까이 지낼 수 있었던 그곳. 그때 그 시절 다른 동네에서 전학을 와 정서적으로 기댈 곳이 많지 않았던 내게 그 친구는 참 해맑은 미소와 친절함으로 대해 주었던 기억이 난다. 


 휴일 이른 아침에 만난 우리들은 몇 시간 산행을 하고, 차를 마시며 수다를 떨고, 점심을 먹으며 수다를 이어가고, 아쉬움에 2차로 맥주 한 잔을 나누며 못다한 이야기를 실컷 나누었다. 그렇게 하고도 해가 중천에 떠 있음을 지적하며 그런 여유를 누리고 있음에 만족했고 행복함을 느꼈다. 저녁 약속이 있어 아쉬움을 머금은 채 먼저 자리를 떴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남아 있던 사람들은 꽤나 오랫동안 그 소중한 시간을 연장했던 것 같다. 다시 이런 자리가 마련된다면, 그땐 나도 더 늦은 시간까지 있어야겠다고, 언제 또 그런 시간 쉽게 가지겠냐고 생각한다. 


 친구야, 곧 스크린에서 다시 널 보겠구나. 네가 걷는 한길을 나도 어딘가에서 늘 응원하고 있으마. 앞으로도 오래도록 너의 연기를 보고 싶구나. 

 

김신조 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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