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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드레아 Sep 02. 2018

3 on 3 in Hongkong

빗길 뚫고 마카오 출장


 토요일이었지만 늦잠을 자지 않고 평일보다 일찍 일어났다. 마카오로 가는 배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마카오의 한 교육 센터에서 학생과 학부모를 위한 교실 오픈 행사가 열릴 예정이었다.


 홍콩에 온 지 한 달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서 해를 본 적이 많지 않다. 서울의 무더위를 생각하면 비가 자주 오고 어딜 가나 냉방이 너무 잘 되어 있는 홍콩이 시원하다 못해 냉기가 들 정도였지만, 햇살이 쨍하고 비치는 시간이 없으니 생활 속의 생기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거의 칠팔 년 전에 마카오 출장을 가 보고 처음 방문하는 이날 역시 우중충한 하늘과 흩날리는 비로 분위기는 축 처져 있었다. 한 시간 가량 걸리는 뱃길에서도 바깥 구경을 하고 싶은 욕구는 일지 않았다.


 홍콩과 마카오를 가리지 않고 날씨는 일관되게 흐리고 많은 비를 뿌렸다. 이윽고 센터에 도착했고, 젊고 앳된 센터의 오너 부부를 소개받았다. 남편은 서른 살 초반 정도로 보였는데 매우 사교적이며 적극적인 편이었다. 아이들을 위해 럭키드로(행운권 추첨) 상품을 직접 준비했다고 하는데, 캐릭터 지우개, 카메라 모양 펜, 알파벳 지우개, 알록달록 수첩, 각종 문구류와 어린이용 카메라까지 교실 입구에서 정면에 보이는 테이블 위에 동심을  유혹하며 비치되어 있었다.


 카지노 산업이 주축을 이루고 있는 마카오는 올 때마다 매우 이질적인 느낌을 갖게 했다. 2020년에 카지노 사업에 대한 허가증이 만료가 되어 갱신을 하게 된다고 한다. 마카오의 주된 경제 동력이기 때문에 카지노가 사라질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사업권이 현재의 사업자에서 다른 쪽으로 넘어갈 가능성은 있을 것 같다고 들었다.


 호텔과 카지노가 즐비한 마카오로만 생각했으나, 우리 프랜차이즈 교실 센터는 마천루 아파트들이 즐비한 주택가 쇼핑몰 1층에 위치해 있었다. 교실 주변을 한 바퀴 둘러보니 바로 옆에 학교가 있었고, 아파트와 상점들의 모습이 홍콩이나 광저우/심천에서 보던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었다.

 


 그토록 기다리던 토요일 밤 9시는
끝내 무위로 끝나 버리는 것인지...


 비는 추적추적 내렸지만 학생과 학부모들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 반이 될 때까지 제법 북적거리며 드나들었다. 평소에는 영어와 수학을 가르치는 공간이지만 이날만큼은 아이들이 즐겁게 놀고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열린 교실이었다. 회원뿐 아니라 회원들이 초대한 비회원도 참가할 수 있었고 그냥 우연히  알고 온 사람들도 얼마든지 들어올 수 있는 자리였다.


 오후 3시 반 정도 되었을 때 젊은 오너가 차 한 잔 하자고 말을 건넸다. 우리는 근처에서 쫀득쫀득한 알맹이가 가득 들어간 밀크티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내와 전문 센터 매니저에게 현장 경영을 맡기고 자기는 비즈니스적인 부분, 이를테면 재무, 광고 및 마케팅, 거시적인 사업 계획 등을 맡고 있다고 했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 비즈니스에 대한 열정 혹은 욕심이 퍽이나 깊은 사람이었다.


 우리 본사 입장에서는 수많은 프랜차이즈 오너들 중에 하나였지만, 이 남자에게는 또 우리의 교육 사업이 자신의 비즈니스 포트폴리오 중의 하나이면서 앞으로의 계획 또한 구체적이고 야무지게 느껴졌다. 손아래의 젊은 외국인 오너의 표정과 말투 그리고 몸짓 전체에서 성공에 대한 집념과 열의가 강하게 전달되었다.


 이날 오픈 데이 행사는 비교적 순탄하고 알차게 진행되었고 센터 사람들과 작별 인사를 마친 우리 일행은 홍콩으로 돌아가는 페리에 몸을 실었다. 빗발이 조금 잦아들기는 했지만 돌아가는 뱃길의 바다와 하늘은 회색빛의 무겁고 흐린 연주를 멈추지 않고 있었다.


 나에게는 비장의 무기가 하나 있었는데 바로 이날 밤 9시부터 테니스 모임이 있었던 것이다. 비록 토요일 하루를 온전히 쉼으로 채우지 못했으나 저녁을 먹고 코트를 누빌 수 있다면 모든 스트레스를 다 풀고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코트는 비가 그치기만 하면 운동을 할 수 있는 인조 재질의 바닥이었고 8시가 지나도록 비가 그치지 않아도 희망을 끈을 놓지 않았다.


 함께 테니스를 하기로 했던 멤버들에게 채팅창을 통해 잠시 후에 보자고 슬쩍 한 마디 올렸다.

 

 아!

 

 " 어! 전 비가 와서 운동 못한다고 생각하고  축구 경기 보러 왔는데요! "


 " 저도 오늘 운동 못할 거 같아서 다른 데 왔습니다. "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아니었다. 실망은 했지만 바로 후속 행동을 개시했다. 그냥 테니스 라켓을 들고 근처 테니스장으로 가는 것이었다. 지난번처럼 코트에 가서 적당한 팀이 보이면 말을 붙이고 함께 운동하게 해 달라고 부탁하는 거였다.


 9시가 넘은 그 시각 현재. 코트는 물로 흥건했고 오직 한 코트에서 두 명만이 테니스를 하고 있었다. 그것도 게임이 아니라 테니스 레슨을 하는 것이었다. 철창 안으로 네 개 코트를 샅샅이 살피고 또 살핀 후에야 마음을 정리하고 테니스장을 떠나 발길을 다른 데로 돌렸다.


 이렇게 된 마당에 평소 가보지 못했던 집 근처 바닷가의 야경이나 보면서 산책을 하기로 했다. 어떻게 보면 부산 해운대 근처의 풍경 같아 보이기도 하는 동네 바닷가. 친구 가족들과 함께 몇 번 방문했던 그곳의 추억이 잠시 말풍선처럼 떴다 사라졌다. 걷다가 뒤돌아 보며 구도를 잡고 사진 몇 장을 담았다.

  


3 on 3 in Hong Kong


 의외로 이곳엔 많은 배들이 정박하고 있었다. 큰 배가 아니라 자그마한 배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었는데 생업을 위한 배와 레저를 위한 보트들이 섞여 있는 듯했다. 키타큐슈의 서쪽 바닷가에도 어두운 바닷가 풍경 안에 자그마한 배들이 정박해 있었는데 그 느낌은 차분하고 고요해서 이곳 바닷가의 화려함과 대조적이다.


 평소 걷던 방향과 반대로 걸어가다 막다른 곳에 다다랐다. 길이 난 곳으로 우회전을 하니 야간 조명을 켠 농구장이 나왔다. 홍콩에는 이렇게 동네 곳곳에 농구장을 많이 만들어 놓았는데 대부분 야간에도 할 수 있게 조명 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어차피 테니스는 못하게 됐고, 정말 오랜만에 농구나 한 판 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올코트가 두 군데였는데 각 골대마다 한 명 혹은 두세 명이 흩어져서 운동을 하고 있었다. 청년 두 명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혹시 다른 사람들 모아서 쓰리 온 쓰리 반코트 게임을 하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영어로 말을 걸었는데 자기들끼리 홍콩말로 몇 마디 주고받더니 나에게도 영어가 아닌 홍콩말로 뭐라 뭐라 하더니 다른 코트로 움직이는 거였다. 옆 코트에서 뛰고 있던 남자 하나와 여자 하나에게 함께 게임을 하자고 제안하기 위함이었다.


 편을 가르기 위해서 전체적으로 흘끗 훑어보았다. 대충 편이 나왔다. 나는 중간 키의 젊은이와 가위바위보를 해서 편을 갈랐고, 제일 키가 큰 두 남자에게도 편을 가르라고 말했다. 홍콩 젊은이들이라 영어가 잘 통한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어 보였다. 그들이 영어에 아주 능숙하지 못한 부분도 있었지만, 편을 가를 때 쓰는 방법이 우리와 좀 달라서 헷갈리는 탓도 있었다. 그들은 가위바위보에서 가위를 빼고 바위와 보만 가지고 전체적으로 같은 걸 낸 3명끼리 편을 먹는 방식을 썼다. 우리가 흔히 '대댄찌'라고 부르는 손의 윗면과 아랫면으로 편을 가르는 방식과 유사했다.


 편을 갈라 보니 여자 선수가 우리 편이 되었다. 어려 보이는 그 친구에게 나이를 물어보니 16살로 홍콩에서는 고2에 해당했다. 아무래도 신장이 작고 움직임이 남자들에 비해 느릴 가능성이 높아서 불리하다고 생각했다.


 21점씩 4 쿼터로 진행하는 시합이 시작되었다. 보통슛은 2점이며 3점슛이 있었다. 40대 한국 아저씨는 10대와 20대가 섞여 있는 홍콩 젊은이들과 길거리 농구를 시작했다. 테니스가 아니라 농구였기 때문에 틀림없이 체력적으로 부담이 되는 상황이었다.


 아, 그런데 이게 웬일? 우리 팀의 여고생 선수는 주특기가 중거리슛과 3점슛이었다. 6대 6 정도 상황에서 그녀는 멋지게 3점슛을 터뜨렸고 우리는 9대 6으로 달아났다. 한 번 어쩌다 그런 슛이 들어간 것이 아니고 1 쿼터에만 중거리슛과 3점슛이 네댓 번은 터졌을 것이다. 1 쿼터 21대 8 우리 팀의 완승이었다.


 그 이후 3 쿼터까지 기가 살 데로 산 우리 팀은 큰 점수차로 연속 승기를 잡아내는 데 성공했다. 3번 연속 이기니까 긴장이 좀 풀렸던 걸까. 4 쿼터에서 상대팀은 분발했고 종전 경기보다 슛의 성공률이 월등히 좋아졌다. 우리도 점수차를 좁히며 반격에 나섰지만 4 쿼터는 적의 승리로 돌아갔다.


 습도가 어마어마하게 높은 홍콩의 바닷가에서 21점짜리 경기를 7 쿼터까지 이어갔다. 입고 있던 옷이 정말 물속에 들어갔다 나온 듯 젖어 버렸다. 숨은 턱까지 차올랐고 여섯 명의 선수들은 11시가 다 되어가도록 무아지경의 농구 혈투를 벌였다.


 물어보니 대부분 그 근처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그날의 기분 좋은 농구 시합을 마감하며 감사함을 전했다. 그리고 다들 가까이 살고 있으니 다시 만나 또 즐겁게 같이 운동했으면 한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상의는 세탁하던 옷을 꺼내 입은 듯 축축했고 걸을 때마다 살에 닿는데 차가운 느낌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그러나 테니스의 좌절을 이 우연한 농구 시합으로 상당 부분 만회할 수 있었기 때문에 돌아오는 발걸음은 가벼웠고 흠뻑 땀을 흘린 후의 기분은 카타르시스와도 같은 후련함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내일은 일요일이다. 크핫. 날씨만 개면 테니스 치러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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