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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드레아 Sep 09. 2018

내 인생의 전성기

 15년쯤 전이었을까.


 아니면 좀 더 오래전이었을까. 기억이 정확히 나지 않는 어떤 지방 호텔 방에 장식품이 있었다. 유리 아니, 투명하고 딱딱하고 밀도가 높은 무거운 플라스틱 육방면체에 전갈 한 마리가 박제되어 있었다. 그것은 꽤나 이목을 끌고 있었지만 구식이었다. 아마도 아버지 젊었을 시절에는 매우 고급스러운 물건으로 고급 호텔방에 맞는 인테리어 소품이었을 것이다.


 낯선 곳으로 출장을 가거나 개인적인 여행을 가면 바깥 풍경에서 느껴지는 생소함이나 지방색뿐 아니라 실내에서도 평소에는 접하기 어려운 분위기를 맞닥뜨리곤 한다. 투명 플라스틱 덩어리에 갇힌 전갈 장식도 그런 느낌에 포함되었다.


 왠지 모르겠지만 오래전 이 기억이 사람들이 넘치게 북적거리는 홍콩의 오션파크를 거닐 때 떠올랐다. 오션파크와 박제된 전갈 사이에는 아무런 개연성이 없다. 그냥 툭하고 장기 기억 상자 안에서 튀어나온 것이다. 마치 어시장 가판 스티로폼 상자 위에서 파닥거리는 살아있는 물고기처럼 말이다.


 억지로 유추해 보자면 아이들을 데리고 놀이 공원을 돌아다니며 사람에 치이고 후텁지근한 날씨에 지쳐 있어서 그랬던 게 아닐까 한다. 좀 조용한 곳에서 쉬고 싶다는 갈망이 그 차분하고 고요했던 지방의 호텔방을 떠올리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만일 홀로 지내는 주말이었다면 얼마나 홀가분하고 편하게 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겠는가. 읽고 싶던 책 한 권을 들고 조용하고 시원한 카페를 찾았을 수도 있다. 그냥 아직도 낯선 이 홍콩에서 아무 버스나 잡아 타고 거리 구경이나 하며 다녔을는지도 모른다.


 마흔 하고도 여섯. 큰 아이를 키우고 나면 오십 대 중후반, 작은 아이까지 키우고 나면 예순이 넘어갈 것이다. 그때쯤이면 내 마음대로 살 수 있을까. 글쎄 잘 모르겠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때는 언제일까. 가장 찬란하고 가장 행복한 시간은 언제로 기억될까.

 

 선뜻 공감해 줄 이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까 수많은 인파 속에서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든 생각은 이랬다.

 '바로 이 시간이다. 내가 아이를 무등 태우고 목과 어깨가 뻐근해지도록 공원 이곳저곳을 힘겹게 돌아다니는 시간. 하고 싶은 운동도 못하고 쉬고 싶은 마음 달래며 가족과 부대끼는 이 시간. 아마도 훗날 내가 기억하게 될 가장 찬란하고 되돌리고 싶을 시간은 바로 이런 때일 거야.'   


 스티브 잡스도 가족들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했던 걸 후회했다지 않은가. 아이는 생각하는 것보다 너무 빨리 자라 버린다. 키우는 게 좀 힘들긴 해도 아빠를 반겨줄 때 많은 사랑을 주고 싶다. 아빠의 품을 떠난다 해도 자식에 대한 마음이 없어질 리 만무하겠지만, 그때는 또 자신만의 세상에서 힘차게 헤엄쳐 나가도록 풀어 주어야 하겠지.


 어떻게 된 일인지 나는 다른 여느 아빠들처럼 일상 속의 아빠로 있어 주질 못했다. 특별한 이벤트가 없어도 그저 매일매일 얼굴을 서로 마주하고 잠을 같이 자고 밥을 같이 먹는 그런 아빠이질 못했다. 참 평범하고 쉬워 보이는 그 일이 나에게만큼은 왜 이다지도 어려운 일이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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