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 고교생의 소설
만약에 내가 간다면 내가 다가간다면
넌 어떻게 생각할까
용기 낼 수 없고
만약에 네가 간다면 네가 떠나간다면
널 어떻게 보내야 할지 자꾸 겁이 나는걸
내가 바보 같아서
바라볼 수 밖에만 없는 건 아마도
외면할지도 모를 네 마음과 또 그래서
더 멀어질 사이가 될까 봐
정말 바보 같아서 사랑한다 하지 못하는 건 아마도
만남 뒤에 기다리는 아픔에 슬픈 나날들이
두려워서인가 봐
태연의 <만약에>를 1시간 반복으로 들으며 운전을 했다. 이 노래를 오래전부터 알았고, 이따금 듣곤 했다. 들을 때마다 이 노래는 가슴을 에곤 한다. 나이가 들면서 조금은 둔감해지는 이런 감정이 살아나는 것은 바로 이런 음악의 자극이 있거나, 문학 작품 속에서 잊고 있던 무언가를 건드리는 글을 접할 때인 것 같다. 오늘은 두 가지가 함께였다. <만약에>를 듣기 전에 오전 내내 한 책에 빠져 있었다. 책의 제목은 <2080년의 낭만>.
2080년의 낭만이라니 무슨 말인가. 낭만은 보통 과거를 떠 올리게 만드는 표현 아니었던가. 2080년이라면 거의 육십 년 후의 미래가 아니란 말인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 두 어휘가 결합된 소설을 쓴 저자가 아직 앳된 고등학생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좀 더 놀랍지 않은가.
*발췌 P.63 (테멜다의 기록 중에서)
지극히 익숙한 것들이 곁을 떠나고, 과거라는 이름으로 붙잡을 수 없는 비물질적인 존재가 되어버리고, 테세우스의 배는 바로 나의 자아에 던지는 질문이 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인간존재라는 게 시간축을 따라 펼쳐지는데 이런 변수들은 당연한 거 아닌가. 두려워 말아야 한다. 내가 나갈 세상이다. 끝을 확인할 수 없는 길들이 그렇게 알려주고 있는 것 같았다.
소설은 손 편지 형식을 띠고 있었다. 꽤 오랜 후의 미래를 살아가는 두 청년은 아마도 절친일 것이다. 둘은 지금의 보육 시설과 비슷한 센터에서 함께 성장하던 중, 하나가 독립해 먼저 센터를 떠난다. 그(테멜다)는 확고한 목표를 가지고 먼저 센터 문을 박차고 나갔다. 남아 있는 또 하나의 친구(펜시어)는 그의 부재가 무척 크게 느껴지고, 가까운 미래에 다시금 함께 하길 소망한다.
*발췌 P.89 (펜시어가 테멜다에게 쓴 편지 중에서)
너는 네 무지를 마주하는 일이 네 생명의 원동력인 것처럼 굴었어. 모르는 걸 발견할 때마다 환희에 차서 말이야. - 중략 - 그렇게 꽤 오랜 시간이라고 자부할 만큼 긴 기강 동안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널 관찰하다 깨닫게 된 사실이 있어. 너는 정말로 남한테 마음 주지 않는 사람이야.
펜시어는 편지에서 먼저 독립해서 센터를 나간 친구 테멜다에게 많은 이야기를 전한다. 가족처럼 지내던 동생들의 근황, 센터 안의 담당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 테멜다가 떠난 후의 센터의 분위기. 물론 자신의 감정이나 진로에 대한 고민도 끄적인다. 그런데 무엇보다 강하게 느껴지는 건, 떠난 친구를 향한 그리움과 다시 만나고자 하는 열망과 의지이다. 아마 나는 펜시어에 감정이입되어 <만약에>라는 노래를 떠 올렸는지도 모르겠다.
소설의 저자는 원래 짤막한 단편 소설 하나를 더 어릴 적에 썼다가, 고교 2학년이던 지난해 바쁜 학교 생활 틈틈이 장편 소설로 완성시켰다고 한다. 벌써 오래전부터 소설 습작을 했던 나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이런저런 핑계로 완성을 미뤄왔지만, 우리나라 고등학생보다 더 바쁘고 더 힘들었을까 스스로에게 반문해 보았다.
게다가 이 저자는, 저자가 어린 시절, 내가 목욕통 안에 그를 세운 채 샴푸캡을 씌워 머리를 감기고, 목욕을 시켜 주던 딸이라는 사실. 요사이 나는 오미자와 같은 여러 가지 감정과 상념에 젖어 있다.
그의 성장은 어디로 향해 나아갈지 더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