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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스 있는 사람의 향기 -일터에서

이 사람과 일하는 것이 즐겁다.

by 안드레아


혹시 나는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인가.
센스는 타고나는 걸까?
센스는 노력으로 얻어질 수 있는 능력일까?


직장에서 혹은 여러 사회 모임에서 만나는 사람들 가운데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끌리는 사람이 있다. 이성 교제나 순수한 친구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여기서는 함께 공동의 일을 추진하는 관계에서의 만남에 대해 특히 말해 보고 싶다.


어쩜 그렇게 사람의 마음을 잘 알아주는지?
어쩜 그렇게 센스가 있는 것인지?
어쩜 그렇게 사려 깊고 따뜻한 느낌이 나는지?
이런 사람과 함께 일한다면 정말 일할 맛이 난다.
나도 이런 센스 있는 사람이 돼야겠다.

DSC_1371.jpg 후쿠오카시에서 배로 10여분을 가면 닿을 수 있는 '노코노섬'


종합상사에서 근무할 때의 일이다. 회사의 부서가 크게 영업부와 관리부로 나뉘어 있었다. 영업부는 각 세부 아이템별 본부/팀으로 구성되어 수출, 수입, 삼국간 무역을 통해 매출을 올리고 영업이익을 창출하는 일을 맡고, 관리부는 외환/금융/리스크 관리/인사/경영지원/법무팀 등으로 비즈니스 이외의 여러 기능을 담당한다.


우리 회사는 영업과 관리 부서 사이에 묘한 대립감이 스며 있었다. 영업 쪽 사람들은 기안을 올리고 결재 라인을 거치는 과정에서 외환팀/리스크관리팀/법무팀 등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종종 영업부서 사람들은 관리부서가 너무 깐깐하게 나온다고 여겼고, 관리부서 사람들은 영업부서 사람들이 너무 욕심이 앞서 업무 관리가 허술하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입장 차이에서 나오는 이런 모습은 조직 어디에서나 쉽게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이기는 하다. 영업 쪽 사람들이 말하기를 회사의 돈을 누가 벌어다 주는데 오히려 관리부서 사람들을 내부 접대해야 하는 지경이라고 투덜대기도 했다. 관리에서는 영업부서 사람들이 실적에만 눈이 어두워 과정을 중시 여기지 않기 때문에 사고가 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 와중에도 서로를 탓하기보다 영업 관리를 구분하지 않고 어떻게든 도와주려는 모습을 보여 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마치 어두운 밤하늘에 별처럼 빛나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하고 싶을 정도로.


그중 한 사람이 경영지원본부에서 일하던 K 대리였다.


풍경 1.

K대리: 여보세요? 경영지원본부 K입니다.

L대리: 아, K대리님, 안녕하세요? 저 철강원료팀의 L입니다. 다름이 아니고 이번 달 해외 지사 실적에서 자카르타 지사에 들어가야 할 실적 일부가 누락이 되었어요. 저희 신입사원의 실수입니다. 그런데 자카르타 지사가 이번 달에 무지 어려워서 이 실적을 넣어 주지 않으면 상당히 곤란한 상황이 될 것 같아요.

K대리: 아, 그러셨군요. 실은 실적 정정 기간이 어제로 끝나서 공식적으로는 조정이 어렵긴 해요. 그런데 제가 내부적으로 다시 알아 보고 연락 바로 드릴게요. 회사에 지대하게 공헌하시는 철강원료팀에서 이렇게 부탁하시는데 가능하면 도와드리도록 노력해야지요. 제가 지금 확답하기는 어렵지만, 빨리 상의해서 연락드리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L대리: 아, 정말 너무 감사합니다. 대리님, 최고! ^^


K대리는 전화받는 목소리에서부터 상냥함과 사려 깊음이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몇몇 아니, 좀 많은 관리 부서 사람들이 영업부서와 일하면서 원칙이라는 미명 아래 귀찮은 일은 아예 상대하기 싫다는 기색을 폴폴 풍기고 있었다. 그런 분위기에서 K대리처럼 영업 쪽의 입장에 서서 가능하면 일이 되는 쪽으로 풀어 주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을 만나니 살짝, 아니 좀 많이 감동스럽기까지 했다.


K대리는 영업팀을 대신해 소속 팀장님과 잘 상의해 주었고, 결국 누락된 실적은 자카르타 지사로 잘 입력되었다. 비록 실적 정정 기간이 끝났지만 딱 하루가 지났고 경영지원 담당자들이 최종 평가를 위한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합당하다 판단되는 건에 대해서는 구제해 주기로 했다는 설명도 들었다.


혹자는 실적 정정기간이라는 원칙을 어긴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겠다. 이런 의견 역시 생각해 볼 여지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담당 부서에서 정식으로 사안을 검토했고 단순한 입력 실수로 인해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하는 것보다는 정정기간 이후라도 정정 처리를 해서 바로잡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던 건이다.


DSC_1232.jpg 유후인 긴린코 호수 전경
DSC_1251.jpg 벳부 지옥온천의 한 연못


풍경 2.

철강원료팀 장 대리: 여보세요, 김 대리님, 안녕하세요? 방금 팀장님 결재받고 기안 하나 외환팀으로 넘어갔는데요. 이거 좀 급한 건이라 검토 좀 빨리 부탁드립니다.

외환팀 김 대리: 아, 네. 저희 팀장님 지금 외근 중이시라 돌아오시면 말씀드릴게요.

두 시간 뒤 장대리가 김대리에게 다시 전화를 건다.

장 대리: 김대리님, 독촉하는 것 같아 죄송한데요. 정말 급한 상황입니다. 가격이 계속 올라가고 있어서 빨리 신용장 열지 않으면 바이어가 도망갈 상황이거든요. 결재가 완료되어야 신용장을 열 수 있어서 엄청 쪼이네요 지금 ㅠㅠ

김 대리: 네, 알겠어요. 근데 팀장님이 아직 안 오셨어요. 저도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장 대리: 죄송하지만 외환팀장님한테 휴대폰으로 연락을 좀 해주시면 안 될까요?

김 대리: 팀장님, 미팅하실 때 전화하는 거 싫어하시는데. 일단 알겠으니까 좀 기다려 보세요.


외환팀장은 그 시각 주거래은행과의 미팅으로 출타 중이었다. 그리고 저녁 만찬까지 이어져 자리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김대리는 장대리에게 계속 기다리라고만 했고 기안은 그날 처리되지 못했다. 신용장을 빨리 열어야만 하는 상황이었으나 기안의 중간 결재가 지연되면서 거래가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위의 사례가 완벽한 예가 되지 못할 수 있다. 재구성한 대화 내용으로는 그때 그 상황과 현장감을 100% 정확히 재현하기 어렵다. 하지만 위 풍경 1과 풍경 2에서 보이는 경영지원본부의 K대리와 외환팀의 김 대리의 태도에서 우리는 차이를 느낄 수 있다.


DSC_1261.jpg 벳부 지옥온천 실내 연못

K대리는 기본적으로 영업팀의 어려움을 공감하고자 하는 태도를 지닌 사람이었다. 전화통화를 하거나 찾아가서 말을 걸어 보면 언제나 환한 웃음으로 대해 주었다. 꼭 일이 아니더라도 개인적으로 친하게 지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반면 외환팀 김 대리의 경우, 딱히 그의 잘못이라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으나 그에게는 공감하는 마음이 느껴지지 않았다. 팀장의 부재로 인해 기안 결재가 더 이상 진행되지 않는 부분을 이해한다 하더라도, 영업팀에서 거래가 무산된 위기에 처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데 마냥 남일처럼 드라이하게 대할 뿐이다. 자신의 팀장이 미팅 중간에 전화하는 걸 싫어한다고 말했지만, 회사를 위해서 일하는데 이런 사사로운 호불호를 말하며 연락조차 하지 않으려 드는 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 것인가.


센스 있는 사람에게서는 향기가 난다.


그 센스는 천성적인 것일 수 있다. 정말 타고나기를 스마트하게 났고,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도 탁월하여 말하지 못한 부분까지 손을 뻗어 긁어 주는 그런 사람. 지금까지 직장 생활을 하면서 비율은 낮지만 틀림없이 이런 사람들이 곳곳에 아름다운 꽃처럼 자리하고 있었다. 나는 그 인간꽃들로 인해 도움을 많이 받았고, 나라는 인격을 더 아름답게 가꾸기 위해 자발적으로 노력할 수 있었다.


한편 천성적으로 이런 센스나 공감 능력이 뛰어난 편이 아닌데 후천적으로 만들어진 경우도 있다. 비록 빠른 두뇌 회전과 섬세한 감각으로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유형이 아니더라도 마음이 된 사람이라면 충분하다. 함께 하고자 하는 마음, 상대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이고자 노력하는 마음, 공동의 선을 추구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괜찮다.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 시간은 가치가 있다.


지금도 나는 하루하루의 일상 속에서 배우고 느낀다. 특히 일본이라는 다른 문화 속에서 살며 일하면서 그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차이를 경험하며 관계의 속을 살피게 된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반응이 이곳에서는 당연하지 않았고, 말 한마디, 행동 하나를 할 때에 이것이 과연 무리 없이 잘 흘러갈 수 있는 말과 행동인지 더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어떤 나라, 어떤 문화 속에서 살더라도 역지사지易地思之를 할 줄 아는 사람들과의 공존은 나를 행복하게 한다. 내가 곤란할 수 있는 일은 상대도 곤란할 수 있고, 내가 편리하고 기분이 좋은 것이라면 역으로 상대에게 그렇게 해주어도 편리하고 기분 좋은 일이 된다는 것을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겪으면서 계속 깨닫는다.


지금 내 마음속에는 센스 있었던 과거의 동료들, 센스 있는 현재의 파트너들, 그리고 친구들이 떠오른다. 이들을 생각하면서 나는 슬며시 미소 짓고, 사는 맛이 이런 거지 하며 혼잣말을 읊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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