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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기노 Oct 14. 2024

은퇴를 위한 또 하나의 준비 - 단샤리(断捨離)

조기은퇴 D-800일  단상

2026년 12월 31일. 월급쟁이 생활 정확히 30년이 되는 이 날을 내 방식대로의 조기은퇴 D-Day로 잡고 있다. 여기서 ‘내 방식대로’란 매일 출근하는 삶에서의 졸업을 뜻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충분조건이며 결국은 경제적 자유를 이룬다는 의미이다. 오래오래 건강하게 놀고 돌아다닐 수 있도록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자유를 챙취하겠다는 열망을 담은 상대적인 ‘조기’ 일뿐 그래봤자 50대 중반의 나이가 되어 있을 터이다.


카톡 프로필에서 보여주는 카운트다운에 의하면 오늘 기준으로 목표 달성까지 이제 800일 남짓 남았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회사생활하며 아직까지 구조조정의 유탄 한번 맞지 않은 채 명목상의 정년 이전에 조기 은퇴를 꿈꿀 수 있을 만큼의  대우와 보상을 받아왔고 그 이상으로 자산운용 등에 있어 운이 따라 줬기에 가능한 일이다. 지난 30년 가까이 직장 생활하는 중에 두 번의 큰 수술을 받았고 자만과 어리석음으로 큰 실패도 겪었지만 어떻게든 여기까지 왔다. 참으로 고마울 따름이다.


몇 년 전부터 경제적 자립에 대한 그림이 어느 정도 그려지면서 자연스럽게 고민의 축이 ‘앞으로 그리고 은퇴 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로 옮겨졌다. 나로선 실질적이지만 남들이 보기엔 행복한 고민을 하기 시작할 무렵 우연히 ‘단샤리(断捨離)’의 콘셉트를 처음 접하게 되었다. 원래부터 물건이든 관계나 현상이든 심플하고 미니멀한 것들을 좋아하던 취향이었기에 단/샤/리/라는 세 단어에 압축된 명료한 삶의 방식에 ‘이거다’ 싶었다. 내 보잘것없는 삶의 가치관이 지지받는 느낌이었다.




‘단샤리’는 끊고(断), 버리고(捨), 벗어난다(離)는 세 개의 한자 단어 조합에 대한 일본어 발음이다. 일본 요가 지도자 오키마사히로(沖正弘)의 저서 『요가의 사고방식과 수행법 (ヨガの考え方と修業法)』(1976)에 그 단어가 처음 등장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가 주창한 단행, 사행, 이행이라는 수행의 첫 글자를 따와서 하나의 사상이 탄생하였다.

断行(단행) : 새로 얻게 될 필요 없는 것을 끊어버린다 (취하지 않는다).

捨行(사행) : 오랫동안 지니고 있던 불필요한 것을 버린다.

離行(이행) : 물건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난다.


이 개념이 본격적으로 유행하게 된 건 야마시타 히데코(やましたひでこ)의 저서 『新 정리의 기술 ‘단샤리’』(2009)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부터였다. 저자는 수많은 방송이나 언론에 나와 단샤리를 장착한 삶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파를 했다.

물건에의 집착을 버리고 주변을 깨끗이 정리함으로써 마음도 스트레스로부터 해방되게 하는 게 목적입니다.


원래부터 나는 꼭 필요하지 않은 물건에 대한 욕심이 많지 않았다. 20대 중반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 필요에 의해 양복을 구매하며 내 취향의 넥타이를 고르는 재미에 잠깐 빠진 적이 있고, 20년 이상 조깅이나 등산을 즐기면서 관련 용품 쇼핑에서 나름 쾌감을 경험하곤 했지만, 대체로는 뭔가를 구매하고 소유하는 데 별 감흥을 못 느끼는 편이다. 오히려 물건을 고르고 비교한 후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그 시간이 아깝고 귀찮기까지 하다. 정리를 잘한다고 할 수는 없으나 불필요한 것을 새로 늘리지 않고, 지니고 있는 것도 필요가 다하면 큰 망설임 없이 잘 버린다는 측면에서, 적어도 눈에 보이는 것들에 대한 단샤리는 어느 정도 실천해 오고 있다고 생각한다.


단샤리의 보다 중요한 측면은, 인간관계나 현상을 바라보는 자세 등 직접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이 아닌가 싶다. 당연하지만 세상의 모든 일에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직간접적인 인간관계가 그렇다. 가족, 친구, 학교나 사회에서 만난 선후배 동료, 뭔가의 계기로 맺어진 지인 등 어떤 식으로든 나와 인연이 있는 모든 이들과의 관계에서 내가 통제하기 어려운 (예를 들면 가족) 것들을 제외하면 내게 정말로 필요하고 유지할 가치가 있는 관계가 얼마나 되나? 지난 몇 년간 수 없이 스스로에게 물어온 질문이다.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명목하에 어떻게든 끈을 유지하려 했던 그런 인간관계로 내가 직접 큰 피해를 본 것은 거의 없지만, 이 ‘보일랑 말랑한’ 관계조차도 어떤 식으로든 유지하기 위해서는 나름의 시간과 에너지 소비가 필요했다. 회사일로 바쁜 와중에도 모임에 빠지면 나만 뭔가 뒤처지는 것 같아 꾸역꾸역 참석하고 집에 가는 길에는 종종 공허감이 밀려오곤 했다. 그 모든 만남이나 관계들이 무의미했다고 하면 상대방에게 큰 실례임에 틀림없지만,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면 그 시간에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거나 집에서 책이나 읽는 편이 훨씬 의미 있었을 순간들이 늦가을 비바람에 떨어진 은행나무 열매만큼이나 많았던 것 같다. 그렇게 어느 순간 나는 카톡 단톡방을 지우면서 많은 모임과 관계를 끊었다.


대외적인 명목에 비해 헛헛했던 인간관계를 정리한 후, 마음속에 여전히 남아있던 허세와 부질없는 욕망을 버리기 시작했다. 이는 현재완료형이 아니라 지금도 진행형이다. 젊은 나이부터 임원노릇하다 보니 내가 엄청 잘 난 사람이란 착각으로 살아온 지 십여 년. 겸손과 배려를 늘 새기며 살아왔다고는 하지만, 보이지 않게 어쩌면 드러나게 남들을 무시하며 허세를 부려온 내 모습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한번 올라간 기준치를 항상 넘어서야 한다는 강박에 더 높은 곳에 대한 욕망이 늘 나를 지배해 왔던 것도 사실이다. 적당히 높은 곳까지는 누구보다 먼저 도달했지만 더 높은 곳으로 가기 위해 갖추어야 할 능력이나 절실함이 내게는 없다는 것을 비교적 최근에야 깨달았다. 아닌 것은 아님을 알고도 처음에는 그것을 인정하지 못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받아들이고 내려놓으며 단샤리의 진정한 세계로 한걸음 더 다가서다 보니 역설적으로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다.

끊고 버릴 것들은 허세나 욕망만이 아님을 요즘 또 한 번 알아가고 있다. 지난날에 대한 후회와 미련으로 인한 정신적인 짐, 쓸데없는 걱정과 불안 등 내 마음에 일렁이는 부정적인 감정들도 단샤리의 대상이 된다. 이와 관련해서는 의도적으로 감정을 막기보다는 현재에 집중함으로써 자연스레 생각을 버리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산행이나 달리기, 산책이나 요리 등이 ‘생각 버리기‘를 위한 나만의 루틴이다. 쓸데없고 부정적인 생각을 덜어내니 매 순간 더욱 긍정적이고 감정의 동요가 크지 않게 되고 있는 것 같다. 나이 50 넘어서도 여전히 어른이 되는 과정을 지나고 있는 느낌이다. 단샤리와 함께 나는 오늘도 조금씩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필요 없는 것들을 버리고 집착을 내려놓는다는 측면에서, 단샤리는 단순히 뭐든지 무조건 줄이고 없애는 개념과는 차이가 있다. 의식주를 비롯하여 꼭 필요한 것들마저 천편일률적으로 미니멀하게 가져가기보다는 필요의 정도에 따라 소유 및 경험의 구성을 효율화하고 최적화하는 과정이 단샤리가 추구하는 가치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또한, 물질의 과잉에서 탈피하는 일차원적인 개념을 넘어, 마음의 평화를 방해하는 모든 것들을 버리고 비우며 거리를 둠으로써 진정한 자유를 찾아가는 과정이야말로 단샤리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버리고 비우지만 목적의식을 잃지 않는 삶이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물질이나 정신적인 부분 모두에서 단샤리는 나의 은퇴 이후 삶을 계획하고 실천해 감에 있어 가장 기본이 되는 원칙이라고 할 수 있다.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과잉을 덜어내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임으로써 더욱 풍요롭고 자유로워진 만큼 앞으로 누군가의 결핍에는 미약하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브런치에 남기는 이 글을 통해 이러한 나의 소박한 다짐에 스스로 최소한의 구속력을 부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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