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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기노 Aug 25. 2020

감성 아재의 조기 은퇴 도전기

FIRE가 내 가슴에 불을 댕기다

내 나이 어느덧 우리 나이로 마흔아홉, 직장생활 24년 차로 회사에서는 꽤 고위 간부직을 맡고 있다. 대한민국의 가장들이 대체로 그렇듯이 답답하고 힘들어도 어디 가서 속 시원히 하소연 하나 못하며 지난 세월을 견뎌왔다. 찬란한 슬픔이니 가슴 벅찬 서러움이니 하는 감상적이지만 복합적인 그런 감정들이, 내가 누리고 있는 지금의 생활과 꿈꾸고 있는 미래의 밑바닥에 켜켜이 쌓여있는 것만 같다.


물론 중간중간 성취감과 보람을 느꼈던 수많은 순간들이 있었다. 25년 가까이 직장생활을 해오고 있지만, 지금 내가 과연 행복한지 묻는다면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끊이지 않던 차에, (다행히) 작년 큰 아들의 대학 입학을 계기로 내 삶에 뭔가의 변화를 줘야겠다는 정확히 실체는 없는 갈망 같은 게 마음속에 자리잡기 시작했다.


그렇다. 그저 월급쟁이로 오래 다니는 게 최고의 은퇴준비라고 하는 마당에 남들에게는 배부른 고민일지 몰라도, 나는 그 순간 ‘은퇴’라는 단어를 떠올리며 그 자체로 설레기까지 했다. 하지만 자칫하면 생각만 하고 실행에 대한 의지나 계획 하나 없이 공상만 하며 또 시간을 흘려보낼 뻔했다. 우연히 도서관에서 <파이어족이 온다 (원제 “Playing with Fire” by Scott Rieckens)>라는 책을 빌려서 읽기 전까지는. 그러고 나서 팟캐스트나 유튜브를 통해 FIRE에 대한 많은 정보를 접하기 전까지는.                                         

FIRE는 “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의 약자로 ‘경제적 자립을 토대로 조기 은퇴를 추진하는 사조’ 정도로 요약될 수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월가 등의 고소득 밀레니얼 세대를 중심으로 ‘바짝 벌고 악착같이 모아서 내가 원하는 삶을 살자’라는 취지 하에 유행이 되었다고 한다. 미국에서 FIRE를 실행한 사람들의 실제 사례로 보면 대체로 은퇴 연령이 40대 중반을 넘지 않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점에서 나처럼 50을 바라보는 이에게는 이미 그다지 이르다고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각자의 직업이나 사회적/경제적 위치 등에 따라 FIRE를 실현할 수 있는 시점은 달라지겠지만, 소위 FIRE族들이 은퇴를 어떻게 정의하고 조기 은퇴를 위해 어떤 삶의 방식을 취하고 있는지에 대해 알아가면 갈수록 나도 따르고 싶다는 열망과 함께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강한 자신감마저 들었다.


FIRE족들이 말하는 은퇴의 정의는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그들이 말하는 은퇴는, 특정한 조직에 얽매여 매일 단위로 돈벌이를 하는 행위에서의 졸업을 지칭하지만, 경제적 자립을 바탕으로 자기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자기가 필요한 시간만큼 얼마든지 이어갈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일은 아예 안 하고 노후연금으로 유유자적 크루즈 여행이나 다니는 그런 우아한 은퇴생활과도 근본적으로 다르다.


고정적인 월급 명세 없이도 생계에 문제가 없어야 하기에 검약한 생활은 기본이다. 많은 경우 FIRE족들은 물가가 싼 지역에 자리 잡고 언택트로 내키는 만큼만 일을 하며 일상 같은 여행을 즐기며 소박하지만 마음 편하게 생활한다. 조기 은퇴 즉 FIRE를 실현하는 과정에서는, 극단적으로 버는 수입의 70%까지도 저축하는 삶을 살아야 하기에 관계 지향을 요구하는 사회생활에 지장이 있을 수 있다. 당장 마음껏 누리지 못할 지라도 일정의 富를 일궈 조기 은퇴하겠다는 이러한 사상에는 결국 행복해지기 위해 가장 핵심 덕목인 ‘자유’에 대한 강한 열망이 깃들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은퇴’에 대해 구체적으로 준비를 헤나겠다고 다짐하며 나는 우선 구글에서 FIRE calculator를 통해 필요한 정보를 넣고 은퇴 가능 나이를 계산해봤다. 그 결과, “늦어도” 5년 후 2025년 말 우리 나이로 54세 꽉 찬 시점에 은퇴를 하겠다는 계획과 함께 부동산을 제외한 자산 형성 목표액을 정했다. 시작이 반이라고 큰 목표를 정하고 나니 벌써부터 은퇴를 실현한 느낌이다. 따로 마련한 나만의 ‘은퇴 노트’에 1년에 한두 번씩 업데이트를 해오던 기존의 버킷리스트를 토대로 은퇴 이후 하고 싶은 일들을 써내려 가다 보니 순식간에 한 바닥이다. 아직까지는 두려움보다는 설렘이 더 크다는 것은 나쁘지 않지만, 흥분된 마음은 좀 억누르고 보다 세밀하고 철저하게 앞으로의 5년을 준비해 나가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나의 은퇴 준비-실행에 대한 일련의 과정을 브런치를 통해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 계기로 비슷한 과정을 겪고 있거나 꿈꾸고 있는 이들과도 연결될 수 있다면 좋겠다.    


FIRE의 실행을 위해서는 경제적 자립 못지않게 건강한 몸과 마음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단은 몸이 건강해야 마음도 편안하다. 지난 10년 이상 등산이나 조깅을 꾸준히 해오고 있지만, 앞으로도 자만하지 않고 더욱 관리 잘해나가려 한다. 또한, 5년 정도 지나 지금과 같은 월급쟁이 생활에 종지부를 찍겠다는 목표인 만큼, 남은 기간 후회 없이 회사생활을 잘 마무리 지으려 한다. 큰 물욕(物慾)은 없지만 은퇴 이후 생활이 풍요로울 수 있도록, 은퇴 이후 무엇을 할지 어떻게 살지에 대한 많은 고민들과 함께 이런저런 다양한 새로운 경험을 통해 내 마음 깊은 곳에 감춰진 또 다른 내가 진정 좋아하고 원하는 일들을 탐색해 보려 한다. 혼자만의 시간을 늘려 고독과도 더욱 많은 친분을 쌓을 예정이고, 많이 읽고 듣고 관찰하며 남은 5년을 착실히 준비해 나가려 한다. 은퇴를 통해 나는 진정 깊이 느끼되 단순하게 즐기고, 자유롭게 사고하되 뒤돌아보지 않으며 내 길을 가는 그런 나로 다시 태어나길 바란다.


#은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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