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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기노 Sep 18. 2020

파워풀한 조기 은퇴를 위한 준비 (1)

경제적인 자립 외에 나와 함께 할 친구들

은퇴를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그동안 해오던 투자 등 자산증식 활동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진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FIRE의 정신에 입각하여 의미 있는 은퇴란 경제적 자립을 이루는 것 만이 아니라 보다 건강하고 풍성한 삶의 포트폴리오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즉, 내가 진정 좋아하면서도 잘할 수 있는, 행복을 위해 꼭 필요한 것들이 뭔지를 파악하여 나의 시간을 어떻게 선택과 집중해 나갈지 미리 설계해 놓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몇 년간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온 친구들 중 앞으로도 함께 은퇴를 준비하고 실제로 은퇴 생활에도 동반해 줄 다섯 녀석들을 추려 보았다.

 

운동

 10대 20대 시절의 나는 그야말로 약골 그 자체였다. 지금도 뭐 근육질의 탄탄한 누가 봐도 건강한 그런 하드웨어는 못 갖췄지만, 적어도 내 나이 또래 아재들보다는 훨씬 건강하고 체력적으로도 자신 있다. 십수 년 전 일본에서 4년간 직장생활을 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붙인 좋은 습관이 조깅과 등산이다. 한 번에 6-8km씩 매주 평균 서너 번 정도 달리고 토요일 오전엔 별도로 등산을 하는 나만의 루틴을 지난 15년 가까이 실천해오고 있다. 운동 후 느끼게 되는 작은 성취감 그리고 그로 인한 긍정적인 마음으로의 전환 효과를 자주 경험하다 보니 운동을 끊을 수가 없다. 적당한 중독이지만, 은퇴 이후에도 오랫동안 함께하기 위해 절대 무리를 하지 않는다는 게 원칙이다.


처음엔 물론 체력을 키우고 건강을 증진하기 위해 운동을 시작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운동 자체가 큰 즐거움이 되었다. 걷거나 뛰면서 팟캐스트로 관심 있는 분야의 정보를 얻거나 영어 듣기도 하고, 이런저런 생각도 정리하며 마음을 챙기는 건 이제 내겐 너무나 소증한 일상이다. 좀 쑥스럽지만, 나는 뜀박질하거나 산길을 걸으며 눈에 들어오는 풍경, 철마다 피는 꽃들에 소박한 행복을 느끼며 일상 속 작은 여행을 하는 기분을 내곤 한다. 주로 혼자 하는 운동을 즐기다 보니, 그 시간 자체가 내 안의 나와 직면하고 대화하는 시간이며 행복한 고독 속에서 땀을 흠뻑 흘리고 나면 나에 대한 자책도 주변에 대한 원망이나 미움의 감정들의 많은 부분이 긍정과 고마움으로 변신하는 놀라운 경험들을 하곤 한다.


언젠가 기분 좋게 선선한 바람에 해질 무렵 땅거미 지는 광경과 함께 무아지경으로 달리다 보니, 몸은 전혀 힘들지 않고 그냥 이대로 세상 끝까지 달려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적이 있다. 보통은 중간지점에서 턴해서 집으로 돌아와야 하는데, 그날은 소위 Runner's High를 느끼며 계속 앞으로만 달려 나갔다. 그러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집에서 너무 멀리 와버려 돌아오는 데 애먹었던 기억이 난다. 희미한 그날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달리면서 유난히 몸이 가볍다는 느낌에 더해 이런저런 주변 사람들에 고마움의 마음들이 증폭되었던 것 같다. 고마움이 커질수록 더욱 힘이 나는 신기한 체험은 요즘도 종종 한다. (다만, 그 날 이후 뛰러 나갈 땐 언제든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도록 늘 주머니에 교통카드를 넣고 집을 나선다)


일상 속 평범한 땀 흘리는 행위를 넘어, 은퇴를 전후해서 몇 가지 도전적인 목표도 수립해 봤다. 2년 전에 이미 국내 100대 명산 인증을 완료했지만 일본의 100대 명산도 최소 20개는 정상을 밟아 보고 싶다. 한편, 마라톤 대회에 꾸준히 참여하여 메달 100개를 모으겠다는 목표도 지난 7-8년간 실행해오고 있는데 (주로 10km와 하프마라톤에 참여하여 현재 78개째), 아직 풀코스 마라톤은 뛰어본 적이 없다. 은퇴 시점 즉 목표로 하는 2024년 이전에 꼭 한번 풀코스를 완주하고 싶다. 이왕이면 해외 어딘가의 유명 마라톤 대회에서 풀코스를 달려 보고 싶다. 어느 나라가 될지는 모르지만, 미리 마라톤 코스 답사까지 포함해서 제대로 천천히 여행하는 기회로도 삼으려 한다 (물론 코로나 상황 종료 후). 시간제한 안에 풀코스를 무사히 완주하고 시원하게 맥주 한잔 하는 내 모습을 상상해 본다.


독서

어릴 때부터 책 읽는 것을 좋아하긴 했지만, 성인이 된 이후 솔직히 독서가 내 취미라고 얘기할 수 있게 된 건 비교적 최근인 것 같다. 아직은 운동할 때의 몰입감이나 운동을 며칠 못했을 때의 우울함 등에 비하면, 독서는 아직 그 정도까지는 아닌 것 같다. 현재로선 필수소비재라기보다는 애정하는 기호식품 정도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독서를 통해 행복해지는 순간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좀 더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들을 많이 배우고 있다는 점에서 오늘을 넘어 보다 풍요로운 은퇴를 위해 역시 꼭 함께해야 할 녀석임에는 틀림없다.


나는 책을 읽을 때 보통 두세 권을 동시에 읽는 편이다. 아주 드물게는(?) 내용에 완전히 몰입되어 오직 한 권에만 전념해서 독파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책들과도 적당한 거리두기를 한다. 한권만 줄곧 읽다 보면 어느 순간 집중력이 떨어지거나 지겨워지는 순간이 있다. 결국, 복수의 책을 돌려가며 읽는 것은 숙독(熟讀)을 위한 나만의 방식이다. 또한 시간대에 따라 읽기 좋은 책들의 유형도 조금씩 다르기에 그 시간에 좀 더 집중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사실 한 가지 장르만 선택하라면, 나는 단연 소설을 좋아한다. 특히 평범한 인간 군상의 삶을 덤덤하게 그려내는 일본 작가들의 소설을 좋아한다. 다만, 독서를 함에 있어서도 음식을 섭취할 때와 마찬가지로 지식이나 지혜, 마음의 위로, 재미 등이 조금씩 골고루 흡수될  수 있도록 의식적으로 여러 장르의 책을 균형 있게 읽으려 한다.  


보통은 신문이나 잡지에 실린 서평을 참고하거나 직접 서점에 나가 한 번씩 들러 본 후 (온라인으로) 책을 구매하거나 도서관에서 대여하여 읽는다. 내겐 신작이 나오기만 하면 큰 고민 없이 바로 읽게 되는 작가들이 몇 있다. 세상에 대한 시선, 삶의 자세와 방식에 대한 통찰과 공감이라는 측면에서 유시민, 박웅현, 정여울이 그렇고 소설가로는 일본의 요시다 슈이치도 이런 부류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유시민 작가의 경우 <어떻게 살 것인가> 등 다수의 책을 통해 우리 사회를 제대로 바라보고 모두가 하나의 공동체로서 보다 나은 삶을 영위하기 위해 인간으로서 그리고 시민으로서 무엇을 실천해 나가야 할 지에 대한 많은 영감을 주었다. 많은 이들이 경탄해 마지않는 그의 간결하면서도 탁월한 글쓰기 능력에는 경외감마저 느끼곤 한다. 광고인이기도 한 박웅현 작가의 글을 통해서는, 소위 '소확행(小確幸)'을 매일매일 삶의 방향으로 설정하고 살아가는 나 같은 부류의 사람이 또 있구나 하는 위로와 용기를 받았다. 특히 그의 저서 <여덟 단어>는 현재에 집중하며 본질을 추구하는 삶의 가치에 대한 새삼스런 깨달음을 주었고, 이를 계기로 평범한 일상을 베이스로 소박하지만 보다 자유로운 삶을 위해  조기 은퇴라는 꿈을 꾸고 실행해 나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되었다. 정여울 작가의 여행이나 심리 에세이들은 마음이 힘들거나 지친 순간이면 가장 먼저 생각나곤 한다. 마음속에서 솟아나고 흔들리는 다양한 감정들을 울림 있게 표현하는 그녀의 글을 읽고 있으면 역시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라는 위안을 받게 된다. 그녀 자체가 글을 통해 외롭고 고단함을 숨기지 않기에 읽는 사람 입장에서는 훨씬 쉽게 감정이입에 빠지는 건 아닐까. 요시다 슈이치는 참 섬세한 작가다. 그의 소설을 읽고 있으면, 종종 전철역에서 나와 동네 시장을 지나 집으로 향하는 골목길 풍경 같은 게 생생히 그려지기도 한다. <악인>이나 <분노>와 같이 전개가 격정적이고 내용도 보다 선명한 작품들도 있지만, 나는  그의 비교적 초기작인 <거짓말의 거짓말>이나 <일요일들> 같은 좀 더 담백한 소설을 더 좋아한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 분들이 앞으로도 오래오래 집필활동을 계속해주신다면, 나의 은퇴 전후 생활은 더욱 풍요로울 것이다.


여행

"어느 날 내 계좌로 100억이 입금되고 그 돈을 내 마음대로 합법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면 어디에 무엇을 위해 사용하시겠습니까?”라고 누군가 내게 물어 온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대답할 수 있다. 긴 여행을 떠날 거라고, 일 년의 반 이상은 여행하며 살고 싶다고. 그렇다. 나의 조기 은퇴에 대한 열망의 중심에는 여행에 대한 강한 갈증이 숨어 있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자존감이 떨어졌을 때, 나는 주로 운동하며 땀 흘리고 마음을 챙기거나 관련 영상이나 글을 보며 언제가 될지 모를 여행을 꿈꾸며 마음을 추스르는 편이다.


수년 전 처음 작성한 후 비정기적으로 한 번씩 업데이트하곤 하는 나의 버킷리스트에는 ‘환갑 이전 세계 30개국 여행’이라는 항목이 있다. 그동안 가족여행으로 또는 출장에 맞춰 하루 이틀이라도 휴가를 내서 돌아본 여행으로 지금까지 총 4대륙 16개국을 여행했다. 아직 남들 한번씩 다 여행한다는 미국이나 영국도 가본 적이 없다는 점에다 환갑까지 10년 이상 남아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코로나로 당분간은 해외여행이 어렵다고 해도 달성하기에 아주 어려운 목표는 아니다. 사소한 것에도 계획과 목표를 부여하고 그대로 실행하는 것을 지향하는 나의 성격상 앞으로도 버킷리스트 달성을 위해 ‘스탬프 찍듯이’ 안 가본 국가들을 여행하겠지만, 여행이 주는 본질적인 가치들인 휴식, 평안과 위로, 소중함과 그리움, 소소한 행복 등은 놓치지 않으려 한다.


사람들 북적이는 관광지도 가지만 기본적으로 일상 같은 여행을 좋아한다. 골목길 모퉁이의 소담스러운 식당, 치열하지만 정겨움이 넘쳐나는 시장, 시간이 멈춘듯한 오래된 커피집이나 소박한 선술집, 볕 좋은 날의 공원 등 동네 구석구석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뭔가 힙한 느낌의 가게 정경을 사진에 담고, 담벼락에 걸어놓은 색채감 좋은 화분에도 행복감을 느끼며 걷다 보면 어떨 땐 제자리를 맴돌고 있는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나 혼자라면 하루에 3만보 이상을 걷기 때문에, 가족과 함께 여행할 때는 따로 아침 일찍 나와 돌아다니다가 점심시간 근처에 어딘가에서 상봉하여 이후 시간을 같이 보내기도 한다. 많이 걷기에 수분 섭취도 자주 해줘야 해서 가끔씩은 아침 댓바람부터 맥주를 들이킬 때도 있다. 나른한 오후에 노천카페에 앉아 카푸치노 한잔 마시며 지나가는 사람들 멍하니 바라보는 것도 여행을 통한 소확행 중 하나이다. 결국, 10시간 이상 비행기를 타고 가서 하는 여행일지라도 나는 일상 같은 그런 여행이 좋다.


요즘은 코로나로 해외여행은 언감생심 사람 많이 모이는 국내관광지도 돌아다니기 쉽지 않은 만큼 나의 '일상 같은' 여행 모드는 '일상 속' 여행으로 진화하고 있다. 요즘은 주말마다 운동하러 나가는 한강에서의 아침저녁으로 바뀌는 풍경이나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바람의 빛깔이 대단한 발견인 양 감동을 받기도 한다. 같은 위치에서 분위기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는 사진을 찍으며 여행자의 들뜬 기분에 빠지기도 한다. 어찌 보면, 당분간 비행기 타고 가는 소위 '여행을 떠나요' 모드가 불가능하기에 이러한 일상 속 여행에 대한 탐닉은 조금 웃프지만 뉴노멀 환경에 적응하려는 노력이 아닐 수 없다. 아무튼 일상 같은 여행 그리고 일상 속 여행은 앞으로 은퇴까지 또한 은퇴 이후에도 계속 누려나갈 내 삶의 방식이다.


고독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했고, 특히 우리나라는 관계지향성을 중요시하는 사회 분위기라 솔직히 ‘고독’이라는 단어는 뭔가 어둡고 우울하다. 요즘에야 혼밥, 혼술, 혼행 등이 일반화되었다고 하지만 50을 바라보는 나 같은 아재들 중에는 여전히 ‘혼자서’ 뭔가를 하는 조차도 "어떻게?"라고 묻는 이들이 많다. 어느 정도 은퇴를 가시권에 두었든 그렇지 않든,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서로는 고독은 즐기는 행위라기보다 뭔가 불행한 상황과 연결 짓는 게 좀 더 보편적인 것 같다.


지금까지 25년 가까이 사회생활을 해오고 있지만, 고백건대 나는 그다지 인간관계를 잘 관리하는 사람은 아닌 것 같다. 지금까지 대체로 회사 안팎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받는 행복감이나 보람보다는 솔직히 피곤함을 더 많이 느꼈던 게 사실이다. 물론 일적인 관계 이상 발전하기 위해서 좀 더 정성을 기울였어야 할 터이지만, 내가 그만큼 노력을 하지 않은 탓이다. 인간관계에서 만큼은 다수와의 무난한 네트워크 확장보다는 진정성 있는 소수와의 친밀한 관계를 지향하다 보니, 사람과의 커뮤니케이션이 늘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내향적인 성향에 부덕(不德)까지 겹쳐지다 보니, 난 회사를 벗어나면 기본적으로 혼자만의 시간을 좋아한다. 결혼생활 21년 차 가장으로서 가족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나 혼자 운동하고 홀로 사색하고 조용히 책 보는 것을 즐긴다. 저녁 약속이 취소된 날 저녁, 아주 가끔씩은 와이프에게 밥 차리는 수고를 덜어준다는 핑계로 동네 단골 김치찌개 집에서 혼술을 하며 행복해하기도 한다. 이 정도이니 혼자 밥 먹거나 혼자 영화 보는 것은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다. 다만, 와이프가 너무 서운해하지 않을 만큼 '나 혼자' 생활의 수위 조절은 하고 있다.


홀로 시간을 보낼 때는 가급적 내 마음속 나와 대화를 하려고 한다. 뭔가라도 웅얼웅얼 입을 움직이는 그런 대화가 아니라, 내 마음속 생각들이 솟아나는 물길을 따라가며 지금 어떤 걱정과 불안, 어떤 기대와 희망을 가지고 있는지를 지긋이 바라보며 그저 "그렇구나" 하고 고개 끄덕여 주는 것이다. 주로 한강을 달리거나 산길을 걸으며 또는 저녁식사 후 집 주변을 산책하며 나와의 대화를 통해 고독의 시간을 가진다. 때로는 성찰과 반성으로 때로는 스스로에 대한 칭찬으로 나 자신과 대화를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뭔가나 누군가에 대한 고마운 마음과 함께 ‘고독하지만 혼자가 아님’을 확인하며 안심하곤 한다. 이러한 나만의 고독한 시간은 이제 내게는 일종의 의식이다.


‘고독하지만 외롭지 않다’는 느낌은 어찌 보면 매일의 나를 더욱 성장시키는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좋든 싫든 상관없이 필연적으로 경쟁을 해야 하는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 경쟁은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라 과정일 뿐인데도 많은 경우 우리는 남들을 이기기 위해 혈안이 된 채로 살고 있다. 고독을 즐기게 된 이후부터 나는 남들을 이기기 위한 노력 대신 어제의 나보다 나은 나 자신을 위한 삶에만 관심을 가지려 노력해 왔다. 남들과의 비교나 경쟁이 아니라 매일 조금씩이라도 새로운 것들을 배우고 경험하며 성장하고 도전하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 그러기에 고독은 은퇴 이후에도 줄곧 내 친구가 될 것이다.


감사

"OO님과 함께 일하는 동안 지금까지 직장 생활하면서 '고맙다'는 말을 가장 많이 들은 것 같습니다"

올해 초 이직을 하면서 선물과 함께 직원들이 정성스레 적어준 카드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말이다. 회사의 매출이나 이익 향상에 얼마나 기여했는지 보다 사실 가장 보람을 느꼈던 순간이었다. 지금까지 삶 자체가 고마운 순간들의 연속이었지만, 가족을 포함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고마움의 마음을 제대로 표현해 본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아 의식적으로 노력했던 것인데 조금은 그러한  노력에 대해 인정을 받은 것 같아 기뻤다.


사실 대한민국의 직장인이라면 아마 대부분 공감하겠지만, 돈도 많이 주며 마음도 엄청 편한 그런 꿈의 직장은 세상에 없다. 회사는 늘 위기라고 하고 직원들은 이 비상시국을 돌파하기 위해 매일 긴장하며 지내다 보니, 당연히 고맙고 미안해야 할 순간에도 공감 회로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누군가에게 고맙다는 생각이나 말을 해본 기억이 가물가물할 때는, 찰리 채플린의 명언을 떠올리며 자기 전에  그날의 고마웠던 일 3가지를 적어보곤 한다.

"인생은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직장 생활하다 보면 그날 하루 있었던 부하직원의 아쉽고 부족한 점, 상사나 동료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으로 인해 밤잠을 뒤척이기도 한다. 인생이 그러하듯이, 매일 단위로는 밉던 사람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서 보면 무덤덤해지거나 심지어 고마움마저 느끼게 되는 경우가 있다.  


감사의 마음이 샘솟는 순간 is equal to 내겐 행복한 순간. 돌아보면 매일매일의 소소한 고마움부터 (해 질 무렵 노을을 바라보며 한강을 천천히 달릴 때), 과장되게 이 세상 모든 것들에 감사하며 눈물이 날 것 같던 순간까지 (처음으로 1박 2일 지리산 종주를 마치고 하산을 완료했을 때) 내 인생은 그야말로 감사한 일들의 연속이었다. 운동하고 있는 그 순간, 땀 흘린 후 기분 좋은 노곤함을 안주로 시원한 맥주 한잔 할 때, 고요와 침묵 속에서 삶에 대한 지혜나 울림을 주는 책을 만날 때, 낯선 곳에서 익숙함을 발견하는 소소한 여행길에서, 그리고 오롯이 나를 위한 고독의 시간을 보낼 때 나는 진한 고마움과 함께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행복감을 느끼곤 한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크고 작은 역경과 시련이 나를 따라올 것이다. 그 어떤 어려움에도 좌절하지 않을 확신은 솔직히 없다. 다만, 내게 주어진 상황을 원망하고 낙담하기보다 고난조차도 나를 더 강하고 행복하게 만들기 위한 시험이라고 생각하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나를 이끌어줄 모든 것들에 대한 감사와 긍정의 마음을 잃지 않고 살아갈 자신은 있다. 그런 의미에서도 나에게 은퇴란, 시점이 언제가 되든 감사의 마음이 좀 더 숙성되어 가는 과정 어딘가의 한 정거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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