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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기노 Oct 11. 2020

다케우치 유코를 떠나보내며

세상에서 웃는 모습이 가장 이쁜 사람

9월 27일 일요일 오후였다. 그다음 주 수요일부터 추석 연휴 시작이라 여느 주말 오후보다는 훨씬 마음에 여유가 있어 침대에서 뒹굴뒹굴하다가 까무룩 잠이 들었던 것 같다. 거실에 있던 아내가 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오며 소리쳤다. “이거 봤어? 다케우치 유코가 죽었대." 내가 다케우치 유코의 팬임을 알고 있던 아내는, 반쯤 눈이 풀린 내게 핸드폰 화면을 들이밀며 다시 한번 중얼거렸다. “자살인 것 같대.” 머리맡에 널브러져 있던 핸드폰을 주섬주섬 찾아 네이버 앱을 여는 내 손은 가볍게 떨리고 있었다.


가족도 아니고 친분은커녕 지금까지 만난 적도 앞으로 만날 일도 없는, 그것도 비록 이웃이라지만 최근 관계가 더욱 악화된 일본의 여자 연예인 한 명의 죽음에 뭐 그리 호들갑이냐고 하면 할 말은 별로 없다. 그렇지만 며칠간 가슴이 너무 아팠다. ‘마치 꽃이 핀 것처럼 환하게 웃는’ 모습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늘 포근함과 행복감을 느끼게 해 줬던 그녀였기에 가장 외로운 죽음의 방식을 선택했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 충격적이고 서글펐다. 구체적인 자살 동기 등에 대해서는 아직 알려진 바가 없지만, 어딘가 마음의 병을 앓고 있었음은 분명해 보인다. 연예인이기에 외롭고 힘들어도 주변에 속 시원히 털어놓지도 못하고 마음먹고 병원 한번 가기도 쉽지 않았을 걸 생각하면 그저 안타깝고 그녀가 너무 불쌍하다.


그녀가 출연한 영화나 드라마 덕분에 잠시라도 행복하고 삶의 위로마저 받은 경험이 있는 수많은 팬들 중 한 명으로서, 봄날의 햇살을 닮은 그녀를 영원히 기억하고자 어쭙잖은 글솜씨지만 추모의 작은 기록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에 대한 기록은 위키피디아, 일본 야후에서의 검색 기사, 그리고 유튜브 영상 등을 통해 주로 수집하였고 과거 4년여간 일본에서 근무하며 보고 들었던 그녀에 대한 기억의 파편들도 전부 꺼내보려 했다.


다케우치 유코(竹内結子)는 1980년 도쿄 근교의 사이타마현에서 태어났다. 중학교 졸업 후 고교 진학을 앞둔 봄방학에 하라주쿠(原宿)에 친구와 함께 놀러 갔다가 기획사에 픽업되어 연예인 데뷔를 하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95년 광고모델로 얼굴을 처음 비추었고 ‘96년에는 드라마 데뷔를 하게 된다. 그녀의 이름을 단번에 알리게 된 계기는 ‘97년 오디션을 거쳐 출연한 NHK 드라마 <아스카(あすか)>에서 여주인공을 맡으면서였다. 이후에도 여러 편의 광고와 드라마에 출연하며 조금씩 인지도를 올려 나갔는데, 2002년 후지tv의 <런치의 여왕 (ランチの女王)>을 통해 명실상부 최고의 인기 여배우로 등극하게 된다. 이 드라마에서 그녀는 쇼트커트 헤어스타일이 너무 잘 어울리는 조금은 보이쉬한 캐릭터로 세상 행복하게 오므라이스를 먹던 모습을 통해 많은 이들에게 그녀의 존재를 확실히 각인시키게 된다. 2년 후인 2004년에 후지tv의 또 다른 게츠쿠(月9) 드라마 <프라이드(フライド)>에서 기무라 타쿠야(木村拓哉)와 함께 연인으로 출연하며 시청률 보증수표로서의 입지를 확실히 다지게 된다, 2008년 <장미가 없는 꽃집 (薔薇のない花屋)>에서는 맹인 행세를 하는 여주인공으로 분하여 지금은 해체된 SMAP의 카토리 싱고(香取慎吾)와 함께 공연하게 된다. 그녀의 세 번째 게츠쿠 출연작이었다. 2010년부터  2013년까지는 단막극-연속극-스페셜판의 형식으로 남자들 틈새에서 연약해 보이지만 강단 있는 강력반 형사반장 역으로 출연한 <스트로베리 나이트(ストロベリーナイト)>를 통해 다시 한번 존재감을 강하게 발휘한다. 하나의 콘텐츠를 확대 재생산하는 데 능숙한 일본의 연예게의 특성상 이 드라마는 이후 그녀를 주인공으로 영화로도 제작되게 된다.

2000년 초중반부터 약 10여 년간 그녀는 마츠시마 나나코(松嶋菜々子)와 함께 그야말로 투톱으로 일본 드라마계를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수의 드라마 외에도 그녀는 여러 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뭐니 뭐니 해도 그녀의 존재를 확실하게 알린 영화는, 2004년 개봉된 - 소지섭-손예진 주연으로 이후 우리나라에서도 리메이크되었던 - <지금, 만나러 갑니다 (いま、会いにゆきます)>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로 다케우치 유코는 2년 연속 일본 아카데미 우수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게 된다 (그녀는 일본 아카데미 우수 여우주연상을 통산 4회 수상했다). 내 개인적으로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장마철이면 늘 생각나는 영화로 처음부터 끝까지 네 번 정도 본 것 같다 (이 영화의 제목을 표기할 때 '지금' 다음에 반드시 comma(,)를 찍어야 한다!). 결혼 후 아이가 태어나고 얼마 되지 않아 세상을 등진 아내이자 엄마가 장마철 한철 잠깐 환생한다는 설정으로, 순수하고 따뜻한 영화이지만 억지 청승이 아닌 비교적 담백한 결말로 오랫동안 여운이 남는 영화였다. 남자 주인공으로 나온 나카무라 시도(中村獅童)는 유명한 가부키 집안 출신으로 그 역시 가부키 배우였지만 당시의 다케우치 유코에 비하면 지명도가 현저히 떨어지는 배우였다. 두 사람은 이 영화를 계기로 결혼까지 하게 되었고, 혼전임신 상태였던 다케우치 유코는 얼마 지나지 않아 첫아들을 출산하게 된다. 영화에서의 나카무라 시도는 아내와 사별하고도 일편단심인 순수하고 착한 남편 역이었지만, 실생활에서는 끊임없는 여성편력으로 그녀를 많이 힘들게 했다고 한다. 실제로 다케우치 유코는 결혼/출산 후 남편의 바람기로 마음고생을 하다 이혼을 하게 되는 과정에서 살도 많이 빠졌다고 한 인터뷰 기사에서 밝힌 바 있다.


솔직히 팬으로서 부끄럽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2010년 중반 이후의 그녀의 작품과 삶에 대해서는 솔직히 무관심한 편이었다. 그녀가 작년에 5세 연하의 배우와 재혼하고 올 초에 두 번째 아이를 출산한 사실도 최근에야 알았기에, 그녀의 사망 소식을 접한 후 황망함에 더해 일말의 죄의식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최고의 여배우답게 다케우치 유코는 많은 광고에도 출연해 왔다. 나는 개인적으로 산토리 프리미엄 몰츠 맥주 광고에서의 그녀가 가장 그녀답게 빛나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녀는 술을 좋아한다고 평소 인터뷰 등에서 여러 번 밝히기도 했는데, 맥주잔을 들고 환하게 웃는 광고 속 그녀의 모습이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의 마음 깊은 곳 외로움의 크기와 대비되는 것 같아 또 한 번 먹먹해진다.


그녀는 누가 봐도 흠잡을 때 없는 자연 미인이지만, 왠지 모를 차가움과 날카로움을 품고 있는 범접할 수 없을 것 같은 그런 유형의 미인은 아니었다. 단아하고 반듯하지만 답답한 모범생보다는 귀엽고 쾌활한 개구쟁이 기질을 지니고 있아 누구나 편하게 대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또한 웃는 모습만큼이나 누구에게나 따뜻하고 예의 바른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영화 촬영지였던 구마모토 지역의 지진 피해 가구에 매월 남몰래 기부를 이어 왔던 사실이 사후 알려질 정도로 그녀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스스로를 낮추며 배려와 공감하는 인간적인 사람이었다.


비록 이 세상에서는 비루하고 외로운 삶이었을지 몰라도 천국에서만큼은 그녀가 정말 평온하고 행복하길 바라며, 평소 좋아하던 나츠메 소세키(夏目漱石)의 유명한 하이쿠(俳句) 한 수를 그녀의 영전에 바친다.


그대 돌아오지도 못할

어느 곳으로

꽃을 보려 갔는가

君帰らず何処の花を見にいた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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