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두기노 Sep 16. 2023

아름다운 것들

내 인생의 노래 2

근 한 달 가까이 생각이 많고 무기력하게 지냈다.

뭔지 모를 불안과 걱정이 따라다녔고, 조금 외로웠다.

그래도 살아온 연식이 있다 보니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지만, 내게 평생의 과제이기도 한 마음을 챙기고 평정심을 유지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그래도 어제 퇴근길에 서서히 이번 터널도 끝나가는 느낌을 받았다.  

슈퍼에서 간단히 장을 보고 집밥에 혼술 하며 소박한 불금을 보낼 생각을 하며 집으로 향하는 데, 문득 행복감이 밀려왔다.

딱히 객관적인 상황이 달라진 것은 없었다.

언제나 그렇듯 그저 복잡한 내 마음이 알아서 제자리로 돌아오고 있는 중이었던 것이다.


‘내 속에 내가 너무 많을’ 때에는 땅만 보고 걷거나 그저 멍하게 지나던 거리 풍경이 어제는 오랜만에 하나하나 다 눈에 들어왔다.

땅거미가 내려앉은 하늘이,

떨어진 배롱나무 꽃잎들이,

은은하게 새어 나오던 동네 선술집의 불빛이,

심지어는 선명하게 빛나던 편의점 간판마저 아름답게 느껴졌다.

가족들이 보고 싶고 내가 누리고 있는 많은 것들이 새삼스레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마다 정도는 다르겠지만, 누구나 힘든 삶의 순간들을 만나 견디고 극복하고 또 겪어 나간다.

그런 의미에서 불교에서 말하는 ‘삶 자체가 고통‘이라는 사상에 언제나 공감하며, 인생은 어차피 고난의 연속임을 인정하고 살고 있다.

한 번씩 어려운 상황을 만나도 “왜 나만?”과 같은 자의식 과잉에 빠지기보다 일렁이는 마음의 잔물결을 조용히 바라보며 자연스레 극복하는 힘이 조금은 생긴 것 같다.

때로 어쩌면 자주 삶은 불구덩이만큼이나 고통스럽고 내 의지와 관계없이 주기적으로 힘듦을 선사하지만,

그래도 세상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뒤이어 따라오기에 지금 이 순간에 불평을 표하거나 살아온 날들을 회한하기보다 살아갈 날들에 더 기대를 하게 되는 게 아닌가 싶다.


아름다운 밤이에요!

예전에 영화제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어느 여배우가 시상 소감으로 남긴 유명한 말이다.

추측컨대 그 배우에게는, 그동안 살아온 자신의 삶이, 그날 밤 모인 사람들이, 본인과 같이 일한 동료나 스탶들이, 그날의 장소와 조명이 모두 아름답게 느껴졌던 것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어제는 내게 아름다움 밤이었다.

잔잔한 행복감이 밀려와 세상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날 유독 반복해서 듣게 되는 한 편의 시와 같은 노래가 있다.


아름다운 것들

꽃 잎 끝에 달려있는 작은 이슬방울들
빗 줄기 이들을 찾아와서 음 어대로 데려갈까

바람아 너는 알고 있나
비야 네가 알고 있나
무엇이 이 숲 속에서 음 이들을 데려갈까


이 노래는 내가 대학에 입학하기 훨씬 전부터 포크기타를 배우는 사람들이 누구나 초기에 연습하는 노래로 유명했다.

원곡인 “Mary Hamiton”은 원래 스코틀랜드의 구전 민요로 알려졌으며,

저항의 상징이자 여성 포크싱어의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던 Joan Baez가 1960년 본인의 앨범에 담아 발표하면서 유명해졌다.

이 곡을 이화여대생이던 방의경이 개사를 하고 그 당시 20세이던 양희은에게 제공함으로써, 그녀의 청아한 목소리로 우리에게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때가 내가 태어난 1972년이었으니 우리말로 번안된 이 노래가 세상에 나온 지도 벌써 반세기가 지난 셈이다.


단순하며 감수성을 자극하는 멜로디에 누구나 좋아할 노래이긴 하지만, 가사만 놓고 보면 아득한 슬픔과 막막한 외로움이 묻어있다.

엄마 잃고 다리도 없는 가 엷은 작은 새는
바람이 거세게 불어오면 음 어대로 가야 하나

모두가 사라진 숲에는 나무들만 남아있네
때가 되면 이들도 사라져 음 고요함이 남겠네

바람아 너는 알고 있나
비야 내가 알고 있나
무엇이 이 숲 속에서 음 이들을 데려갈까

어쩌면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처럼 제목에서 말하는 “아름다운”이라는 표현은 누군가에는 반어적으로 해석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삶이 고단하고 외로워도 거기서 길을 잃고 포기하기보다 바람에 몸을 싣고 빗줄기 소리를 들으며

세상의 아름다움을 놓치지 말라는 소박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믿고 싶다.

내가 이 노래를 좋아하는 이유이다.

이번 주말엔 아마 수십 번은 더 들을 것 같다. 아무리 들어도 좀처럼 질리지 않기에 이 노래는 그야말로 내 인생의 명곡이다.


*양희은을 비롯하여 여러 가수의 버전이 있지만, 번안을 해서 가사를 썼던 방의경의 노래가 비 오는 날에는 가장 분위기 있는 것 같다.

https://youtube.com/watch?v=VYqheU42MA0&si=60Kj7w9W_T2kBhC9


매거진의 이전글 이젠 잊기로 해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