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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금 May 03. 2016

글 쓸 엄두 조차 나지 않을 때

은유, 글쓰기의 최전선

다만 잘 쓴 글이든, 미완의 글이든, 숨겨둔 글이든,
파일로 저장하지 않고 날리는 글이든,
그런 과정 하나하나가 자기 생각을 정립하고 문체를 형성하는 노릇이며
'삶의 미학'을 실천하는 과정이라고,
못써도 쓰려고 노력하는 동안 나를 붙들고 늘어진 시간은
글을 쓴 것이나 다름없다고,
자기 한계와 욕망을 마주하는 계기이자
내 삶에 존재하는 무수한 타인과 인사하는 시간이라고,
이제는 나부터 안달과 자책을 내려놓고
빈말이 아닌 채로 학인들에 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세상에 어떤 글도 무의미하지 않다고.
우리 어서 쓰자고.
<글쓰기의 최전선> p.35


지난 몇 년 간 언론고시 준비생과 기자를 오가며 끊임없이 글을 썼다. 글에선 주로 언론사 시험 기출문제와 예상 기출문제, 취재처의 최근 이슈를 다뤘다. 시험 준비를 위해서는 작문과 논술을, 기자로 일하면서는 기사를 썼다.


글을 쓰는 건 금방이었다. 공부할 때야 시험 시간이 정해져 있으니 나도 그 안에 쓸 수 있게 연습해야 했고 일을 할 때는 밖으로 나가 취재하려면 기사만 붙들고 앉아있을 수 없었다. 대략 한 시간이면 완성된 글을 만들었다. 지난 일이니 이실직고하자면 전에 내가 쓴 글이나 남이 쓴 글을 눈치 못 챌 정도로만 수정해 낸 적도 몇 있다. 하지만 어쨌든 꾸준히 글을 썼다.


그땐 글을 쓰는 게 쉬웠다. 남들은 구성을 세우고 생각을 정리해 몇 번씩 고쳐가며 쓴다는데, 나는 그냥 앉아 첫 문장을 시작하면 마지막 문장까지 막힘없이 술술 써 내려갔다. 어느 정도 형식이 정해진 글을 쓴 덕도 있을 꺼다.


그런데 일을 그만두고부터 글쓰기가 어려워졌다. 글쓰기가 어렵다고 말하기도 뭐한 게, 글을 쓸 엄두 자체가 나지 않았다. 어떤 글로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머릿속이 뿌옜다. 기사만 주야장천 쓰다 아무거나 써도 되는 자유의 몸이 돼 그런가. 연필을 처음 잡아보는 어린애가 된 기분이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다시 글쓰기 공부를 하려는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얘기했다. 정답을 얻고 싶었다. 하지만 별 다른 해법은 없었다. “나도 그렇다”는 대답이 제일 많았다. 그러다 수업 하나를 추천받았다. 작가 은유가 가장자리에서 진행하는 ‘감응의 글쓰기’ 수업이었다.


<글쓰기의 최전선>은 수업 커리큘럼을 보고 알게 됐다. ‘감응의 글쓰기’ 수업의 첫 수업 교재가 <글쓰기의 최전선>이었다. 백수 주제에 무턱대고 수강료부터 내기도 부담되던 터라 책을 먼저 읽었다.


<글쓰기의 최전선>은 기대와 달랐다. 글을 잘 쓰기 위한 실용적인 팁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책을 통해 어떤 주제로, 어떤 형식의 글을, 어떻게 써야 잘 쓸 수 있을지를 배우고 싶었다. 책의 부제가 날 더 부추겼다. ‘왜’라고 붇고 ‘느낌’이 쓰게 하라는 부제는 “내가 그 방법을 알려줄게”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책 안에 그런 내용은 없었다. <글쓰기의 최전선>은 저자가 ‘감응의 글쓰기’, ‘글쓰기의 최전선’ 등 각종 글쓰기 수업을 진행하며 적은 후기에 가깝다. 저자가 왜 글쓰기를 시작했으며, 어떻게 수업을 시작하게 됐는지. 어떤 수업을 진행했고 그 안에서 어떤 사람들과 어떤 얘기를 했는지가 주를 이룬다.


하지만 실망은 없었다. <글쓰기의 최전선>은 글쓰기 실용 팁 대신 글을 잘 쓰기 위해 어떤 생각을 해야 하는지를 알려줬다. 책을 읽고 사람을 만나고 얘기를 나누는 게 왜 중요한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줬다. 글을 쓰는 목적과 글로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해줬다.


나는 그간 어떻게 하면 좋은 글을 쓸 수 있을지 고민하느라 어떤 사람이 돼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를 잊고 있었다.


생각을 시작하자 글이 다시 써지기 시작했다. 쓰고 싶은 얘기들이 자연히 내게 다가와 글이 됐다. 아직 멀었지만 전보다는 내 인격과 상황과 느낌이 보이는 글을 쓰게 됐다고 믿는다.


저자의 수업을 들은 사람들이 부럽다. 책을 읽는 내내 “내가 저 자리에 있었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처음 시작하는 사람이든 다시 시작하는 사람이든 정체를 느끼는 사람이든, 글쓰기에서 어려움을 찾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글쓰기의 최전선>을 추천한다. 여유가 된다면 저자의 강의를 듣는 것도 좋겠다. 일상의 순간순간에서 ‘왜’라고 묻고 ‘느낌’이 쓰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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