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글에서 고지능자로서 갖고 있는 몇 가지 재밌는 특징을 소개한 적이 있었다. 그중 한 가지로, 평소 뛰어난 잔머리를 활용해 편리함을 누리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이는 비단 회사 업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고, 일상생활의 작은 문제들을 해결할 때도 굉장히 유용하고 편리하다. 오늘은 그렇게 잔머리를 굴려가며 소소한 문제를 해결했던 사례들 가운데 기억나는 몇 가지를 써보려고 한다.
※ 절대 따라 하지 마세요! Don't try this at anywhere!
한 번은 팀 동료이자 친구들 몇 명이서 회사 건물 밖으로 물건을 옮기러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친구 한 명이 출입증을 놓고 나온 사실을 알게 되었다. 회사 건물의 게이트는 두 군데로, 한 군데는 지하철처럼 태그를 해야 하고 한 군데는 태그 시설 없이 보안 요원이 패용 여부를 확인하는 게이트였다. 그런데 하필 보안 요원이 확인하는 게이트로 나가는 바람에 나갈 때 출입증 없이도 나갈 수 있었던 것이 문제였다(나가는 사람까지 일일이 확인하지는 않으니까). 게이트 근처에서 이를 깨달은 친구들은 당황했다. 출입증 없이 보안 요원 앞을 통과할 방법이 과연 있을까. 달리 방법이 떠오르지 않자, 출입증이 없는 친구가 게이트 밖에서 기다리는 동안 다른 사람이 출입증을 가져다주기로 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얼른 올라가서 할 일이 있었고, 나는 늦은 친구를 기다리기가 귀찮았다. 잠깐 생각한 나는 순간적으로 쉬운 해결책을 떠올렸다.
나는 내 목에 걸려있던 출입증과 출입증 케이스를 분리해서 케이스를 친구 목에 걸어주고 출입증 내용물은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친구에겐 빈 케이스인 걸 슬쩍 가리되 최대한 자연스럽게 행동하라고 당부했다. 그리고 나는 보안 요원의 앞을 지나는 순간 의도적으로 출입증이 없는 것을 티 내며 걸렸다. 이후 상황은 정확히 내 예상대로 진행되었다. 출입증이 없는 사람이 걸렸으니 다른 사람들에 대한 집중이 흐트러졌을 것이고, 친구 목에는 (실제로는 빈 케이스인) 출입증 목걸이가 걸려있었기 때문에 무사히 통과한 것이다. 친구들이 통과한 것을 본 나는 출입증을 요구하는 보안 요원에게 유유히 출입증을 꺼내 보여주며 다음과 같이 한 마디 덧붙였다. "아, 제가 평소에 주머니에 넣어두고 다녀서요. 여기요ㅎㅎ"
귀찮은 일을 덜어서인지 친구들은 매우 기뻐했다. 참고로 이미 해당 기업을 퇴사한 입장에서 말하자면, 보안 요원이 있는 게이트를 출입증 없이 들어가는 시도를 한 직원도 잘한 게 아니고, 통과를 허용한 회사도 혼나야 한다. 위에도 썼듯, 회사의 보안 수준이 어떻든 간에 보안 요원을 출입증 없이 따돌리려는 시도 따윈 절대 하지 말자.
또 한 번은 회사에서 직원을 대상으로 전자 서명을 받기 위해 활용하는 프로그램을 세팅하고 있었는데, 서명 기능은 있었지만 서명자가 '동의'와 '비동의' 칸에 체크를 할 수 있는 기능이 없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동의/비동의 체크가 가능한 유료 양식을 활용해야 하는데, 이 동의서는 형식적으로 받고 있긴 하지만, 동의하는 것이 이득이라 서명자가 동의하지 않을 가능성이 아예 없는 내용이었기 때문에 유료 양식을 쓰는 것이 더 아까운 것이었다. 그럼에도 구색은 맞춰야 했기에 고민하던 선배에게 나는 '하나라도 동의하지 않고 제출할 수 있는지'에 대해 물어보았다. 답은 '아니요'였다. 모든 항목이 필수 동의 항목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쉽게 답을 내리고 선배에게 말했다. "그냥 양식에 처음부터 체크를 해서 날리면 되잖아요? 어차피 동의 안 하면서 서명하는 사람은 없을 텐데요?" 논리적으로 생각했을 때, 애초에 모든 항목이 필수인 데다 서명자가 선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 중 동의하지 않으면서 서명하는 경우가 없기 때문에, 결국 동의하지 않음에 체크가 가능해야 하는 이유도 없는 것이다.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그냥 서명 및 제출을 하지 않을 테니. 간단한 논리적 추론이었다.
첫 사례와 마찬가지로 나는 쉽게 문제를 해결하게 되어 기뻤던 선배의 극찬을 받았다. 유료 양식 사용 비용을 아낀 것은 덤이다. 다만, 이번 사례 역시도 어찌 보면 정석이라고 하긴 힘들다. 이번 예시처럼 비동의 칸이 필요 없는 경우라면 괜찮겠지만, 때로는 자유로운 동의/비동의 여부가 결정적인 쟁점이 될 수도 있으니, 가급적이면 자유롭게 체크할 수 있는 양식을 쓰는 편이 좋을 것이다.
오늘 소개한 사례를 보면 잔머리가 잘 돌아간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감이 잘 오리라 생각한다. 나는 사람들이 정공법 외에 다른 해결책을 떠올리지 못하고 있을 때, 생각해 본 적 없는 방식으로 이를 해결하는 방법을 자주 찾아내곤 했다. 잘 생각해 보면 전혀 어렵지 않고 누구나 떠올릴 수 있는 방법들이다. 다만 이를 보자마자 짧은 시간 안에 빠르게 떠올리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어쩌면 고지능자가 가진 가장 큰 강점은, 방법의 새로움이라기보다 새로운 방법을 빠르게 떠올릴 수 있는 그 속도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