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Q가 높은 걸 주위 사람들한테 들키게 되면 몇몇 자주 듣는 말이 있다. 약간 그렇기를 바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물어보는 것에 가까운데, 그 기대에 부합하는 경우도 있지만 전혀 스테레오타입과 딴판인 점도 많이 있다. 그런 순수한 질문들은 대부분 미디어나 매체들에서 묘사하는 고지능자에 대한 묘사에서 나오는데, 내가 그 정도의 고지능이 아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별로 부합하지 않는 부분이 더 많은 것 같다. 대표적으로 자주 받는 질문들은 아래와 같은 것들이 있다.
IQ가 높다는 사실을 알게 된 주변 사람들이 보통 가장 처음 하는 말이 보드게임을 잘하겠다는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적어도 내게는) IQ와 보드게임 실력은 전혀 비례하지 않는다. 나는 PC, 콘솔, 보드게임, 심지어 도박 등 종류를 막론하고 모든 유형의 게임을 못하는 편인데, 특히 보드게임은 평균적인 수준에도 못 미칠 정도로 못한다. 못하는 방식에도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나는 평소 인내심이 형편없다 보니, 게임 도중 가만히 앉아 다음 수를 예상하는 것을 끔찍하게 못한다. 여러 수에 대해 머릿속으로 찬찬히 생각해 보고 고심하며 플레이해야 할 텐데, 인내심이 없으니 수가 조금이라도 복잡해지면 조급하게 운에 내맡겨버리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특성은 특히나 수 읽기가 중요한 장기/체스 등의 게임에서 형편없는 결과를 낳는 원인이 된다.
또한 집중력 또한 매우 떨어져서, 상대의 수를 잘 읽지도 못할뿐더러 가만히 앉아 게임판을 쳐다보고 있노라면 마치 최면에 걸리는 것처럼 졸음이 쏟아져 견딜 수가 없다. 상대의 착수가 조금이라도 지연되면 생각이 다른 곳으로 향해버리거나 아무도 모르게 졸아버리니, 도저히 게임을 잘할 수가 없는 것이다. 특히 저 최면에 걸리듯 졸음이 쏟아지는 것은 정말 심각한 문제인데, 데이트 코스로 보드게임 카페를 가거나 하면 늘 하품을 하게 되고, 결국 연인으로부터 "나랑 있는 것이 재미없냐"라는 핀잔을 듣곤 했다. 당연히 다른 사람들도 다 그런 줄 알았는데, 대부분 그렇지 않다는 것을 듣고 놀랐던 기억이 있다.
돈 계산 등을 할 일이 있으면 마치 무한도전의 정 총무 마냥 내게 시키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나는 단순 계산을 비롯한 수학을 정말 못한다. 수학에는 흥미도 재능도 없었고, 다른 과목의 성적은 항상 최상위권이었기 때문에 유독 맥을 못 추는 수학 점수가 입시에 있어 큰 걸림돌이었다. 비슷한 성적대의 친구들에 비해 수학 과목의 성취도가 뒤처지기 시작한 시기는 중학교 2학년 정도였던 것 같다. 슬슬 복잡한 공식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그중 몇몇 개는 반드시 외워야만 했는데, 내게 있어 수학 공식만큼 끔찍하게 안 외워지는 것이 없었다. 다른 과목들과 비교해 보면, 사회/과학 등의 과목은 어떤 개념을 암기할 때 그 개념이 탄생한 배경을 함께 찾아보면 쉽게 이해가 갔고 언제든 머릿속에서 떠올랐기 때문에 어렵지 않았다. 수많은 문법적 요소들을 외워야 하는 영어의 경우 실제로 문장의 5형식조차 구분하지 못했지만 TOEFL을 준비하며 스피킹/리스팅/라이팅 등 언어 그 자체로 활용하는 방법을 공부했기 때문에 고등학교 수준까진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유독 수학만큼은 어떤 방법으로도 암기의 난도가 낮아지지 않았다.
내가 수학을 못하는 것은 그저 암기의 문제만은 아니고, 숫자에 대한 감각 자체가 떨어지는 편으로, 기본적으로 숫자를 사용하는 것이 매우 서투르다. 상경계 전공으로 대학에 진학한 나는 전공과목으로 경제학 원론, 회계 원리, 재무관리 등의 과목을 배우게 되었다. 이들 과목에 활용되는 수학의 난이도는, 냉정하게 표현하자면 그 정도 학교에 수능치고 입학한 학생이라면 무리 없이 따라가야 하는 수준이었다. 예를 들어 경제학 원론 과목의 경우, 심화 전공도 아닌 말 그대로 1학년이 듣는 원론 과목이었기 때문에 시험 등의 문제 풀이에 사용되는 수학은 사칙연산+일부 함수 활용 수준에 그쳤다. 그럼에도 나는 상기한 세 과목 모두 최소 한 번씩 낙제점을 받았고, 재수강을 통해 낙제가 아닌 점수를 간신히 받거나 여러 번의 재수강으로도 계속 낙제하는 바람에 학점포기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처음 쓰기 시작할 때는 더 많았던 것 같은데 쓰다 보니 내용이 길어져 두 가지 정도만 소개해봤다. 지금까지 쭉 시리즈(?)로 글을 쓰면서 지능지수는 높지만 나는 전혀 특별하지 않다는 내용을 주로 썼다. '그렇다면 지능지수가 높은 게 아무 의미 없는 것 아니냐' 하는 궁금증이 들 수도 있는데, 그야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지능지수가 높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잘 갈고닦아야 빛을 발하는 것이고, 나처럼 갈고닦는 과정 없이 자유롭게 방목해서 키웠다면, 일상에서 순간순간 약간의 독특함 정도로 발휘될 순 있겠지만 전체적으로는 특별할 것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