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학창 시절을 보낸 2000년대는 이른바 '영재 열풍'이 불던 때였다. 한동안 TV나 신문에는 뛰어난 학업 능력을 보여주는 영재 아이들이 대서특필되었고, 각 지역 교육청이나 지역 유수 대학 산하의 영재교육원이 여러 곳 설립되었으며, 더 나아가 특목고와 자사고 입시가 학부모들 사이에서 최대 화두가 되던 시절이다. 어린 나는 TV와 신문에서 그런 아이들의 뉴스를 보며 '저렇게 머리가 좋은 아이들은 얼마나 특별한 삶을 살까?'와 같은 궁금증과 함께, 날 때부터 뛰어난 그들의 머리를 정말 많이 부러워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저 영재 열풍에 나와 우리 부모님 또한 휩쓸려, 나 또한 자사고/외고 입시를 열심히 준비했던 기억도 난다. 다른 건 모르겠지만 어학 능력만은 괜찮은 편이었던 나는 (철저하게 억지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TOEFL 시험에서 세 자리 점수를 받았고, 990점 만점의 옛 TEPS에서도 800점대 후반의 점수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하는 학교에 진학할 정도의 성적은 아니었기에, 결국 평범한 일반계 고등학교로 진학해 평범하게 입시 준비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들인 노력에 비해서는 수능을 그럭저럭 잘 본 덕에, 나름대로 자랑할 만한 대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다.
대학시절의 학문적 성취에 대해서는 특별히 기억나는 것이 없다. 대학시절 내내 책임 없는 자유를 누린 결과,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직장인이 되었다. (여담으로 이 입사 도전기는 나중에 따로 다룰 만한 가치가 있기에, 추후 다른 글에서 다뤄볼 생각이다.) 직장에서의 업무 역량이 뛰어났다고는 보기 어려웠다. 늘 업무에서 핵심 내용을 파악하지 못한다며 핀잔을 들었고, 보고를 할 땐 중요한 내용을 건너뛰고 이야기한다며 지적받기 일쑤였다. 유일하게 자신 있었던 것은 엑셀 실력이었는데, 엑셀을 전혀 할 줄 모르는 상태로 입사했음에도 입사 1년 반쯤 됐을 땐 팀에서 엑셀을 가장 잘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다만 그건 그저 업무에 있어 '도구'를 잘 다루는 것에 불과했고, 전체적인 업무 역량은 잘 쳐봐야 '그저 그렇다'라고밖에 말할 수 없었다.
그렇게 직장을 차마 때려치우진 못하고 하루하루 견디며 다니던 어느 날, 너무나도 우울감이 심해 정신과 상담을 받은 일이 있었다. 그곳에서 의사 선생님은 "우울증 소견이 조금 보이는데, 조금 더 정확하게 판단하기 위해 웩슬러 지능검사를 해보는 게 어떨까 해요."라고 내게 권했다. 초등학교 때 이후로 제대로 된 IQ 검사를 받아본 적 없었기에, 흥미로운 마음으로 검사에 임했다. 그리고 받은 결과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OO씨께서는 지능이 아주 높으시네요. 제가 직접 검사해 본 분들 중에는 가장 높으신데요."
"네?"
나는 어쩌면 내가 그토록 부러워했던 영재가 될 수도 있었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이미 서른 살이 되고서야 깨달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제야 나는 살면서 종종 느끼곤 했던 '위화감'의 실체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