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숙제를 안 해 벌청소하다 영재교육원에 들어간 아이

by 립미얼론

초등학교 6학년 때 일이다. 나는 굉장히 게으른 아이였고(지금도 마찬가지고), 숙제를 안 해서 혼이 나는 것은 예사로 있는 일이었다.


그날도 늘 그렇듯 수학 숙제를 하지 않아, 방과 후에 남아서 청소를 하는 벌(이른바 벌청소)을 받는 중이었다. 그때쯤 내가 살던 OO광역시 교육청에서는 예비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영재교육원을 개설하여, 지원자를 받고 있는 중이었다. 지원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시험을 본 후, 성적이 우수한 학생을 가려 선발하는 것이다. 학교 게시판에도 영재교육원 모집 공고가 게재되어 있었고 가정통신문에도 적혀 있었지만, 나는 딱히 내가 영재라고 생각한 적도 없었거니와 가정통신문을 집에 꼬박꼬박 갖다 드리는 아이도 아니었기 때문에 내가 거기 지원할 일은 없었다.


열심히 대걸레로 바닥을 닦는 나를 보던 담임 선생님께서 문득 말씀하셨다.


"너 청소 빼줄 테니까 저기 가서 시험 보고 와 볼래?"


선생님께서는 평소에 나를 보며 똑똑한 아이라고 생각하셨던 걸까. 딱히 내가 영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선생님 말씀에 순종적인 아이였던 나는 곧장 짐을 싸서 시험 장소로 갔다. 그리고 엉겁결에 지원서에 이름을 쓰고 자리에 앉아 시험에 응시하게 되었다.


제목에서 써놨듯 결론적으로 영재교육원에 선발이 되었고, 1년간 시 교육청에서 공인한(?) 영재로서 교육을 수료하였다. 당시 시험 문제 중 하나가 지금도 기억나는데, 폐가 호흡할 수 있도록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며 도와주는 신체 기관의 이름을 쓰라는 주관식 문제였다. 답은 물론 횡격막이며, 나는 정확히 정답을 썼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횡격막의 기능은 중학교 2학년때나 교과서에 등장하는 내용으로, 도대체 6학년 짜리 애가 왜 횡격막을 알고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한 가지 더, 영재교육원 시험에 응시했다는 사실은 당일 저녁에 집에 가서야 부모님께 말씀드렸다. 애당초 그런 게 있다는 사실도 모르셨던 부모님은 당연히 기가 차 하셨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합격하였으니 좋은 게 좋은 일이지만.




초등학교 6학년 때 있었던 또 다른 재밌는 에피소드가 있다. 사회 과목 시간에 독일의 경제 발전에 대한 내용을 배우고 있었다. 담임 선생님은 여러 면에서 훌륭하신 분이었지만, 종종 사소한 이름을 헷갈리시는 경우가 있었다. 그날도 순간 헷갈리셨는지, 이 독일의 경제 발전을 일컬어 '나일강의 기적'이라고 잘못 말씀하셨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지만 나는 손을 번쩍 들고 말했다.


"선생님, 독일에 있는 강은 라인강 아닌가요?"


그렇다. 나는 똑똑한 아이이긴 했지만, 40명이 넘는 반 아이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틀린 사실에 대해 지적당한 선생님의 기분을 헤아릴 정도의 능력은 없었던 것이다.


"잠깐만..(뒤적뒤적)..그러네. 나일강이 아니라 라인강이네. 우리 OO이가 예리하네^^ OO이에게 다들 박수!"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도 모르는 아이들로부터 박수를 받는 나는 잔뜩 우월감을 느꼈다. 지금도 가끔 이 일이 떠오를 때면 내 입을 때려버리고 싶고 큰 무례에도 불구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오히려 나를 칭찬해 주신 선생님께 한없이 죄송한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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