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렸을 때부터 쓸데없는 질문이 정말 많았다.
어린이집에 다니던 시절의 일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하루는 어린이집에서 배워온 영어 노래 가사 중 'ali bali bee'라는 가사가 있었다. 당연히 영어를 배우는 시간에 배운 노래이기에 가사의 뜻도 함께 배워왔지만, 선생님은 유독 저 ali bali bee만큼은 무슨 뜻인지 설명해주지 않았다. 집에 온 나는 어머니께 달려가 'ali bali bee'가 무슨 뜻이냐고 여쭤보았다.
"어머니, ali bali bee가 무슨 뜻이에요?"
"그건 아무 뜻 없어."
"아, 그럼 '아무 뜻 없어'란 뜻이에요?"
"...어??"
이런 식의 대화는 자주 있는 일이었다. 7살짜리 나에게 있어 '아무 뜻 없는 말' 따위는 있을 수 없는 것이었다. 다른 모든 말에는 뜻이 있지 않은가. 성인이 된 지금이야 추임새로 쓰이는 별 뜻 없는 표현이라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지만,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노래 가사 중에는 아무 뜻 없이 추임새로 쓰이는 말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했기 때문에, 아무래도 7살의 내가 이해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여담으로 저 ali bali bee라는 말은 장기 기억으로 저장되었는지, 몇 살 더 먹은 어느 날 초등학교 도덕 수업을 듣던 도중 불현듯 머릿속에 떠올랐고, 그 순간 어머니께서 말씀하신 '아무 뜻 없어'가 무슨 뜻이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몇 년의 기다림 끝에 찾아온, 이런 것을 돈오(頓悟)의 순간이라고 하던가.
또 하나 기억나는 질문이 있다.
어린 시절 우리 가족은 명절이 되면 할아버지 댁을 찾아뵈었는데, 지방에 사는 우리 가족은 국내선 비행기를 자주 이용하곤 했다. 김포공항역에서부터 5호선 지하철을 타고 할아버지댁이 위치한 곳까지 이동하다 보면, 지하철 노선도의 송정역과 발산역 사이에 역명이 적혀있지 않은 동그라미가 하나 더 있었다.
어느 날 그것을 발견한 나는 아버지께 여쭤보았다.
"아버지, 저기 저 역 이름이 없는 저건 뭐예요?"
"...잘 모르겠는데.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데."
"그럼 왜 표시를 해놓은 거예요?"
"...모르겠는데."
당연히 매일같이 5호선을 타는 것도 아닌 아버지께서 그 답을 아실 리가 없었다. (게다가 지금처럼 다른 지역의 뉴스를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는 시대도 아니었으니.) 그렇다고 아무런 이유도 없이 노선도를 그렇게 그렸을 리도 없을 테니, 결국 나는 며칠 뒤 집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러 공항으로 가는 길에 이 의문을 직접 해결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발산역에서 열차가 출발하자마자 나는 열차 창에 코를 박고 긴장한 채로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두둥, 두둥, 두둥, 열차 소리가 마치 긴장한 내 심장소리 같았다. 이윽고 문제의 그곳에서 서서히 열차가 속도를 줄였고, 이내 잔뜩 부라린 내 눈앞에 나타난 것은 바로 불 꺼진 마곡역이었다.
마곡역을 발견한 것에 신이 난 나는 지하철에서 고래고래 떠들어댔다. "제가 봤어요. 불 꺼진 지하철역이 있어요. 이름은 마곡역이에요!"라며 신나게 떠들어댄 기억이 난다. 아버지는 신난 나를 진정시키느라 진땀을 빼셨고, 어머니는 별 희한한 이야기를 다 듣는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셨다.
5호선을 타고 다니던 수많은 사람들 중 노선도의 이름 없는 동그라미를 유심히 보고 눈으로 확인해야겠다고 생각하여 열차 창문에 코를 박고 관찰한 끝에 마곡역의 존재를 확인한 사람이 몇 명이나 있었을까. 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미 건설 직후부터 미개통 역이 되어버린 마곡역에 대해 비판하는 언론 취재가 적지 않게 있었다고 한다. 그것도 몰랐던 어린 나는 (어쩌면 남들도 다 알았을 사실을) 고래고래 떠들었던 것이다. 나는 이래저래 참 키우기 힘든 아이였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