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발명 만화 그리기 대회의 추억

by 립미얼론

초등학교 때면 으레 교내 발명 만화 그리기 대회에 출품해 본 기억이 다들 한 번쯤 있을 것이다. 나 또한 초등학교 3학년 때 발명 만화 대회에 출품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 물론 열 댓살 먹은 아이들의 아이디어라고 해봐야 거기서 거기일 거고, 대부분은 실제로 이미 개발이 완료된 기술이거나 진작에 사용하다가 더 나은 기술이 있어 폐기해 버린 경우도 많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모든 아이들, 심지어 평소 진지한 모습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볼 수 없었던 아이들조차도 두 눈을 반짝이며 열심히 그림을 그리는 것이 꽤나 의외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아마 수업시간에 수업 대신 만화를 그릴 수 있었으니 그만큼 재밌었던 게 아닐까 싶다.


당시 내가 제출했던 아이디어는 자전거에 전기 배터리와 모터를 탑재하되, 자전거를 멈출 때 브레이크가 잡히면서 발생하는 마찰열을 모아 배터리를 충전하는, 말하자면 일종의 회생제동(?) 시스템이 탑재된 전기 자전거였다.




여느 아이들처럼 나도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쯤엔 두 발 자전거를 배워 타고 다녔다. 우리 아파트는 산등성이에 지어져 있어 내리막과 오르막이 단지 안에서도 매우 심한 편이었기에 자전거를 타기 수월한 환경은 아니었다. 한 번은 자전거를 타고 친구들과 놀다가 귀가하여 자전거를 보관소로 옮기기 위해 바퀴 쪽에 손을 댔는데, 브레이크와 마찰한 부위가 따뜻했다. 집에 와서 아버지께 물어보고는 그것이 "마찰열"이라는 것을 이해한 나는, 며칠 뒤 발명 만화 그리기 대회에서 이 마찰열을 활용한 회생제동 시스템을 그려서 제출했던 것이다. 만화의 내용이랄 건 없지만, 내리막과 오르막이 반복되는 동네에 살던 아이가 자전거에 모터와 배터리를 달고, 그 배터리는 내리막길에서 브레이크를 잡으며 발생하는 열로 충전하여, 오르막길에서 동력을 보태는 데 사용한다는 내용이었다. 물론 자세한 작동원리를 따지고 들어가면 엉성했겠지만, 어쨌든 내용은 그랬다.


당시 나는 이것이 정말 획기적인 아이디어라고 생각했으며, 출품을 하면서 무조건 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며칠이 지나 수상작 발표의 순간이 왔다. 한 반에서 상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이었다. 우리 반을 대표해 수상한 아이의 작품은 "3단 뒤집개"였다. 전을 부칠 때 쓰는 스텐 뒤집개를 3개 붙여, 한꺼번에 빠르고 많이 전을 뒤집을 수 있다고 한다. 3단 뒤집개가 발명 만화 그리기 대회에서 우리 반을 대표해서 1등으로 수상한 작품이라고 한다.


나는 선생님의 솔직한 피드백이 궁금했다. 수상작 발표가 끝나고 담임선생님께로 가, 대체 내가 왜 상을 받지 못한 것인지 솔직하게 여쭤봤다. 좋은 아이디어가 아니냐고, 정말 편하지 않겠냐고 여쭤본 기억이 난다. 이에 대한 선생님의 답변은 아래와 같았다.


"이게 현실성이 있겠나? 3단 뒤집개는 현실성이 있는데 네가 낸 건 현실성이 없다. 말이 안 되잖아."


참고로 회생제동 기술이 처음 발명되어 열차 등에 활용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였고, 내가 저 만화를 그려서 낸 것은 2002년이었다.




위에서도 말했듯, 나는 세상을 바꿀 만한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무시당했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내가 출품한 작품의 핵심 아이디어는 진작에 세상에 나와 있었고, 어딘가에선 이미 잘 사용되고 있었다. 내가 낸 아이디어는 그저 내가 겪었던 일상의 불편함을 과학적 원리를 활용하여 개선해 보자는 것이다. 그리고 나보다도 훨씬 앞서 그런 생각을 한 어른이 존재했고, 그렇기에 내가 떠올린 회생제동 전기 자전거는 저 시점으로부터 정확히 10년 전에 세상에 출시되었다. 그러니 어른의 시선에서 봤을 땐 식상할 수도 있는 것이고, 당연히 수상할 것이라는 내 생각은 분명히 오만한 구석이 있었다.


하지만 20년도 넘게 지난 지금도 나는 3단 뒤집개가 1위를 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 현실성이 있다며 상을 받은 3단 뒤집개는, 그 뒤로 20년이 넘게 지나도록 시장에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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