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두와 37일째 지내는 중
11월 첫째주 주말에 제주도 2박 3일 여행을 다녀왔다.
1박 2일 간 북바이북 book by book 이라는 서점이 주관한 행사에 참여했는데, 1박 2일간 김연수, 이병률, 임경선, 김하나 작가 등과 책과 소설, 그리고 낭만에 대한 대화가 이어지는 시간이었다.
저녁엔 심지어 가수 짙은 이 공연을 하는, 그야말로 장소, 컨텐츠, 그리고 날씨가 삼위일체 완벽했던 행사였다. 같이 간 친구와 미리 2박 3일의 일정을 예약했기때문에, 남들보다 하루 더 길게 제주에서 시간을 보내다 왔다.
가기 전에 고양이를 키우는 친구에게 부탁하여 저녁 나절 잠깐 집에 와서 고양이 밥과 물을 챙겨주고 화장실을 치워달라고 부탁했다.
친구는 집에 와서 부탁한것들을 챙겨봐주고 잘 지내고 있는 고양이의 모습을 사진으로 보내주었다. 사진을 보니 안심이 되었다.
같이 여행을 간 친구는 나보다 약 1년 이상의 선배 집사(?) 로, 저 먼 설국에 그 해 첫번째 내린 눈 같이 새하얀 스코티시폴드를 키우고 있다. 성격이 너무나도 순해서 '내가 고양이를 만난다면, 그 고양이처럼 순한 고양이면 참 좋겠다' 라는 생각을 했다.
친구는 고양이와 사는 일상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옆에서 줄곧 이야기해주었고, 내가 입양을 고민할 때 많은 조언(그리고 뽐뿌...) 을 해준 친구이다.
공통의 관심사가 고양이다보니, 우리는 낮에 점심을 먹으며, 저녁에 와인을 마시며 줄곧 고양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매일 집에서 보는 고양이인데도 여전히 사진을 보면 어쩜 그렇게 귀여운지, 하는 행동은 얼마나 엉뚱한지, 이런 이야기들을 계속 하는데도 소재가 끊임이 없고 즐거웠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들을 할 때 집에 있는 고양이가 궁금하고, 걱정되고, 보고싶었다.
월요일에 집에 가니 고양이가 현관문으로 달려온다. 방 안엔 온통 사료가 흩뿌려져있고, 물그릇은 말라있었다. 아차 싶어서 손을 씻고, 깨끗한 접시에 물과 사료를 담아주었다.
물을 마시고 있는 고양이를 보는데 문득 가슴속에 채워지는 잔잔한 기쁨 같은게 느껴졌다.
나에게 의존하는 생명체가 있다는데에 가슴 찡한 무언가가 있으면서, 책임감을 다해 돌봐줘야 한다는 사실이 부담감이 아닌 행복감으로 다가왔다.
고양이를 입양하기 전 약 1년이 안되는 시간동안 '내가 이 고양이의 평생을 책임질 수 있을까?' 하는, 이 책임감이 너무나도 부담스럽게 느껴졌었는데, 이게 행복으로 다가오다니 참 신기했다.
고양이와 산지 이제 갓 한 달 차이지만 이전에는 알 수 없었던 것들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애완동물을 키우는 가정이 느낄 행복감과 반려동물에 대한 애정을 공감할 수 있게 되었고,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이런 기분이겠구나 하고 아주 손톱만큼의 이해가 생겼다. 편협하고 부족한 내가 고양이를 만나 조금은 덜 편협한 인간이 되어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