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지치는 날 쓰는 부끄러운 일기
회사를 5년쯤 다녀보니 성격이 바뀐걸 새삼 느낀다.
주말, 휴일, 공강날 집에 있는게 죄악으로 여길만큼 외출이 연이었는데,
나이 차이가 10살은 훌쩍 넘는 선배들, 고학번 언니오빠들과 소주 마시며 사람을 알아가는 것을 좋아했는데,
회사에 취직해서
팀장님의 격노에 직격탄을 맞고 나서는 슬슬 팀장님의 기분 상태를 눈치 보게 되고,
주어진 업무를 완결하지 못했을 때 비난을 받고 또 스스로를 자책하고,
때로는 친하다고 생각했던 주변 동료들과의 대화에서 상처를 받게 되면서
친한 사람들과 소주 한 잔 하고싶다, 생각하다가도
'사람들과 술 마시면 뭐해, 다음날 속이나 안좋지'
산책하고 맛있는 커피 마시면 좋겠다, 싶다가도
'집 밖에 나가면 뭐해, 추운데'
하는 생각으로
퇴근 후 집에서 맥주 한 잔
주말에 침대에 누워서 짤막한 동영상을 보거나
고양이 노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게 되었다.
퇴근길에 회사 문을 나서면 '와 정말 오늘 하루 너무 길었다' 생각이 들면서,
집에오는 길에 에픽하이의 <빈차> 를 들으면서 내가 잊고있던 내 무언가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도 억울한 느낌이 들어 울컥하고,
샤워하고 누워 '내일은 무탈했으면' 하고 빌어본다.
회사에서 일을 하는 것은
주어진 업무를 수행하는 물리적인 에너지 그 이상으로 너무나도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는 것 같다.
우리는 주말에 무엇을 했냐는 질문에 별거 안했다는 이야기를 머쓱하게 하면서,
나이가 들어서, 체력이 딸려서 주말에 아무것도 못하겠더라 하고는 세월을 탓하지만
사실 우리가 존재하고 있는 이 공간에서 조금씩 그 에너지를 빼앗겨서,
주말에 정말 아무도 안만나고 아무것도 안해야 다음 한 주를 버틸 수 있는 에너지가 채워지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