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과 취향에 관하여
미국에 있는 마트 트레이더 조(Trader Joe's)에서 몇 달 전 출시된 미니 에코백이 출시와 동시에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다. 원래 큰 사이즈로만 나오던 에코백이 이번에 미니 버전으로 나왔는데, 노란색, 빨간색, 초록색 등 봄에 어울리는 알록달록 다양한 색깔과 귀여운 사이즈, 그리고 $2.99의 저렴한 가격이 눈길을 끌며 엄청난 인기를 올리고 있는 것이다.
'미시쿠폰'이라는 한인 주부들의 커뮤니티(?)에서도 이 에코백을 구입했다며 게시글을 올리거나, 에코백에 자신의 취향대로 커스텀하여 꾸몄다는 게시물들이 한동안 인기를 끌기도 했었다. 내가 사는 조지아 에덴스, 작다면 작은 이 동네에서도 이 미니 에코백의 인기는 실감할 수 있다. 트레이더 조에서 일하시는 지인분께 에코백의 입고가 언제 될지, 물량은 얼마나 들어올지 물어보는 사람을 내 주위에서도 꽤나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뉴욕 포스트에 따르면 이 $2.99 트레이더 조 미니 에코백은 인기를 끌면서 구하기가 어려워져 이베이(ebay)에서 $500에 팔리고 있다고 한다. 정말 대단한 인기가 아닐 수 없다.
나로서는 약 4000원짜리 미니 에코백을 약 68만 원 주고 산다는 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 물건이라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나의 취향이 아닌 물건도 좋아 보이게 만드는 게 '유행', '트렌드'라는 말인 것 같다. 모두가 좋아한다고 하니 나도 가지고 싶고, 가져야 될 것 같은 기분이 드니 말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트렌드를 잘 쫓아가는 트렌드세터는 못 되는 편이다. SNS를 잘하지 않고(최근에는 나름대로 열심히 하던 인스타그램마저도 지웠다.) 작은 도시에 있다 보니 세상 돌아가는 물정에 어두운 편이다. 하지만 한 가지 다행인 것은 내가 되고 싶은 나는 유행에 민감한 멋쟁이 트렌드세터가 아니라 오히려 세상의 유행에 흔들리지 않는 나만의 취향을 가진 사람이라는 점이다.
사실 내가 나의 취향이 무엇인지 탐구하기 시작한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다. 한국에서도 이런 생각을 종종 하기는 했지만 나도 모르게 유행이라고 하면 그 비슷한 거라도 해봐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마음에 이것저것 많이 사기도 하고 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에 이사오며 갑자기 주부가 된 나는 시간이 많아졌고, 어쩔 수 없이(?) 조용히 나를 대면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동시에 학생 부부로서 한정된 시간과 자본 안에서 최대의 효율과 만족함을 끌어내기 위해선 나를 잘 아는 게 중요했다.
한 예로 남편에게 러닝은 잘 맞고 재미있는 운동이었지만, 나에게는 정말 지루하고 힘든 운동이었다. 처음에 남편을 따라 나름대로 열심히 러닝을 뛰어보며 나는 다시 돌아와야 하는 길을 20~30분씩 뛰는 것보다 지정된 장소에서 지정된 운동을 할 때 더 즐겁게 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지금 나는 러닝 대신 필라테스 센터를 꾸준히 다니고 있다. 러닝 외에도 여러 가지 운동을 찍먹(?)해본 결과 찾은, 지금으로선 내가 가장 꾸준히 하고 있으며 가장 재미있게 하고 있는 운동이다. 사실 우리가 입 밖으로 말하지 않아서 그렇지 개인의 취향은 생활의 많은 부분에서 반영된다. 그릇을 살 때, 음식을 먹을 때, 옷을 살 때, 사람을 만날 때 등등 우리 모든 생활에서 개인의 취향이 들어간 많은 선택을 하면서 우리는 살아간다.
미국의 작은 도시에서 살면서 한 가지 한국에서의 삶과 크게 다르다고 느끼는 부분은 내가 유행을 쫓아가야 하는 빠르기가 느리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도 때때마다 유행하는 물건이나 운동, 생활습관, 화장법등 다양한 '트렌드'들이 있다. 하지만 그 유행을 꼭 따라가지 않아도 내가 뒤쳐졌다는 느낌을 한국에서만큼 느끼지 않아도 된다. 적어도 나는 그런 것 같다. 아무리 유행한다고 한들 그걸 따라가는 사람만큼 따라가지 않는 사람도 많기 때문이다. 이런 미국의 문화가 공교롭게도 생긴 내 취향 탐색의 시간에 날개를 달아줬다.
나는 여전히 (특히 무엇을 사기 전에) 나의 취향은 무엇인지에 대해 나름대로 진지하게 고민하는 시간을 거친다. 특히 물건을 살때는 이 물건을 내가 질리지 않고 오래 사용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깊이 고민한다. 유행에 따라가는 멋쟁이 트렌드세터인 삶도 좋아 보이지만 지금 2024년의 나에게는 한 가지 물건을 사고 입고 먹을 때도 내 취향이 무엇인지 깊게 고민해 보는 내가 더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