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니 좋지 아니한가
제법 낯설게 느껴지는 집으로 오던 길. 집에 와서 한 보따리 지고 온 캐리어를 풀어놓고 가족들, 친구들과 나누어 먹을 주전부리들을 한쪽에 정리해 놓고, 그토록 그리워하던 엄마표 밥상을 거하게 먹어치웠다.
그리고 저녁엔 그토록 바라던 대형 TV로 드라마를 보았고, 꿀 같은 잠을 푹 잤다.
그리고 이틀 뒤 2월 3일, 나는 다시 상해로 가고 싶어 졌다.
익숙한 동네, 익숙한 집, 익숙한 방 ( 아니 내가 집을 비운 사이 방 구조가 바뀌어 내 방을 내 방이라 하지 못하고 다용도실이 되어 있었지만. )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아니 너무 그대로였다. 말을 편하게 하고 말을 시원하게 듣는 것이 그리운 적도 있었지만, 버스 안에서, 식당에서 건너편의 건너편 식탁에서 나누는 대화 소리까지 실시간으로 머릿속에 들어온다는 일은, 상해에서 생활한 후 비로소 느끼는 신기함이었으나 동시에 매우 피곤한 일이기도 했다.
나는 상해로 교환학생을 떠나기로 마음먹을 때 딱 두 가지 조건을 고려했다.
1. 오래 있을 곳
2. 돈이 적게 들 곳
그리고 떠나면서 두 가지를 다짐했다.
1. 나만 생각할 것
2. 열심히 행복할 것
새로운 곳에서 익숙함을 기대하지 말고,
익숙한 곳에서 새로움을 바라지 말라했던가
나는 익숙한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어 조금은 무작정 상해행 교환학생을 떠났고, 그곳에서 새로움을 느꼈고, 또다시 이 익숙함이 싫어 조금 덜 익숙한 그곳이 너무나 그리워졌다.
나도 미처 몰랐다. 집에 온 지 이틀 만에 상해로 돌아가고 싶을 줄을. 친구들은 너무한다며 대체 뭐가 그리 좋았냐며 손사래를 쳤다. 그러데 애들아, 나 빨리 돌아가고 싶어.
이미 왕복 티켓을 끊어놓았으니 내가 돌아갈 비행기는 2주 뒤에나 공항에 나타날 것이고, 나도 2주 뒤에나 공항에 나타나야 한다. 이미 정해진 시나리오다. 그렇다면 내가 바꿀 수 있는 시나리오는 약 2주간 이곳에서의 하루하루. 그렇게 나는 매일매일 지난 상해에서의 생활이 나에게 주는 의미를 다시금 곱씹어보았다. 동시에 앞으로 5개월 남짓 남은 상해에서의 생활이 나에게 남길 의미를 무겁게 즐겁게 귀하게 여기었다.
다시 돌아온 상해
2월 중순이 넘어, 나는 다시 푸동공항에 섰다. 반년 전, 이곳에 온 첫날은 공항에 자그마치 7시간을 넘게 있었더랬지. 하며 그 날을 추억 ( 아니, 다시 생각해도 이건 추억이 아니다 ) 하고는 아주 자연스럽게, 아주 빠른 걸음으로 출국장을 빠져나와 택시에 올랐다. 가져온 짐이 또 캐리어 두 개였으니, 난 고민도 없이 택시에 올라 소리쳤다.
“复旦大学 旅行社宿舍,就是 武东路武川路 57好 那边!”
(복단대학교 유학생 기숙사요, OO로△△로 그쪽이요!)
그래도 처음이 아니라고 공항을 쏜살같이 빠져나와 택시에 오르는 내 모습이 웃기면서도 조금 뿌듯했다. 처음에 공항에서 학교 가던 날은 참 앞날이 깜깜했는데, 낯선 이국의 냄새도 싫었는데.
그렇게 1시간이 채 못 걸려 기숙사에 도착. 무거운 두 캐리어를 기꺼이 감사하게 ( 한 학기를 버틸 식량이 가득했으므로 ) 옮기고 2주 만에 기숙사 방문을 열어젖혔다. 정말이지 눈물 나게 반가웠다. 처음 기숙사 방문을 열던 날은 침대에 가방을 내던지고 주저앉아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었는데. 불과 반년 전의 일인데도 까마득했고 난 지금의 내가, 지금의 상해가 너무 반가웠다. 그리고 기숙사의 이 방은 내게 완벽했다.
봄이 오는 소리
역시 처음이 아니었기에 2학기 등록을 신속하고 수월하게 마치고 기숙사에 여유로운 오전을 보내고 있었다. 한국에 들렀거나 잠시 귀국했던 각국의 친구들이 오는 소식이 전해졌고, 내 달력은 밥 약속, 커피 약속으로 하나씩 차기 시작했다. 아차, 난 잠시 한국에 들렀을 때, 이번 학기 상해에서 꼭 하고 싶은 일들을 몽땅 기록해왔다. 일단 상해에 오자마자 먹을 음식부터, 독일 친구 Mona를 만나면 해줄 이야기까지!
그리고 얼마 안 있어 개학, 텅 빈 캠퍼스와 교정에는 학생들이 가득했고 제법 시끄러워졌으며 난 그 시끄러움이 이토록 반가울 줄 몰랐다. 패딩을 옷장에 욱여넣고 꺼내 입은 얇은 봄 재킷만으로 성큼 다가온 봄을 느꼈다. 봄이 오는 소리는 나만 들린 것이 아니었나 보다. 캠퍼스 가득 꽃과 나무가 기지개를 켰고, 나는 매일 아침 자전거를 타고 등교하는 그 시간이 싫지 않았다. 심지어 하교 후엔 부러 자전거를 끌고 교정을 몇 바퀴씩 돌기 시작했는데, 5시쯤 찾아오는 노을의 전 단계, 나는 이걸 일컬어 5시의 그을음이라 칭했는데 매일을 같은 자리에서 한참 넋 놓고 보도록 기분이 좋았다.
끝날 것 같지 않았던 긴 겨울이 가고 봄이 상해를 두드리는 소리는 기분 좋게 들려왔다.
매일매일 성큼성큼 다가오는 그 발소리에 나는 매일매일 설레었다.
봄이 와서라기보다는, 이 봄이 끝날 때까지 나는 이 곳 상해에서, 전보다 더 행복할거라는 예감 때문이었다.
나의 상해 교환학생 제 2부가 시작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