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라는 상처

by 니트

그날의 하이라이트, 도돌이표


그렇게 학교에서 기가 다 빠져 집으로 돌아왔다.


-다녀왔습니다.


현관문을 열고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오늘의 집안 분위기를 살피는 것. 아, 뼛속까지 싸늘하다. 오늘은 무섭게 고요하다. 우선 어머니의 표정을 살펴야 한다. 한쪽으로 눈을 흘기며 들릴 듯 말 듯 혼잣말로 욕도 하면서 주방에서 일을 하신다. 숨 죽이고 있어야 하는 타이밍임을 직감한다. 아버지는 깊은 한숨을 쉬며 소파에 누워 텔레비전에 나오는 야구만 보고 계신다. 남동생은 꽉 닫힌 문안에 있다. 분명 그동안 무슨 일이 었었음이 틀림없다. 어머니의 욕 섞인 혼잣말이 절정으로 치달을 때쯤 내가 없을 때 치르던 싸움의 2차전이 시작된다. 이 세상 모든 증오를 담은 듯한 아버지의 욕설과 귀에 때려 박는 어머니의 고성. 일단 내 방으로 대피한다. 싸움 소리는 닫힌 문이 무색하게도 너무 선명하게 귀를 때린다. 아마 동생은 이 소리를 꽤 오래전부터 듣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가만히 들어보니 명절날 있었던 고모들 이야기다. 지난번에 엄마가 날 앉혀 놓고 분해하시며 했던 그 이야기다. 이야기를 들으며 고모들이 지긋지긋하고 그런 어머니를 지켜주지 않고 방관하는 아버지가 이해 안 되고 미웠다. 그런 어머니의 마음을 알아주고 달래줄 아버지가 아니다. 아버지의 입장만 있을 뿐이다. 그런 일이 있어도 참고 조용히 식모처럼 일해야 할 어머니가 자신의 성질머리를 자꾸 긁는 것이 거슬리고 화가 나는 것이다. 가만 듣고 있으니 어머니가 너무 불쌍하다. 어릴 땐 어머니를 곧잘 때리기도 하고 칼도 들었던 아버지였기에 무서워서 귀를 막고 고성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지만 나도 이제 컸다. 장녀로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문을 열고 나간다. 나름의 논리로 아버지에게 항변한다. 분명 내 눈빛이 곱지 못했을 것이다. 아버지 눈엔 어머니의 가스라이팅에 한편 먹은 두 여자가 된다.


-(엄마를 쳐다보며) 도대체 네가 뭐라고 씨부렸길래 이게 또 이래?


그날은 맞을 각오로 아빠에게 대들었다. 안광이 번쩍 올라온 아빠의 손이 올라왔고, 순간 동생이 끼어들어와 막았다.


-퍽!


동생의 코에서 피가 흘렀다. 만약 동생이 가로막지 않았다면 내가 흘렸을 피다.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부녀 사이에서 정신 차린 엄마가 동생 코피를 닦으며 울면서 잘못했다고 아빠에게 빈다. 그리고 나를 얼른 방으로 보내면서 이야기한다.


-앞으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절대 아빠한테 티 내지 마.



남들처럼 행복하고픈 두 분이라는 걸 알기에


아버지는 소를 키우는 집안의 3남 5녀 중 차남으로 태어나셨다. 나름 동네에서 소 좀 키운다고 하는 집안이었는데 할아버지께서는 여자 문제로 할머니 속을 깨나 썩이셨단다. 부모의 편애라는 게 자식 많은 집에서 어떤 효과가 있는 지를 보라면 우리 친가를 보면 되었다. 매사 시기, 질투가 가득하고 극성맞은 고모들과 그런 고모들의 비위를 다 맞춰주고 살아남기 위해 거짓말도 서슴지 않는 기회주의자인 작은 아빠, 고모들 등쌀에 치여 늘 휘둘리는 큰 아빠 사이에서 아버지는 차남이라는 애매한 포지션에 늘 끼어 있었다. 장남은 장남이라, 막내아들은 막내아들이라 전폭 지원해 주는 가운데, 아버지는 일찍이 학업을 포기하고 어린 나이에 출가해 나이 차이가 한참 나는 어른들과 기술을 배우기 시작하셨다. 욱하는 성질에 옳은 말은 (욕을 섞어) 꼭 해야 하는 아버지는 형제들로부터 대놓고 따돌림을 당했으니 그 사이에서 어머니는 어떤 취급을 당했을까. 어머니는 위암으로 일찍 돌아가신 외할아버지를 대신해 어린 남매 동생들을 고등학교까지 보내기 위해 국민학교를 채 졸업하기도 전에 그만두고 공장일부터 남의 집 식모살이까지 안 해본 일이 없는 실질적 가장이었다. 외할머니는 신경섬유종으로 몸이 불편하셨기 때문에 집안일도 대부분 어머니의 몫이었고,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동생들에게 어머니는 부모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산전수전을 다 겪고 이십 대 초반이 된 어머니는 지긋지긋한 가장으로서의 책임으로부터 도망치듯 아버지와 선을 보셨다고 한다.


2층 여관방 계단에서 내려오는 아버지를 보고 한눈에 반했다는 어머니. 빛에 반사되는 아버지의 안광을 보고 어디서든 뭘 해 먹고살아도 살아낼 사람처럼 보였단다. 두 분의 시작은 여느 연인과 같았고, 장롱 깊숙한 곳에서 찾아낸 편지에서 보이듯 두 분의 사랑도 애틋했다. 하지만 식도 없이 부족한 형편으로 시작하신 두 분에게 나의 존재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 공사 현장에서 뜨거운 장비에 허벅지를 지져 입원하신 아버지는 병원에서 내 첫 소식을 전해 듣게 되었다. 그래도 여느 집처럼 첫 딸을 끔찍이도 생각하신 두 분이었다. 아버지 말씀으로는 내가 아버지의 배 위에서 그렇게 잘 잤다고 한다. 주말엔 날 데리고 공원에 가 자주 사진도 찍어주셨다. 고작 스물넷, 다섯이었던 두 분은 나를 키우기 위해 더욱 고군분투하셨을 거다. 4년 뒤 남동생이 태어나면서는 더 아등바등했을 터. 와중에 두 분의 성격은 정반대였다. 술, 담배를 즐겨하시며 극도로 가부장적인 데다 과묵하면서도 소심해서 잘 꽁해있다 한 번씩 폭력적으로 감정을 터뜨리는 아버지와 피해의식이 있으면서도 감정적이며 한 번씩 말이 필터링 없이 나오는 어머니. 양보와 배려라는 덕목을 가정이나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두 분의 맞춰가는 과정은 다소 격했지만 각자 나름의 이유로 외롭고 불쌍한 사람들이었다. 나는 그걸 알고 있었기에 부모님이 죽도록 밉다가도 가슴 찢어지게 불쌍했고 한편으론 내가 지켜줘야 할 존재이기도 했다.



키다리 아저씨가 필요해


성장기 시절 가장 힘들었던 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날 사랑해 주는 내편’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조금이라도 엇나가는 행동을 하면 온갖 증오와 저주를 퍼붓는 말을 들어야 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도 수학 70점을 받아왔다고 ‘나처럼 살 거냐’는 말과 함께 하루 종일 방구석을 굴러다니며 파리채로 맞았던 기억은 여전히 선하다. (물론 지금은 기억을 못 하신다.) 때론 날 선 말 하나하나가 가슴에 박혀 혼자 소리도 못 내고 이불을 덮고 서럽게 울었다. 상처받은 마음을 포용해 주며 도닥여주는 이가 없었다. 세상에 오롯이 혼자가 된 것만 같았다. ‘엄마, 아빠는 너를 누구보다 아끼고 사랑하지만, 지금 너의 행동은 잘못되었다’라고 가이드해 주는 이가 없었다. 내가 잘못하면 그냥 내 존재 자체를 부정당했다. 감정은 늘 끝까지 갔고 누구 하나 죽니 사니 하다가 끝나는 게 일이었다. 실수나 실패를 통해 배우고 한 단계 성장하는 시행착오를 겪지 못했다.


엄마는 아빠의 횡포로부터 지켜줘야 할 존재였고 내가 커갈수록 심적으로 더 크게 의지하셨다. 얘기할 곳 없는 서러움, 외로움과 같은 당신의 모든 감정을 내게 쏟아냈다. 그러므로 아빠는 엄마를 지키기 위해 내가 힘을 길러 맞서 싸워야 하는 존재였다. 그 가운데 어떻게 절대적인 애정과 지지를 받을 수 있으며, 어떤 인생의 가르침을 얻을 수 있었을까.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가에 대한 기준을 잃고 방황했다. 마음의 안식처가 부재했다. 늘 나만의 키다리 아저씨를 꿈꾸며 애정을 갈구했던 사춘기였다. 마음 저 심연까지 외롭고 외로웠다. 타인과 마음을 나누고 사랑하는 방법 또한 배울 수 없었다.


왜 나는 이렇게 불행한 가정에서 태어났을까 수도 없이 원망했고, 내가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나 수 없이 자책했다. 학교가 전쟁터였다면 집은 지옥이었다. 어디서도 안도하며 쉴 수 없었다. 내가 내린 결론은 버티고 버티다 하루빨리 어른이 되어서 학교와 집을 탈출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키다리 아저씨와 같은 남자를 만나 행복하게 사는 것이었다. 그런 내게 ‘나다움‘과 ’꿈‘이란 것은 한낱 사치였다. 그저 지긋지긋한 상처로부터, 부모님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남들처럼 평범하게만이라도 살고 싶었다.



keyword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