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에 관련되어 검색도 안 해보던 내가 글을 쓰려니 한번 검색해 보았다. 너무 불쌍하게 그려놓은 언론이었다. 실상은 별일 없이 지나가고 오후에는 도망가듯 조퇴하는 것은 아니고(뉴스 타이틀) 그래도 스승의 날이니 조퇴정도는 해도 되지 않을까 싶어 조퇴하시는 분들도 있고 아닌 사람들도 많다.
그래도 꼬맹이들은 스승의 날이라고 공책을 찢은 종이, 굴러다니는 편지지나 혹은 스스로 만든 편지지, 선생님이 주신 편지지 등에 그렇게 싫어하는 글쓰기를 해서 나에게 편지를 전해준다. 이 학교에서 5년째 근무하고 있으니 내가 가르친 아이들은 많고 이럴 때 얼굴 보면서 잘 지내니? 안부도 묻고 그런다. 그 편지 속에는 한결같이 <선생님 덕분에 제가 더 나아졌어요> 라는 말을 써서 나에게 준다. 그런 말 한마디에 힘을 얻는 것은 사실이다.
김영란법으로 스승의 날의 선물이라는 것이 사라진 지 오래되었다. 현장에서는 다들 반겼다. 그 선물은 참 안 받기도 뭐 하고 받기도 뭐 하고 했던 때..... (혹자들은 또 예전 촌지 받던 그 시절 이야기를 하시겠지만.... 난 20년 넘게 그리 많이 보지 않았다. 없다고는 하지 않겠다. 풍문으로 들려오는 소문 정도는 나도 한두 번 들었으니...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난 그저 얼굴이 화끈거렸는데 김영란법이 생겨서 교사들은 환호했다. 그리고 스승의 날을 따로 챙기지 않아 서로 덜 민망하다. ) 선물을 가져오는 친구들은 좋았겠지만 못 가져오는 친구들은 또 마음이 무거웠으리라. 내가 어릴 때도 그랬으니까.
그리고 <스승>이라는 말이 참 부담스럽다. 난 <선생>하기도 정신이 없는데 <스승>이라니.... 한 때 막 발령이 나고 의기양양하던 그 시절 열정과 패기가 넘치던 그 시절에는 난 1년 동안 내 아이들을 변화시키고 새로운 사람으로 탈바꿈하리라 생각했다. 내 뜻대로 아이가 변하지 않으면 화도 내고, 재촉도 하고, 하소연도 했다. 그 시절 나의 제자들은 어느새 엄마 아빠가 되어간다는 소문이 들려오는데 내가 그들을 만나면 사과한다. 선생님이 열정이 넘쳐서 그랬어... 그래도 그 아이들이 나에게 말했다. 선생님처럼 애끓게 가르쳐주셨던 분이 없다고. 솔직히 나의 열정은 전국 어떤 선생님들보다 강력했던 시절이다... 하지만 어쩌면 그런 열정이 상처가 되었을 수도 있고, 그리고 사람은 그리 잘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나는 수년간의 교사생활을 통해, 그리고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서 알았다.
나 자신도 내 마음대로 안되는데 내가 무슨 사람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키겠냐 그건 그저 오만이다 생각하고 참으로 겸손해졌다.
아이를 낳고 2년 키우고 복직하던 때가 아직도 생각이 난다. 처음 저학년을 맡게 되어서 긴장이 되었는데 2살 배기랑 계속 생활하다가 학교로 돌아오니 아이들이 전부 천재로 보였다. 2살을 키우고 나니 내 학생들은 참 대단하게 보였다. 이렇게 말도 알아듣고 떼도 안 부리고 울지도 않고... 그렇게 복직한 해를 아주 잘 보냈다.
사실 내 아이는 활동적이고 명랑이 도를 지나치고 열정 캐여서 뭐든 하려 하고 고집이 세고 행동도 크고 목소리도 크고.. 적극적인 모습에 주변 엄마들은 부러워하는 캐릭터일지 모르겠지만, 양육하고 교육하기에는 쉽지 않은 캐릭터이다. 이 아이를 키우고 나서부터는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이 세상에서 가장 순하게 보였다. 엄마말들은 집에서 안들을지 모르겠지만 학교에서 내 말은 들으니까.
왜 변화하지 않을까라는 의문에서 변화하는 것이 더 <기적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변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이 작은 존재들에게 바라는 것은 힘들지 않은가? 그리하여 나는 아이들마다의 기질을 인정하게 되었다. 좀 느린 아이, 좀 빠른 아이, 행동이 큰 아이, 행동이 작은 아이, 말이 많은 아이, 말이 적은 아이, 주변을 신경 쓰는 아이, 주변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아이, 낯선 것을 좋아하는 아이, 낯선 것을 싫어하는 아이 등등... 그저 기질을 이해하고 기질에 맞춰서 내가 대응하고 행동하고 <그럴 수 있지>라고 이해한다.
또한 가장 조심하는 것은 <이 아이는 이런 아이예요!> 라고 단정 짓는 일이다. 특히 초등 같은 경우는 아이는 수시로 변화한다. 성장하고 바뀌고 달라진다. 내가 변화시킨 것이 아닌 아이가 배우면서 커가면서 달라지기 때문에 교사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꾸준한 지도를 한 뒤에 기다리는 일이다. 교육은 그저 <기다림의 연속>이라는 사실이다. 조금씩 달라지는 그 변화를 알고 아이를 칭찬하면 아이는 흥이 나서 그 변화가 고착화되고 결국 자신이 된다. 그래서 난 <이런 아이>라고 단정 짓지 않는다.
스승의 날 이야기로 돌아가면 정말 <스승>이신 분들을 위한 날이라고 생각한다. 학교 선생님으로 국한되지 않은 그 <스승>이 학원 선생님일 수도 학습지 선생님일 수도 나에게 가르침을 준 분일 수도 있다. 그러신 분들을 위한 날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언론에서는 그저 학교를 묵묵히 다니고 있는 선생님들을 너무 불쌍하게 생각하지 않길 바란다.
그리고 혹시 나를 기억하는 모든 학생들이 상처보다는 사랑을 기억하기를 바란다. 좋은 의도였지만 혹여나 상처가 되지 않았기를 바란다. 그래서 스승의 날 학생들이 건네는 쪽지는 나에게 좋은 기억들을 확인하는 통로 같은 것이다. 올해도 나에게 사랑을 건네준 그 많은 아이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