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유별남은 자연 발생한 것이 아니다. 물려받았다(당당). 내가 사랑하는 여자들은 하나같이 다 예민하다. 예민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심지어 상대적으로 덜 한 사람도 없다. 세월도 예민함을 풍화하지 못했다. 다만 이들이 살아온 이야기는 유잼+대서사 재질이기 때문에 얘기하는 맛이 있을 거다. 모름지기 쓰는 사람이 신나게 조잘거려야 읽는 재미가 더해질 테니까. 게다가 다양한 삶의 모습을 표현하는 것은 여러모로 쓸모 있다. 애증 하는 핏줄들은 공익광고에 그려지는 단정한 형태의 가족이 아니다. 오히려 기가 센 여자들의 쨍그랑 와장창에 가깝다. 서로를 못마땅하게 여길 때도 많았다. 하지만 각자의 꼴 그대로 사랑하고 살아가기를 선택한 것도 맞다. 그 흔한 가족사진 하나 없고 함께 여행을 떠나는 일도 없다시피 하지만 엄마와 이모들의 이야기를 남겨놓으면 언제든 함께 할 수 있다. 설렌다. 간단한 기계에 의존해서, 어떤 형식의 기록에 의해, 사랑하는 누군가의 일부를 영원히 남겨두는 거다(기획 의도가 썩 훌륭하다).
이모 1, 이모 2, 이모 3(14년도 별세), 엄마까지. 6남매 중 자매 네 명은 여러 가지 사유로 가까이 살았다. 엄마는 옛날 옛적부터 직장을 다녀 나와 언니는 이모 1+사촌들과 함께 지내는 시간들이 많았다. 이모 2, 3은 함께 장사를 하며 살림살이와 조카들의 성장을 물심양면으로 받쳐주었다. 자매들은 가정의 가장들이었다. 가부장을 대표하는 남성은 없었다. 살다 보니 그리 되었다. 하지만 시대는 보수적이었고 먹고사는 것은 만만치 않았다. 모계의 집안은 가난했다. 시간이 갈수록 가난해졌다는 말이 더 적절하긴 하다. 외조부모도 일찍 돌아가셨다. 그녀들은 각자 생존해야 했다. 삶을 견디기 위해서는 독해져야 함은 물론이다. 이 과정에서 생명력과 예민함이 함께 제련됐을 거다. 이들이 겪어온 시간들을 감히 짐작조차 하기 힘들다. 다만 이 악물고 버틴 시간들이 각자에게 상흔을 남겼기 때문일까, 연대하며 삶을 지켜냈지만 동시에 자주 불화했다. 모난 말과 힐난을 주고받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소화불량을 일으킬 에피소드를 생성하던 때도 있었다.
언니 1, 언니 2, 언니 3(쌍둥이), 나. 다시 자매가 네 명이다(두 명의 남성 핏줄들도 존재하지만 자매에 초점을 맞추겠다). 역시나 모두 예민하다.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었다. 유전자의 랜덤성을 깡그리 무시하고 예민함이 활개 쳤다. 참으로 굉장한 우성인자 아닌가. 아래 세대 자매들은 그럭저럭 잘 지낸다. 그도 그럴 것이 위 세대 자매들의 고군분투 덕에 생존에 내몰리지 않았기 때문일 거다. 다만 위 세대 자매들의 독특한 거리감-예를 들면 도보 20분 거리인데도 무언가를 함께 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때문에 눈치껏 조심해야 할 일이 종종 있다. 좀 귀찮긴 하다. 이종사촌이라는 촌수적 거리감은 거의 느끼지 않는다. 언니들이 있어서 항상 든든하다. 함께 시간을 보내면 시끌벅적 즐겁다. 물론 사랑하는 일은 지극한 정성과 수고가 필요하다. 마음과 시간을 써야 할 대상들이 넘쳐나 피곤하긴 하다. 그럼에도 풍진 세상에 애틋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명치가 뜨끈해지는 일이다.
예민한 사람들이 삐뚤빼뚤 사랑하며 살고 있다. 지치지 않고 이야기해 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