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함에 진심이라는 말

by 단아

나는 왜 예민하지?(타고났다) 이건 바꿀 수 있는 건가?(없다) 조절은 할 수 있나?(있다) 평생 함께 가야 하는 건가?(맞다) 그렇다면 덜 싫어해야겠네(옳다). 최근에야 괄호 속 간단하기 그지없는 단답을 채울 수 있게 됐다. 간단한데 단순하지 않다. 간단함 뒤에 숨겨진 시간들은 쨍그랑 와장창 우당탕탕의 연속이었다.


오래 미워하고 몰두한 만큼 예민함에 대한 애증은 진심이었다. 문자 그대로 예민함에 진심인 사람. 다만 감정적으로 진심이라는 것과 예민함을 잘 아느냐는 별개의 문제였다. 어떤 사람을 계속 싫어하기만 했다면 싫음에 집중했기 때문에 온전히 그 사람을 알지 못한다. 내 경우도 똑같다. 예민함을 제대로 몰랐다. 이건 좀 아니다 싶었다. 효율과 가성비에 목숨을 거는 민족으로써의 도리가 아니다. 이왕 시간을 썼으면 적어도 모르진 않아야 할 거 아닌가. 일단 예민함을 부수자는 기세로 달려들었다. 이론적 배경? 오케이. 예민함에 효과적인 방법들? 오케이. 순조롭군, 순조로워.


하지만 실전은 얘기가 달랐다. 문제는 삶에서 예민함을 어떻게 대할 것이냐였다. 일단 없는 듯하는 게 제일 좋으니 아닌 척을 해보자. 유순한 사람들을 관찰하고 그들의 특성을 따라 해야지. 가식도 3년이면 성품이 된다잖아! 처참한 실패를 맛보고 다른 방법을 탐색한다. 장트러블이 심하고 체력이 약해. 운동을 하자. 튼튼해지면 덜 예민하겠지?! 으쌰으쌰. 하지만 활기차게 성질내는 인간이 됐다. 우회한다. 자본주의에서 살아가려면 돈이 필수지. 괜히 금융치료라는 말이 있겠어? 두툼한 지갑은 온순함의 곳간이잖아. 본업&부업&제2의 부업!! 번아웃 와서 실패. 3전 3패다. 패인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열심히 했잖아? 계속 예민함을 생각하고, 고민하고, 시간을 들였으면 뭐라도 남아야 하는 거 아닌가?!


사실 전공과 직업이 심리학과 상담이니 이걸로 해결하면 끝 아닌가 싶기도 했다. 명상과 그라운딩은 쓸만했다. 다만 단기적으로. 마음가짐의 바탕이 '예민함 타파', '예민함을 허용하지 않겠다!'였으니 유용한 기술이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다이어트와 비슷하다. 수치적인 체중 감량에만 목숨을 걸면 많은 것들을 놓친다. 급하게 뺀 살은 언제든 귀가할 준비가 되어있다. 심지어 예민함은 수치로도 확인할 수 없고 만질 수도 없는데, 이 모호한 종자를 없애고자 했다니. 전제와 방향성이 글러먹은 상태에서 노력만 들이부었던 거다. 지나친 당위(예민함을 없애야 해!, 예민함을 극복해야 해)를 내려놓자. 이런 진심은 소용도 쓸모도 없다.


진심을 다시 설계해야 했다. 당위와 강박을 빼고, 싫지만 인정할 건 인정하자. 받아들이고 예민함에 맞는 결로 대해줘야 한다. 무조건 열심히가 아닌 힘 빼기의 기술로 언어를 바꾸는 거다. 스스로를 슴슴하게 대한달까. 그리고 팀 예민(팀 hsp)은 몸 구석구석 긴장도가 높다. 힘을 빼자. 앙 다문 입에 힘을 빼고 어깨도 토닥토닥해보자. 또, 예민함 할당제를 부여해서 하루에 한 조각은 예민함의 자유를 허락해 보자. 예민함의 총량을 부정할 수 없으니까. 그저 오늘의 예민함이군~ 하며 내가 만든 틀 안에서 예민함을 풀어주는 거다. 들들 볶지 않으니 예민함은 쪼그라들었다.


이렇게 반년 지내다 보니 인생 처음으로 예민함이 밉지 않다. 왜냐면 예민함의 목줄을 잡고 있으니까! 올해 초까지만 해도 못 잡아먹어 안달이었고 하루 종일 예민함으로 가득 차있었는데. 신기하긴 하다. 여전히 예민함에 진심인 상태긴 하다. 그런데 그때의 진심과 지금의 진심은 다르다. 무게를 줄이고 지속가능성을 더했다.


가벼운 진심이 마음을 진정시켰다. 킵해둔 에너지로 예민함을 제대로 알고 알리는 데 힘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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