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막다른 골목에서 봄을 움켜잡고 오다

갈 봄이 동거하는 모이란트 궁전 미술관에서의 추억

by 네딸랜드

묵직한 가을냄새가 차디찬 바람 속에서 그래도 잔향을 내뿜고 있다. 촉촉했던 낙엽조차 말라가며 바스락 소리를 내는 낙엽들이 모여 있는 나무 밑동 근처에는 여전히 초록을 품은 덜 성숙된 낙엽이 공존의 여운을 발휘한다.


가을을 품고 싶었다.

농해지는 가을색이 사무치도록 보고 싶었다. 해 놓은 것도 없으면서 뭔가 해 놓은 것 같은 만족감이 그리웠던 것일까 아니면 대리만족이라도 느껴야 현실의 공허함을 상쇄시킬 수 있을까.

모이란트 궁전 미술관 어귀에 있는 주차장과 기념품 가게 . 주변이 온통 단풍으로 물든 가을나무들
성 주변 정원과 야외 조각들. 단풍놀이하기에 제격이다

노랗게 노랗게 물들었네~~~

빨갛게 빨갛게 물들었네~~~


아이들은 흥겹게 가을길 노래를 부른다. 노래 가사처럼 파랗게 파랗게 높은 가을 하늘이었으면 좋았겠지만 회색빛 구름 아래 간간히 내비치는 태양의 인사만 받고 그런대로 안위해야 했다.


그래도 좋았다.

함께 가을길을 걸어가는 어여쁜 내 새끼들이 있어서.

Joseph Beuys

뒤셀도르프 미술관에서 종종 보았던 백남준 씨의 작품 때문에 곁다리로 알게 된 요셉 보이스(Joseph Beuys).

독일의 현대미술의 거장이라 불리는 요셉 보이스(Joseph Beuys)의 작품을 많이 소장하고 있는 14세기 독일 궁전에서 보낸 어느 가을날의 추억.


축축한 황토 내음을 맡아가며 성 안의 미술관(모이란트 궁전 미술관; Museum Schloss Moyland)을 향하여 뚜벅뚜벅 걸어 들어간다.

짐짓 가을 속으로 들어가는 여정이다.


내 눈 앞에 보이는 저 성 안에는 지금은 14세기에 살고 있었을 공주도 왕자도 왕도 왕비도 없지만 성문 밖에서 시작하여 정원을 거쳐 성 안에 이르는 공간 구석구석마다 나름의 삶을 살아냈을 수많은 성주들의 인생들이 오래된 묵색으로 물들었을 것이다.



14세기에 지어진 이 성의 첫 주인은 그 지방의 귀족이었다. 해자를 품고 있는 이 성은 별로 화려하지 않은 중세 독일의 무뚝뚝한 성의 위엄을 가지고 있다. 모이란트 궁전(Schloss Moyland)은 수세기 동안 새로이 꾸며지게 되고 다듬어지게 된다. 겉은 투박해 보이고 단조로워 보이지만 한 때는 내부를 화려한 바로크풍으로 개조한 적도 있었다. 18세기에는 독일 프로이센 왕국의 초대 국왕 프리드리히 1세가 이 성을 소유하였다가 7년 전쟁 이후 성을 처분하였다. 바로 이 시기 1766년 네덜란드의 폰 스테인흐라흐트(Von Steengracht)家가 이 성을 소유하고 꽤 오랜 시간 동안 관리하였다. 한참 후 세계 제2차 대전이 일어나자 성은 심각하게 손상을 입었고 이후 수십 년 동안 폐허 된 성으로 남아있었다. 그러던 중 1987년부터 이 성을 재건하고 미술관으로 재건축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일어났고 1990년 슐로스 미술관 재단(Museum Schloss Moyland Foundation) 이 설립되면서 본격적으로 성과 정원의 복원 작업이 이루어졌다. 역사 속으로 서글프게 사라질 수 있었던 이 모이란트 궁전(Schloss Moyland)은 20세기 독일 현대미술의 거장인 요셉 보이스(Joseph Beuys)의 작품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소장한 저력 있는 미술관으로 다시 세상에 등장하게 된다.



20세기의 대표적인 독일의 오브제 작가로 평가받는 요셉 보이스(Joseph Beuys).

그는 독일 크레펠트(Krefeld)에서 태어나 자라 클레페(Kleve)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제2차 세계 대전에 나치스 공군의 부조종사로 복무하게 된다. 이후 1943년 자신이 탄 비행기를 러시아 군이 격추시킨 바람에 죽을 고비를 맞게 된다. 비행기에서 추락한 그 지역에 사는 타타르 부족은 그를 구출하고 그들의 풍습대로 펠트 담요와 비계 덩어리로 간호하고 돌보아 주어 목숨을 구했다고 전해진다. 이것이 크나 큰 계기가 되어 요셉 보이스는 펠트와 기름 덩어리를 작품 소재로 사용하기도 한다.


기존의 고정관념을 철저히 거부하고 자유를 지향한 그의 철학이 고스란히 반영된 그의 작품은 개념미술, 행위예술, 환경예술에 영향을 주게 된다. 우리에게 친숙한 백남준 씨와는 1962년부터 전위예술 단체인 플럭서스(Fluxus)에서 같이 활동하기도 하였다.


궁전 외부에 있는 특별전시장에 전시되어 있던 요셉 보이스의 '직접민주주의를 위한 장미' 作 .1973. 유리 실린더에 텍스트


한편, 요셉 보이스(Joseph Beuys)의 고향과도 같은 클레페(Kleve) 지역의 한스와 프란츠 요셉 판 데르 그린텐(Hans and Franz Josept Van der Grinten) 형제는 미술사를 전공한 대학 시절부터 수많은 작품들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요셉 보이스(Joseph Beuys)와의 인연이 시작되었고 그 두 형제와 요셉 보이스(Joseph Beuys)는 클레페 지역의 고등학교 동창이기도 했다. 이 두 형제는 요셉 보이스(Joseph Beuys)의 작품을 무척 좋아하여 그의 작품을 구매함은 물론이고 개인전을 열어주는 든든한 후원자 역할까지도 하였다. 1967년부터 1986년 요셉 보이스(Joseph Beuys)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이 형제는 그의 작품을 끊임없이 수집하였고 때로는 기증받기도 하였다. 수많은 요셉 보이스(Joseph Beuys)의 작품과 자료들은 1990년 슐로스 모이란트 재단이 설립된 해에 모이란트 궁전 미술관(Museum Schloss Moyland)으로 이동하게 된다. 덕분에 모이란트 궁전 미술관(Museum Schloss Moyland)은 요셉 보이스(Joseph Beuys)의 작품 - 드로잉, 조각, 수채화, 유화, 판화, 응용미술, 사진 등-을 가장 많이 소장하는 지역의 명문 미술관으로 등극하게 된다.



사랑하는 네 딸들아

너희들과 함께 뿌리던 낙엽을 잊을 수가 없다. 쌓인 눈처럼 쌓인 낙엽들을 그러 모르면서 두꺼비집을 만드는 놀이를 하는 너희들에게 가을은 동화 같은 시간적 공간적 배경이다.

그것도 귀족들이 살았던 성에서. 그 성이 걸어온 '가을동화놀이'라는 마법에 흠뻑 취하여 조각공원을 배회하고 가을 속에서 봄빛 가득한 봄꽃들을 마주한 것이.


사그락 거리며 사라져 가는 낙엽들이 흥겨이 춤추는 가을.

풍성한 가을과 열매 맺는 풍요로움의 가을이 아닌 사라져 가는 시간 속에 멈춤의 의미를 던져주는 낙엽 쌓인 길목에서 희망의 밧줄처럼 내려온 봄빛과 봄 색상.


평범한 인생을 살아가는 이들은 인생살이가 늘 가을의 한 복판에 머물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안다.

하루에도 사계절이 움트는 인생의 순간순간을 느껴가는 여리디 여린 인생들은

어느 시점엔 봄에

어느 순간에는 여름에

어느 때에는 가을 혹은 겨울 속에 버젓이 서 있음을 발견한다.


모네의 수련연작을 연상케 하는 작품


봄은 그래서 언제나 부푼 마음을 품게 해주나 보다.

아직 활짝 피어오르지 않은 꽃망울과 파스텔빛에서 출발하여 마침내 드리워지는 진한 원색의 꽃송이를 보여주기까지 보는 이에게 무한한 기대감과 상상력을 선사해주는 봄.


우린 언제나 봄을 살아내고 싶은가 보다.


무덤덤하고 무시로 희미해져 가는 나날 속에 빛을 받아 영롱함을 내뿜은 그 무엇인가를 만들고 싶은 예술가의 창작욕구를 우리네 인생에서도 발휘하고 싶은 거다.

그 창작욕구는 삶에 대한 희망이자 가녀린 몸짓에서 움켜잡고 발산시킬 거대한 욕망 덩어리로 승화될 것이다.


그 무시무시한 솟구침을 역설한 요셉 보이스(Joseph Beuys)의 외침이 들리는 듯하다.


궁전 안 한 전시장에서 열린 꽃을 주제로 한 특별전시, 요셉 보이스의 상설 전시작품보다 더 눈길을 끌었던.


봄꽃 가득한 전시장에서

곳곳에 놓인 요셉 보이스의 작품들 속에서

소리 없이 기어 나와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는 내게 외쳤다.



Kunst ist Leben, Leven ist Kunst.
- 예술은 삶이고, 삶은 예술이다 -

Jeder mensch ist ein künstler.
- 모든 사람은 예술가이다 -

- Joseph Beuys -



* 미술관 전경 사진 출처 : 모이란트 궁전 미술관 홈페이지 및 구글 이미지

* 부분 참고한 내용 : 미술관 홈페이지, 이은화 님의 '라인강을 따라 떠나는 미술관 기행' 한국사립미술관보글, 네이버 캐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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