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대신해주지 못하는 내 마음과 상태를 표현한다는 것
나 이거 밥 많아. 좀 덜어.
그냥 다 드세요. 그것도 안 드시면 어떻게 해요? 기운도 없으신 분이.
아버님은 언제나 이만큼만 드시겠다며 밥을 누군가에게 덜어주려고 하신다.
어김없이 어머님은 다 드시라고 채근하신다.
한참 동안 아버님과 어머님은 실랑이를 벌이신다. 고작 밥 두 세 숟가락을 이리 옮기려 저리 옮기려 티격태격하시는 것이다. 두 분 다 모두 내 밥그릇에 그 밥 몇 숟가락 옮겨 놓고 싶으신 것 같다. 신경전을 벌이시는 모습 지켜본 것도 익숙하다 못해 그 자리에서 앉아 함께 식사하는 것도 버겁게 느껴진다.
작년까지 밥 숟가락 이동 최종 종착지는 며느리의 밥그릇이었다. 어디 밥뿐이랴. 반찬이나 다른 음식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난 내 자식 먹다 남은 것도 잘 안 먹으려고 하는데.
아버님의 식습관이다. 좋아하시는 음식은 옆에서 걱정될 만큼 많이 드시면서 드시기 싫은 것은 다 못 먹겠다며 옆사람에게 음식을 덜어주려고 하신다.
그냥 음식을 다른 그릇에 덜어내고 아버님 분량만큼만 드시면 간단한데 꼭 그걸 아버님 보시는 눈 앞에서 누군가가 그걸 다 먹어야 직성이 풀리시나 보다. 아마도 그렇게 해야 음식을 남기지 않고 허비하지 않는 것이라고 여기시는 것 같다. 아버님 방식의 알뜰한 생각이자 아버님 식습관에 대한 변명이다.
나의 신혼은 깔끔하고 아기자기한 새로운 둥지에서 시작되지 않았다. 시부모님의 연한 만큼 오래된 물건이 가득한 집에서 함께 살았다. 가뜩이나 모든 것이 어렵고 익숙하지 않은 신혼 시절에 이런 상황에 처할 때마다 나는 '제가 먹을게요'라고 음식을 받았다. 몇 번 이러한 일이 반복되자 이후로는 직접적으로 당신들께서 '너 더 먹어라' 하며 아예 내 밥그릇이나 접시에 음식을 덜어주시며 식사를 시작하신다.
좋아하는 음식이 다르고 내가 잘 못 먹는 음식이 있는데도 난 감히 표현을 하지 못했다.
그냥 주시는대로 먹었다. 내가 먹는 양이 있는데 그걸 초과하면 소화불량도 오고 힘든데 기분 나쁜 내색 않고 먹었다. 십중팔구 그렇게 의도치 않은 과식을 한 날에는 잠들 때 힘들었다. 화장실을 드나들던지 소화제를 먹든지 매실차를 마시든지 뭔가 나만의 응급조치를 하곤 했다.
외식을 할 때에도 음식 메뉴를 정하고 음식점을 정할 때도 늘 부모님의 의중이 우선이었다.
물론 어머님은 며느리인 나에게 뭐 먹고 싶냐고 늘 물어보셨는데 그때마다 내가 먹고 싶은 것보다 부모님이 좋아하시거나 드실 수 있는 것 중에서 골랐다.
그때는 그래야만 하는 줄 알았고 그렇게 사는 것이 편하기도 했었다.
백세시대를 눈 앞에 두고 계신 시부모님을 바라보며 이제 그 반을 향하여 달려가는 나를 살펴보기 시작한다.
엊그제 어버이날이라 시부모님 모시고 고깃집을 갔다. 그날도 어김없이 아버님 어머님의 레퍼토리는 이어진다.
이거 다 못 먹어. 이것 좀 덜어.
조금밖에 안되는데 그냥 다 드세요.
그분들은 최근 들어 며느리에게서 혁명을 보고 계신다. 고분고분하던 며느리가 '제가 먹을게요'라는 말을 더 이상 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버님 어머님끼리 음식을 서로 옮기시느라 바쁘시다. 주로 어머님의 밥그릇에 음식이 옮겨진다.
수년간 소화불량과 기분 나쁨을 반복적으로 경험한 이후 비로소 나는 나를 챙기기 시작했다.
왜 나는 배불러서 더 못 먹는다는 말을 못 했던가
왜 나는 먹기 싫다고 단호히 말을 못 했던가
처음엔 단순하게 생각했다. 그저 '제가 먹을게요'라고 말씀드리는 것이 밥상머리에서의 옥신각신을 빨리 종료시키는 방법이라고 여겼다. 조금 더 먹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기에 시부모님에게 보여드린 호의 아닌 호의는 자연스러운 일상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 당시만 해도 잘 먹고 많이 먹는 나에게 소화불량은 걱정의 대상이 아니었다.
시간이 흘렀다. 시부모님들의 밥상머리 대화는 여전히 변함없으셨고 나는 나이가 들었다.
먹을 수 있는 양이 줄어들기 시작했고 변함없는 식탁에서의 그분들의 모습과 대화가 여러 가지로 불편했다. 내가 원하는 만큼만 기분 좋게 먹고 싶은데 그게 쉬운 일이 아니었음을 그제야 인식한 것이다. 그동안 난 왜 내 의사표현을 못 했지? 그게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고 어려운 말도 아닌데.
배탈 나면 나만 힘들지 누가 대신 배탈 내주지 않는데도 말이다.
나를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남편이 대신 말해줄 만한 일도 아니고 남편이 대신 해결해주어야 할 성격도 아닌 것이다. 누군가의 입이 아닌 내 입으로 표현해야 하는 것이었다.
이제 겨우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나만의 작지만 용기있는 발돋움이다.
어머님 또는 아버님께서
너 더 먹어라.
이것 더 먹어.
라고 종용하실 때
배에 힘주고
“저 못 먹어요. 이거 더 먹으면 배탈 나요”
“저 이 만큼만 먹을래요 “
이렇게 말씀드릴 때마다 마음속에 짜릿한 쾌감을 느낀다.
이는 소소하지만 중요한 나의 언어 혁명에 뒤따른 묘한 성취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