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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네딸랜드 May 10. 2020

힘들다고 말하기 시작하니 생긴 변화

아프면 아프다고 왜 말을 못 하니 그게 내 대사가 되어버렸네

이쁜 우리 딸이 넘어질 때

괜찮아?


친구가 시무룩하게 있을 때

괜찮아?


힘들어? 어디 아파 보여.

아냐 괜찮아.


배 안 고프니? 좀 먹을래?

아니어요. 괜찮아요.


괜찮지 않은데 괜찮다고 말하는 것이 의례적인 언어습관이 되어버렸다.


자기 최면 효과를 얻으려고 그 말을 한 것인지, 정말 괜찮아서 괜찮다고 그러는 것인지 경계가 없다.


누군가를 위로할 때, 누가 낙심할 때 호탕하게 한마디 해줄 때에는 그 말이 어느 정도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꽤나 괜찮은 말이다.


괜찮아. 다시 시작하면 되지.

그 정도면 충분해. 괜찮아.

미안해하지 마. 괜찮아.

이젠 괜찮아.


나이 드신 시부모님과 함께 사는 것은 녹록지 않았다.

아버님 어머님의 입에서는 종종 아니 자주 하루에도 여러 번 '에휴 힘들다'라는 말이 터져 나온다.


어머님 모시고 차를 운전해서 밖에 외출했다 집에 들어오면 어머님은 대뜸 이리 말씀하신다.

' 난 운전도 안 하고 가만히 앉아만 있었는데도 이렇게 힘든데 넌 괜찮니?"

" 어머님. 전  괜찮아요."


아버님은 냉면을 좋아하신다. 그동안 살면서 아버님 덕분에 냉면을 수없이 먹었다. 외식하게 되면 주로 가게 되는 곳이 냉면집이다. 가끔 아버님께서는 혹시나 내가 다른 것을 먹고 싶어 하는데 먹지 못한 것 아닌가라고 느끼실 때 미안하신지 한마디 하신다.

'오늘 냉면 먹을 건데 괜찮니?

" 네 괜찮아요. 더운데 냉면 먹으면 좋죠"

 

괜찮다는 말이 나의 모토가 되어버린 것은 아닌가 싶었다.

정말 괜찮은가?라고 나에게 질문하면 이내 곧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잘 안다.

괜찮고 싶어서였나 보다. 정말 괜찮고 싶은 것이다. 아니 괜찮아야만 한다.


내가 보기에 시부모님은 '힘들다. 아프다'라는 표현을 참 자연스럽게 잘하신다.

아주 자연스러운 감탄사이다. 숨 쉬듯 내뱉으시는 언어다.


결혼 초기만 해도 그런 말을 잘 안 하신 것 같은데 수년 전부터 자주 애용하시는 표현이 되어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결혼 초기에 두 분은 건강한 70대 ·60대이셨고 지금은 구순을 앞두고 계시고 팔순이 훌쩍 넘은 고령의 어르신이 되어버리셨으니까.

80대인 어머님은 종종 70대인 친정엄마를 부러워하시면서 "너희 엄마는 젊어서 좋겠다"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신다.


어머님께서는 작년에 큰 수술을 받으신 이후 부쩍 힘들다는 표현을 하루에도 여러 번 말씀하신다.

친정 엄마도 아프다 힘들다는 말을 자주 하신다. " 너도 내 나이 돼봐라"라는 말을 양념으로 치시면서.


양가 집안을 오가면서 난 어느 곳에서도 내가 아프다, 힘들다는 말을 감히 못 꺼낸다.

마치 베테랑 앞에서 초짜가 명함을 못 내밀듯이.

나도 허리디스크 때문에 무척 힘든데.  나도 마음이 힘들고 어려운데.


어찌 된 일인지 나이 드신 부모님 앞에서 내가 아프다고 말한다는 것은 사치 같았고, 짠 밥이 되지 않는 애송이가 섣불리 해서는 안 되는 금기어 같았다.


피곤하면 피곤하다고 힘들면 힘들다고 졸리면 졸리다고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는 것이 뭐라고!

그저 생리적 현상에 대한 표현이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안타깝게도 아니 미련하게 나는 그런 말을 잘하지 못했다.      


살다 보니 죽고 싶을 만큼 힘들 때가 많았는데 격동의 세월을 살아오신 그분들 앞에 나의 아픔과 힘듦의 경력은 부족해 보여서 그랬는지 어설프게라도 표현을 하지 못했다.


그에 비해서 시부모님은 참 자연스럽게 아픔과 힘듦에 관한 권리선언을 잘하신다.

내 눈에 그리 보이고 내 귀에 그렇게 들리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고민거리를 생각하고 풀어갈 역량이 현저히 줄어들자 거침없이 그런 감정 표현을 잘하신다. 그 사이에 난 곪아가고 있었다.


어느새 나도 이젠 마음이 아프면 바로 몸이 아프다는 신호를 보내는 나이가 되어버렸다.

어떤 경우에는 몸이 아픈 것을 보고 마음이 아픈 것을 거꾸로 인식하기도 했다.

내가 체한 것을 보고 내 마음이 눌려 있구나 싶었고, 내가 피곤해서 쓰러졌을 때 비로소 내 힘듦이 과포화 상태라는 것을 역으로 확인하는 것이다.


벼르고 벼르다가 어머님 앞으로 장문의 편지를 썼다.

내가 이 상황에서 왜 힘든지, 무엇 때문에 힘든지, 그래서 몸 상태가 어떠한지 구구절절하게 썼다.

의사에게 내 아픔의 상태를 말하듯 내 힘듦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요는 이것이다.

저 힘들고 아파요. 제가 덜 힘들 방법을 찾을게요. 그렇게 살게요.


Ewald Matare , <엄마와 아이> 1931/1964, 뮤지엄 쿠어하우스 클레베


어머님 아버님께서 나를 배려하기 시작하셨다. 이전에는 어머님 아버님 입장에서 어머님 아버님의 방식대로 나를 배려하셨다면 이젠 내가 원하는 방법을 물으시면서 배려해 주시기 시작했다.

나에겐 별로 효과 없는 배려가 아닌,  어머님 아버님 입장에서 일방적인 배려와 베풂이 아닌 나에게 필요한 것을 위하여.

이는 내가 힘들다고 말하기 시작했을 때 일어난 변화다.


그동안 난 시부모님께 나만을 위한 맞춤형 배려를 해주실 기회를 드리지 못한 것이다.

어설프게 그분들의 마음을 배려한답시고 힘들어도 아파도 표현하지 않고 괜찮다고만 말씀드려서 나에 대한 민감성을 계발할 여건을 마련해드리지 못한 것이다.


아기가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표현하지 못할 때 엄마가 혹은 아빠가 알아서 챙겨주고 돌보아 주는 것은 정말 고귀한 일이다. 부모의 사랑이다. 하지만 스스로 표현할 수 있을 때에는 부모가 자녀에게 때에 맞는 배려를 해주는 것이 아름답다.

난 이제서야 시부모님이 나를 위한 배려를 배려답게 베푸실 기회를 드리게 되었다.

내가 아픈 것, 힘든 것, 어려운 것을 과감하게 말씀드리기 시작했을 때부터 이루어진 나와 시부모님 모두에게 일어난 값진 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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