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라이언 맥긴리 사진전에서 마주한
아름다운 민낯의 꿈

- 미술관 박물관 문화유산을 둘러보는 지혜가 자라는 생각여행 -

by 네딸랜드

햇살이 따사롭던 지난 초여름 어느 날. 이웃 마을에 다녀오다가 발견한 흥미로운 포스터
'라이언 맥긴리의 사진전에 와주세요'라고 외치는 포스터가 여기저기 붙어있었다.

더위에 지친 동생들은 집에 쉬라고 하고 첫째 너하고만 사진전에 갔었지.

DSC00104.JPG
DSC00095.JPG

처음 가보는 아메르스포르트(Amersfoort)에 소재한 미술관 쿤스트 할 까데(Kunsthal KAdE)

외관부터 마음을 설레게 하는 멋진 미술관 건물

동생들 없이 엄마와 둘만 함께 간다기에 너무 좋아하던 네가 안쓰럽기도 하고 네 순진함에 흐뭇하기도 하고
아직 사춘기에 접어들지 않았지만 심심치 않게 사춘기적 예민함과 정서를 종종 보이던 너이기에 이번 전시가 너에게 어떤 의미를 던져 줄지 조금 궁금해졌단다.

DSC00020.JPG

아직 청춘을 접해보지 않은 첫째 너와

청춘을 지나온 엄마가 청춘을 담아낸 사진들을 바라보며 무슨 마음을 나눌 수 있을까?

무엇을 함께 바라볼 수 있을까?

뒤늦게 소식을 접해보니 이미 한국의 대림미술관에서 진행된 라이언 맥긴리 사진전에 몰려든 수많은 청춘들의 발걸음이 예사롭지 않았다는구나

DSC09960.JPG
DSC09998.JPG

한국의 청춘, 젊음은

화려하면서도 아프면서도 고독하면서도 열정적이면서도 소외되기도 하고 끌려가기도 하는데...

왜 그렇게 한국은 (물론 다른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라이언 맥긴리에 열광했을까
동시에

네덜란드라는 이 나라에서는 어떤 의미로 이 전시회가 다가왔을까 싶구나. 성문화에 개방적이고 수업시간에도 교과서에도 자유롭게 성에 대해 공부하고 여러 가지로 성에 노출되어 있는 문화 속에서.

DSC00016.JPG


그러나 엄마의 초점은 너였단다. 네가 무엇을 보고 어떻게 받아들이고 무슨 말을 할지.

'이 사진들을 보니 어때?'
'사진들에 뭔가 특징이나 공통점이 있지?'

'사람들이 다 벌거벗었어'
' 아기나 어린이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없어'
'동물들과 찍은 사진도 많아'


그리고 그다음엔 애써 수줍음을 외면하는듯한 어눌한 말투로 더 이상 표현하지 않고 묵묵히 사진을 슬쩍 쳐다보듯 감상한 네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였단다.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덤덤하게 사진들을 바라보고
각자의 감상을 간직하며 말이지. 자신의 속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안단다.

직감적으로 느끼고 본능적으로 알아도 그것을 언어화시키기까지 수많은 사고와 인지 과정을 거치고 분주한 두뇌활동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도.


DSC00026.JPG
DSC00002.JPG


무엇보다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읽어낸다는 것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아는 것만큼 시간을 필요로 하고 용기와 각오가 필요하다는 것을.


엄마도 그래

자기 자신을 바라본다는 것이 그렇다.


자신의 벌거벗은 모습을 바라본다는 것은

수치를 동반하기도 하고 과감하고 저돌적인 결심도 서야 하고

어린아이들이 옷을 벗어던지고 돌아다니며 노는 흥겨운 놀이가 아니기에

간혹 자신과의 대면을 제삼자를 통해하기도 하지.
그 매개체가 사람일 수도 있고 거울일 수도 있고 어떤 사건일 수도 있어.

내가 누군지 알아가는 과정에

때로는 즐거운 일탈을 하고

힘겨운 방황도

그저 달리기도 하고
뛰어내리기도 하고

스스로의 감정을 분출하면서도

스스로에게 속기도 하고 속이기도 하는
거짓과 진실의 넘나듦을 경험하며 만나게 되는

수많은 자아 중의 진정한 자아

DSC09992.JPG
DSC00054.JPG
DSC09979.JPG
DSC00043.JPG


어쩌면 라이언 맥긴리가 담아내는 청춘은 그런 것이 아니었나 싶다.

청춘만이 가능한 자신과의 만남이 아니라 청춘이기에 가능한 발가벗겨진 자신과의 만남


엄마는 청춘을 뒤돌아보며 과연 그랬었나 싶었다. 물론 그랬단다.

너도 언젠가는 그러하리라 그 터널을 통과해야 하리라

엄마에겐

화려하지만 않은 청춘이었고 그러면서도 가장 화려했던 청춘이었고

너무나 아픈 청춘이었지만 아프지만 않았던 기쁨의 청춘을 뒤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단다.
받아들이기 힘든 자신의 내면 깊숙한 곳의 모순과 상처와 아픔 덩어리들을

암덩어리 쓸어내리듯 쓸어내려야 하는 일들은

진정한 어른이 되기 위해 거쳐가는 하나의 통과제의였단다.


새삼 엄마는

다시 청춘이 되고자 한다. 회춘이 아니라 그냥 청춘이 되고 싶다는 말이다.


불혹을 훅 넘긴 나이에 자신과 마주할 수 있는 만용에 가까운 용기를 내고자 한다는 의미란다.

d0046796_4eb5f379a5782.jpg
욕서미서(欲書未書)

글을 쓰면
아는 것 모르는 것 죄다 드러나니
쓰려고 하지만
아직 쓰지 않는 때가 좋구나


(직역하면 글을 쓰고자 하나 쓰지 못하였다는 뜻이다)

이 글귀는
유홍준 교수의 <명작순례>에 나오는데, 간이당 최립이 조선시대 성종의 아들 이성군의 종중손인 학림정 이경윤이 그린 그림 <산수인물화첩>에 제목을 붙인 것이란다.


엄마는 모르는 것을 드러내기로 했단다.
그렇지 않으면 평생 쓰지 않는 때로 머무를 것이 분명하기에

엄마가 라이언 맥긴리의 사진을 보며 마음을 다잡게 된 이유를 조심스레 설명할 수 있었단다.

엄마의 청춘을 다시 느낄 수 있는 통로가
아는 것 모르는 것을 드러내며 엄마의 민낯을 마주하는 것이다.


DSC09962.JPG


사랑하는 첫째 딸아
너의 다가올 청춘을 축복한다.
그 안에서 네가 발견해 갈 너의 진정한 모습을

오늘도 글을 써가며 새롭게 그려본다.
엄마의 새로운 청춘과 너의 청춘을!

- 20150710 -


http://www.kunsthalkade.nl/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