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와 노르웨이 대표 화가의 명화 감상에서 감동은 단지 시작일 뿐이다
네덜란드와 노르웨이의 국보급 화가들로 시대의 아이콘이었다. 두 화가의 첫 합동전시회가 오슬로 뭉크 미술관에서 2015년 5월 9일부터 9월 6일까지, 이어 2015년 9월 25일부터 2016년 1월 17일까지 암스테르담의 반 고흐 미술관에서 진행되었다. 두 화가의 작품들을 같은 시기, 같은 주제로 나란히 비교하여 전시하였는데 놀랍도록 그 둘의 인생 여정과 작품은 매우 흡사하였다. 워낙 다작들을 남겨놓았기에 이번 전시회에서 볼 수 있는 두 화가의 작품수가 많았다. 또한 인근 나라의 미술관에서 대여해 온 작품들도 있어 흩어져 있던 고흐와 뭉크의 원작을 볼 수 있는 참 뜻깊은 시간이었다.
암스테르담을 여행하는 이들이 가장 많이 찾는 반 고흐 미술관에 반 고흐와 뭉크 작품을 전시한 기간에는 무려 59만명에 이르는 이들이 다녀갔다. 때마침 새로 들어선 별관 지하 1층부터 2층까지 반 고흐 뭉크 작품을 전시하였고, 본관은 반 고흐 작품들이 기존대로 전시되고 있었다.
다른 인생을 살았던 그들
남들과는 다른 인생을 살았던 그들. 비범과 극도의 삶을 오가며 그림 속에 담아낸 그들.
그들은 서로 만나본 적도 없지만 그들에게서 비슷한 삶의 향기가 뿜어져 나온다. 비록 그들 생존시에는 뭇사람들이 그 향기를 향유하지 못했을지라도.
화려한 색상, 강렬함, 표현주의 , 한계에 도전하는 열정
재능이 두드러지지도 않았고 동료 화가들에게도 거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언론의 주목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자신의 그림 작업에 대한 믿음으로 끊임없이 그려나갔다. 집요하리만치.
두드러진 재능을 가지고 있었고 동료 화가들에게 지지를 받았다. 언론에 자주 오해를 받기도 했다. 자신의 직관에 대한 신념을 가지고 자유로이 표현하는 화가.
左 감자 먹는 사람들. 1885(반 고흐 作) 右 morning. 1894(뭉크作)
1880년 그들은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전통적인 주제에 접근한다.
농부들의 전원생활을 담아낸다.
방금 일어난 여인을 그려낸다. 아침 빛의 영향을 받은 색을 표현하나 적나라하게 표현한 더러운 발 때문인지 당시 미술비평가들에게는 그리 좋게 보이지 않았다.
左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 1988(반 고흐作) 右 별이 빛나는 밤. 1992(뭉크作)
루브르 박물관을 가고파 하던 뭉크와 고흐는 각각 1885년, 1886년에 파리에 가게 된다. 그 둘은 화가들이 모여드는 곳, 보헤미안의 미술이 꿈틀대는 몽마르트르에 그것도 같은 거리에 거주하게 된다.
左 Monmartre: Behind the Moulin de la Galette. 1887 (반 고흐作) 右 Spring day on Kal Johan street. 1890 (뭉크作)
파리에 거주하는 동안 그들은 인상파와 후기 인상파의 그림에 매료된다. 그들은 새로운 기법의 전문가인 마네를 존경하게 된다. 자신들만의 새로운 기법을 만들어가기 시작한다. 고갱은 고흐와 뭉크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게 된다.
左 이탈리아 여인. 18887 (반 고흐作) 右 화가 잔센. 1885 (뭉크 作)
左 씨 뿌리는 사람. 1888. (반 고흐作) 右 비옥함. 1899(뭉크 作)
그들의 가장 중요한 작품 활동... 연작
여기에 일치된 조화로움의 의미를 표현해낸다.
左 아를 노란 집. (반 고흐作) 右 절망에 대한 글과 스케치. 1892 (뭉크作)
아를의 노란 집을 시작으로... 해바라기 연작까지
낮과 밤, 안과 밖, 실내와 풍경. 성장, 소멸, 자연, 도시화를 그림에 담아낸다.
삶과 사랑, 죽음의 모티프 '생의 프리즈(Frieze of Life)' 연작 작업에 들어가게 된다.
左 Garden with courting couples 1887(반 고흐作) 右 The dance of life,. 1925 (뭉크作)
그들의 전 생애 동안 따라다니던 질병과 가난, 죽음, 사회적 고립, 정신병 등은 위대한 대작들을 만들어 내는 토양이 되었다. 그들의 삶은 예술과 서로 분리되지 않고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이들은 자신들의 글 속에 그 이미지를 함께 심어놓았다.
左 화가로서의 자화상 1887-1888(반 고흐作) 右 팔레트를 든 자화상. 1926 )(뭉크作)
左 파이프를 문 자화상,. 1888 中 반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수많은 편지들 右 해바라기 1889
생 레미(Saint-Remy와 오베르(Auver-sur-Oise) 시절은 정신병원에 입원 내지 감금되어 있었고, 지속적인 발작과 환청 환각 등으로 고통받던 시기였다. 위기가 절망의 시절에서 고흐의 명작들이 하나둘씩 세상에 나왔다.
左 절규. 1920 中 마돈나. 1895 右 흡혈귀. 1893
유년시절부터 가족의 죽음, 엇갈린듯한 여인과의 사랑과 배신. 일생 내내 점철된 허약함과 가난, 정신병적인 고통. 뭉크는 그림 속에 내면의 세계, 영혼의 시를 써놓았다.
사랑하는 둘째야
너와 엄마 우리 둘만 함께 한 오늘이 너에게는 참 의미가 있었지? 반 고흐의 그림보다 뭉크의 그림보다 단 둘이 있었다는 그 사실에 감격해하는 너의 굶주린 사랑을 보며 한편으로는 애잔한 마음이 든다. 그 애잔함은 더 깊은 소망으로 연결될 것이란다. 부족함에 불안해하지 말기를. 주어진 환경에서 더 나은 환경으로 개척해 가는 그 기질을 둘째 넌 태생태부터 가지고 있었단다.
고흐도 둘째였었지? 아마.. 일찍 죽은 형의 이름을 그대로 물려받고 살아온 그의 삶의 그늘이 어쩌면 무한한 그림의 열정으로 이어졌는지도 모르겠다.
절대 부족함은, 상처는, 얼룩은, 고통은 역설적이게도 도전과 창작, 열정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더러 많단다. 이 것을 승화라고 부르기도 하지. 넌 그리 살 것이다.
고흐와 뭉크의 삶이 우리에게 감동으로 다가옴은 주어진 현실에 주저 않지 않았기에 많은 이들에게 위로와 희망의 솟대가 되었지.
음... 너도 경험해보았을 거야. 예방주사 맞을 때 무서워서 피하기도 했었지? 그런데 누가 먼저 주사 맞고 아프지만 그냥저냥 참을만했다 하면 용기가 생기지? 그거야! 누군가가 지독한 슬픔과 고통 속에 있을 때, 그 누군가가 그 시간을 견디고 감내하고 있음을 볼 때, 우린 우리 자신의 삶을 바라보고 작은 위안을 받고 소망을 갖기도 한단다.
정신병원에 입원하여 살아갈 만큼 그렇게 힘들게 살아온 고흐.
평생 죽음의 덫에 걸려 병약함 속에 울부짖으며 버티며 살아온 뭉크
힘들게 꼬질꼬질하게 하루하루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그들의 삶은 적잖은 위로를 준다.
내가 만난 사람과 사건이 나를 구성한다.
한 사람의 고집과 생각이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의 결론이다.
시대가 그 사람의 삶 속에 가장 많이 들어온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다.
신영복의 "담론" 中에서
고통은 누구에게나 열려있어. 그 고통을 대하는 태도는 저마다 다르지. 그저 괴로워하기만 하는 자에게는 쓴 뿌리만 남지만 승화시키는 자에게는 그 사람의 마음 깊숙이 진정한 기쁨이 내재하게 된다. 얼씨구나 좋구나 하는 그런 가벼운 기쁨이 아닌 본연의 기쁨! 눈물과 고통을 이겨낸 환희의 기쁨이다.
빈센트 반 고흐, 에드바르트 뭉크
그 둘은 서로 알지 못했지만 후대 사람들은 그 둘의 명화 여로에서 묘하게도 닮은꼴을 발견한다. 내가 알지 못하는 때 알지 못하는 곳에 처한 누군가에게 내 삶의 평행선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지 않겠니? 그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너희들에게도 적용이 될 것이다. 지금 네가 겪는 모든 인생의 한 장면 한 장면은 외로움 속에 힘겨워하는 그 누군가의 인생에 평행선이라는 공감대를 마련해 줄 수 있다. 그러기에 숨 가쁘게 돌아가는 하루 하루마다 마음속에 여지를 두고 누군가에게 전해질 위로와 공감이라는 여운을 남겨두자. 이는 예측할 수 없기에 신비스러운 일상일 것이다. 동시에 그 누군가의 삶의 궤적이 나에게 평행선의 기적으로 다가올 수도 있으니 이 것이야말로 평범을 가장한 우연 가득한 필연적 인생 아니겠니?
사랑하는 둘쨰야 물론 첫째 셋째 막내 모두.
이것만은 기억하면 좋겠다.
진정한 삶의 평안은 자기에게 주어진 고통을 연달 하고 통과한 자에게 주어지는 선물이란다. 그러한 평안을 누리며 그 평안이 필요한 다른 이들과 나누며 전하는 복된 인생이기를 오늘도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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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기 전시 설명은 반 고흐 뭉크 전을 소개한 영상 및 브로셔를 토대로 작성하였습니다.
* 작품 사진 출처 - 반 고흐 미술관 홈페이지 자료실
에드바르트 뭉크....
방금 일어난 여인을 그려낸다.
아침 빛의 영향을 받은 색을 표현하나 적나라하게 표현한 더러운 발 때문인지
당시 미술비평가들에게는
그리 좋게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