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곳에서 활동한 두 예술가는 한 전시장에서 작품으로 서로 마주했다
미술관 건물 자체가 예술이다. 마크 어빙의 책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세계 건축 1001'에 소개된 20세기 후반의 포스트 모더니즘 양식의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이 뛰어난 건물을 설계한 이는 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적인 디자이너이자 건축가인 알렉산드로 멘디니(Alessandre Mendini)!
그는 '모든 이는 다 다르다'라고 말한다. 이 생각은 자신의 미학을 펼치는 시작점이다. 미술관 건물 곳곳에 그가 디자인 감각이 묻어난다. 미술관 안에는 멘디니 레스토랑이 별도로 있기까지 하다. 끊임없는 재창조의 열정을 작품 속에 구현한 알렉산드로 멘디니는 미술관을 자신의 작품 전시실로 착각할 만큼 디자인했다. 그의 디자인 감각을 엿볼 수 있는 전시실로 내려가는 나선형 계단을 걷다 보면 그의 대표작 중의 하나인 '프루스트 의자'를 쉽게 연상할 수 있다. 작품 속에 유머, 변신, 협업, 색채 배합의 코드를 숨겨놓는 알렉산드로 멘디니는 새로운 것은 없다며 리디자인(re-design)의 무궁무진한 창조성을 과감히 펼쳐왔다.
데이비드 보위는 음악, 무대 예술, 패션, 영화, 디자인 등 모든 예술의 영역에서 아방가르드(Avant Garde)에 존재한다.
지난 2013년 영국 빅토리아 앤 알버트 박물관에서 시작된 데이비드 보위 회고전은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을 이끌어 내었다. 런던에 이어 상파울루, 토론토, 시카고, 베를린, 파리, 멜버른에 이어 네덜란드 흐로닝언(Groningen)에서 회고전이 이루어지는 기간 중에 데이비드 보위의 부고 소식이 전해진다.
거의 처음으로 기억되는 나 혼자만의 전시 관람시간은 이렇게 추모와 추억으로 시작되었다. 더 이상 그의 실제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사실 때문인지 추모 열풍의 흐름 때문인지 관람객들의 표정과 태도는 진지하고 진실했다. 본격적인 관람을 시작하는 입구에는 간자이 아마모토가 1973년에 디자인한 의상이 전시되어있다. 전시장 여기저기 그를 기억하는 문장들이 새겨져 있다. 또한 데이비드 보위의 어록들이 벽의 한 단면을 장식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데이비드 보위의 음악을 보고 듣는다. 시청각을 총동원한 전시. 헤드셋을 끼고 멀티미디어를 통한 그의 수많은 작품들과 퍼포먼스를 접하게 되면 마치 눈 앞에서 위대한 뮤지션을 만난 것 같은 시공간을 초월한 경험 속으로 퐁당 빠지게 된다. 왜 빅토리아 앤 알버트 박물관에서 처음 전시가 이루어졌는지가 절로 이해가 된다. 공연과 작품 속에 선보인 수많은 의상과 소품들이 정성스럽게 놓여 있음을 보면 말이다.
한 사람의 일생을 돌아본다는 것은 실로 조심스러운 일 같다. 수많은 평론가들이 내어 놓는 그의 삶의 궤적에 대한 평들에 대해 귀기울이지 않아도 삶의 편린들이 모여져 거대한 인생이 되어버린 전시장은 그의 인생 드라마를 드라마틱하게 보고 느끼는 숨 가쁜 공간이다. 의상만 따로 전시한 곳에서는 감탄하기에 바쁘다. 전시장에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그의 모든 음악들이 아름다운 어울림을 형성한다. 영화 마션Martion)에 삽입된 음악 '스타맨(Starman)'을 전시장에서 계속 틀어준다. 화성인이 입음직한 우주복과 당시의 영상을 보며 은근 중독성이 있는 이 노래를 듣는 동안 묘한 위로감을 느끼게 되었다. 마치 영화 마션의 주인공처럼.
데이비드 보위의 작품세계, 인생 여정, 의상, 각종 소품, 출연한 영화, 공연 영상 이 모든 것을 세세히 전시한다. 위층으로 올라가면 특별한 전시가 기다리고 있다. 위층으로 올라가면 위층을 통째로 콘서트장으로 만들었나 보다. 사방팔방으로 보이는 뮤직비디오.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으로 들려주는 노래들.
시대를 앞서간 그의 예술성과 창조성은 지금 이 시대에서도 빛을 발휘하는듯하다. 어렴풋이 알고 있던 데이비드 보위의 음악들을 이 곳에서 듣다 보니 언젠가 들었던 추억의 음악이었었다. 록음악을 잘 알지 못하고 클래식만 즐겨 듣던 나의 감성에도 데이비드 보위의 음악은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왔음이 신기하다.
관습과 체제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대중의 심리와 요구를 파악하고 자신의 감각과 철학을 유감없이 발휘한 천재 그 이상의 전위예술가. 그는 우리 자신들 개개인 모두 주목받기를 원한다는 것을
이미 알았던 음악가였다. 사람들 마음 기저에 숨겨진 존재감에 대한 인정과 수용을 너무나도 정확히 표현한 예술가였다.
비가 추적추적 내렸던 흐로닝언에서의 밤. 그 속에서 헤집듯 발견한 기억과 새로 만든 추억.
알렉산드로 멘디니. 데이비드 보위
그들은 어쩌면 포스트모더니즘의 아방가르드에 서있었는지도 모른다.
흐로닝언 미술관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 이에 걸맞은 데이비드 보위 회고전. 예술을 사랑하는 이들이 관람하며 함께 이루어가는 순간순간 자체가 환상의 콜라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