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그러운 팔크호프 미술관에서 쉼표 마침표 생략표 느낌표 물음표를 던지다
따사로운 봄 그 어느 멋진 날에 유리창 너머로 펼쳐진 가을처럼 청명하고 푸르던 하늘.
라인 강줄기에 흐르는 봄의 따사로움.
이리 아름다운 유리창이 또 있었던가?
(주 전시실 2층의 모습- 날씨가 좋은 날에는 바깥 풍경이 마치 숲 속 같아 보인다. 창 밖에 펼쳐진 강물은 바다를 보는 느낌마저 갖게 한다)
미술관 야외 산책로에서 바라보이는
라인 강줄기인 발 강의 다리 (Waalburg)는
영화 '머나먼 다리 (a bridge too far)에서
한 장면으로 나온다.
실제 머나먼 다리의 주인공인 아른헴 다리는
바로 윗동네에 있고
영화는 인근 Deventer에서 촬영했다고 한다
로렐라이 언덕의 인어아가씨도 아니면서 미술관 관람객들을 홀려 유리창 밖의 풍경에 마음을 두게 만든다.
아마도 팔크호프 미술관(Valkhof museum)을 설계한 네덜란드의 세계적인 건축가 벤 판 베르켈(Ben Van Berkel)도 이를 염두에 두었을 듯하다. 벤 판 베르켈은 우리나라의 수원 아이파크시티,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슈트트가르트의 벤츠 박물관, 로테르담 에라스무스 다리, 암스테르담 인근의 뫼비우스 하우스를 설계한 저명한 건축가이다.
현대미술과 고고학의 만남을 성사시킨 이 미술관은 네덜란드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네이메이흔(Nijmegen)의 고단했던 역사와 삶을 그대로 품고 전시하고 있다.
별도로 마련된 네이메이흔의 평화(Vrede van Nijmegen) 전시실에는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양탄자가 있다. 이 도시는 1676년에서 1679년까지 유럽의 정치적 중심지였으며 여기에서 네이메이흔 협약이 이루어진다. 이 협약 덕분에 유럽 내의 전쟁이 종식되었다. 이때 사용되어진 양탄자와 태피스트리들이 보관되어 전시되어 있으며 이를 기념하는 대형 그림이 한쪽 벽면에 크게 걸려있다.
오늘도 미술관이야?
이렇게 되묻던 너희들이 이 미술관에 들어서자 너희식대로 감탄하며 지하에 있는 어린이들을 위한 미술실(valkhof junior)에서 당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었단다. 정말 훌륭한 곳이었다. 전시되고 있는 주요한 작품들에 대한 설명을 글과 사진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만들어 보고 느낄 수 있도록 만든 입체적인 경험이 이루어지는 곳이었다. 꽤 넓은 공간으로 그곳에서 만들고 그리고 때로는 대형 그림책을 보면서 반나절을 보낸 흥미로운 작업실이었다.
(주니어 팔크호프(junior valkhof) - 어린이들을 위한 미술 이해 체험관)
네이메이흔은 네덜란드에서 흔하디 흔한 운하가 별로 없는 마을이다. 내륙지방이기 때문이다.
과거 한자동맹 도시의 흔적도 군데군데 남아있고 중세 성벽의 자투리도 보인다.독일과의 접경지대에 있기에 요새가 있고 전쟁의 상흔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우리가 걸었던 그 무너진 성벽길도 그중의 하나다.
지금은 여타 대도시에 가려져 있지만 과거엔 흥했던 도시였었단다. 끊임없이 발발했던 유럽 내의 전쟁을 종결진 네이메이흔화약이 이루어진 장소인만큼 영향력이 있었던 도시였다.
이 미술관이 위치한 팔크호프 공원 일대는 과거 기원전 1세기부터 로마인들이 정착하면서 야영지로 삼았던 지역이어서인지 이 곳 옛 지명은 노비오마그스(Noviomagus)이다. 이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미술관 고고학 전시실에는 로마시대 유물들이 많았던 이유로 짐작할 수 있다.
오래된 고도(古都) 시에 고고학 전시물이 많은 것이 지극히 자연스럽다.
(미술관에서 바라 본 방위탑과 발(wall)강의 모습, 발 강에서 시내 중심부의 성과 교회를 바라본 모습을 그린 풍경화)
이 마을의 유지이기도 하고 팔크호프 미술관의 공동설립자인 흐라르트 캄(G.M.Kam)이 수집한 도자기만 따로 전시된 방에는 엄마와 맏이인 큰언니와만 관람을 했구나. 동생들은 어린이들을 위한 공작실에서 반나절을 보냈었다.
처음 이 미술관에 도착하여 밖에서 바라볼 땐 그저 단순해 보이고 푸른색을 띤 네모난 상자 몇 개 얹은 듯해 보였으나 입구로 들어서자마자 탄성을 지르게 되었단다. 천정에는 파도가 치고 창 밖에는 푸른빛이 넘실대고 벽 한 면이 통째로 숲 속인 것 같은 이는 필시 자연을 담은 미술관이었다.
첨단 건축가의 안목은 정녕 이런 것이었나 보다.
고고학과 현대미술이 경계 없이 허물없이 있는 모습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
여기에 무슨 어색함이 존재하랴! 의외의 조합이 어색하지 않은 반전을 이루어내듯.
(팝아트 특별전시실- - 캠벨 수프와 모델 트위기가 눈에 뜨인다)
사랑하는 네 딸들아
너희들도 서로 어울리고 협력하되 때로는 의외성을 가지고 새롭게 만나보렴.
역발상도 산뜻한 방법이란다. 거기에서 창조가 시작된다.
창조와 재창조는 평범함 여러 개를 의외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색다른 조합을 만들면서 이루어지기도 해.
물론 그 면면에 깊이 있는 지식과 혜안이 쌓이도록 너희들은 배움에 힘써야 하겠구나.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는가가 어떤 결과물을 낳는지까지 이어진단다.
쉽게 넘어가고
무심코 지나치고
무시하며 달려가는
그 순간순간에
의미를 발견하고
거기에 가치를 창조하며
남들이 미처 바라보지 못하는
미래까지 열어줄 수 있다면....
엄마는 더할 나위 없이 기쁘겠다.
매사를 매의 눈으로 바라보되 따뜻하고 진정성 있는 심장을 가져야 한단다.
어쩌면 우리가 오늘 온 미술관 이름이 매의 공원(valkhof)이란 의미가 너희들에게 통째로 주는 자연의 선물일지도 모르겠다.
(미술관 내 야외 카페테리아/ 미술관 내 카페 )
그렇게 우리는 천천히 미술관과 미술관 주변을 산책했다.
재촉하는 이 없이 우리끼리의 이야기를 나누며 소담스러운 시간을 가졌단다.
그 날 우리가 함께 느낀 자연이 주는 위로를 누리고
파란 하늘에서 쏟아지는 무수한 우리들만의 꿈들도 풀어헤쳤단다.
천천히 가면 어떠하랴!
너희는 너희대로 엄마는 엄마대로 주어진 우리 삶에 만족하고 감사하는 연습을 하면서 함께 걸어가자.
이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는 팔크호프 미술관이 참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