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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을 배려한 접근성이 좋은 판압베 미술관

장애인과 노약자를 위한 최상의 감상 시스템을 갖춘 현대미술관의 고마운 철

by 네딸랜드

아인트호벤(Eindhoven)은 축구만 유명한 도시가 아니다. 한 때 그곳은 박지성 선수가 마지막으로 소속되어 있었던 PSV Eindhoven이라는 걸출한 축구팀의 경기와 축구장을 보러 온 한국사람들로 붐비기도 했었다. 그곳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네덜란드의 회사 '필립스(Philps)' 박물관이 있는 도시이다.



고전적인 도시와 첨단 도시의 풍경이 한데 어우러져 새로운 아름다움을 창출해 낸 도시이기도 하다.


판압베미술관은 현대미술을 전시하는 미술관이자 미술관 건물 자체로도 훌륭한 명성을 가지고 있는 곳이다.


아인트호벤에 지역을 대표하는 예술적 명소를 만들고자 헤인리 판 압베(Henri van Abbe)가 미술관을 건립하였고 그의 이름을 따라 판압베미술관(Van Abbe museum)이라 칭했다.



참신하고 독창적인 전시 공간과 디자인 감각을 드러내는 판압베 미술관의 진정한 매력은 모든 이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열린 공간이라는 점이다. 현대와 현재를 아우르는 예술과 시대정신을 전시작품과 함께 드러내는 것을 기초로 하여 세워진 미술관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지만 문화와 예술에 접근하기 힘든 사람들까지 포용하며 나가는 것을 표방한다.



우리가 흔히 사회적 약자라고 부르는 이들 즉, 장애인·노인·어린이들을 위한 접근성에 최상의 시스템을 마련해 놓은 것이 주목할만한 사실이다.


어린이들을 위한 웰컴 박스(welcome box)에는 가위 풀 색상지 색연필 사인펜 등의 미술도구와 간단한 접기 재료 등이 있으며 관람안내지와 작품 이해를 돕는 활동지(work sheet)가 들어있다. 박스 안의 안내대로 만들거나 미술관 이해를 돕는 활동지를 완성하여 관람 후에 안내데스크에 제출하면 아이들에게 멋진 기념품을 선물로 준다.


시각장애인 안내견도 당연히 미술관 관람을 할 수 있다. 휠체어를 탄 어르신들의 미술관 나들이

재택 미술관 관람을 돕는 로봇 . 로봇이 미술관을 다니며 작품과 큐레이터의 설명을 생중계 해준다.

노인이나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을 위한 특별한 장치들이 있다. 휠체어를 타고 전시장을 돌아다니며 관람하는데 전혀 어려움이 없도록 경사로가 설치되어 있고, 엘리베이터나 리프트가 곳곳에 있다. 오래 서 있기 힘든 사람들을 위한 관람 방석이 있다. 신체가 허약하거나 병이나 장애 때문에 미술관에 방문하지 못하는 이들은 가정이나 속한 곳에서 로봇(Robot)이 대신 미술관을 돌아다니며 작품들을 중계해주는 서비스도 있다.

무엇보다 이들을 위한 별도의 미술관 투어 시간이 마련되어 있다는 점이 참 고무적이고 인상적이다.


관람 보조기구들- 전시를 중계하는 로봇, 관람 방석, 이완을 돕는 향수병, 어린이들 위한 오디오 가이드


시각장애인이나 청각장애인을 위한 별도의 가이드 투어 시간이 있다. 매주 둘째 주 일요일 오후 2시마다 마련되어 있는 이 시간에는 시각장애인들의 미술관 관람을 위한 보조기구들이 작동된다. 물론 시각장애인 안내견도 얼마든지 환영받고 미술관에 입장할 수 있다. 미술관 투어를 진행하는 큐레이터의 안내에 따라 작품에 손을 대면 미리 제작된 모작 작품을 만지거나 냄새를 맡거나 음악이 흘러나오거나 점자가 제공되는 시스템이 작동된다.


청각장애인들을 위한 미술관 투어시간은 매주 첫째 주 일요일 2시에 이루어지며 이때에는 수화통역이 제공된다.


놀랍고 고마운 접근이다. 차별이 아닌 차등적인 관람 시스템을 적용한 것이 약자를 향한 배려로 나타난다.


미술관 안내를 해주는 아저씨의 어린이들 위한 각별한 친절함

(右 필립스의 도시답게 필립스 전구로 전시한 작품이 두드러진다)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우리나라에는 이날 각종 장애인의 날 관련 행사가 이루어진다. 수십 년 동안 이 행사가 반짝 행사로 이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다. 보여주는 전시나 기획행사에 동원되는 많은 장애인들의 말 못 할 아픔도 함께 세월 속에 쌓여 가고 있다. 뜻있는 사람들의 진정한 움직임도 많이 있지만 아직도 우리나라는 갈 길이 멀다는 것이 씁쓸한 현실이다. 장애인 주차 구역을 버젓이 사용하는 뻔뻔하고 게으른 사람도 많다. 장애인이 대중교통이나 미술관 박물관을 이용하는데 이동성과 접근성의 각종 제약을 받는 것이 얼마나 많던가?


피카소, 카렐 아펠, 몬드리안, 코코슈카의 작품들


복지국가에서 보이는 장애인이나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는 삶 속 깊숙이 파고들어 진정성을 보여준다. 사람들이 장애인들을 대하는 태도나 시각에서 차이가 나고 정책적인 배려에서 가장 큰 간극이 이루어진다.


한국의 모든 미술관과 박물관을 가보지 못했지만 적어도 가본 곳 중에 판압베 미술관만큼 장애인을 배려한 공간을 보지 못했다. 보았다면 장애인 주차구역, 엘리베이터 이 정도. 경사로는 복불복이다. 리프트는 아마도 예산 문제와 효용성과 효율성 문제 때문에 설치되어 있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별도의 가이드 투어 역시 전문인력과 보조기구 제작의 한계 때문에 제공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장애인들이 문화생활하는 것에 대한 시선이 그리 달갑지 않다. 장애인들이 - 특히 장애학생 장애청소년-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간다면 단체로 가지 개인으로 가는 경우가 별로 없다. 장애인들이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가려하면 일단 미술관의 작품 설명보다 관람 수칙에 대한 설명이 주가 되어버린다. 장애인들은 문화생활의 주체가 아닌 미술관 관람자 관리 대상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전시실 안에 마련된 체스판, 거꾸로 매달아 놓은 자동차 안에서 편히 앉거나 누워서 동영상을 볼 수 있다


사람들의 시선이 참 불공정하고 편견적이다라는 것은 특별한 누군가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이미 우리 안에 너무나 자연스럽게 내재되어 있는 가치관이다.


장애인이 예술을 감상하고 문화생활하는 것에 대한 특별한 시선을 가지고 있다. 동정적인 시선부터 유별나거나 특별하고 예외적이다라는 주로 극과 극에 존재하는 대립적인 시각이다.


한편 장애를 가지고 극복한 예술인에게는 무한한 감동과 인간승리에 대한 존경을 표하며 추대하는 시선이다. 둘 다 인간이고 사람인데 모순적인 시각을 가지고 대하는 것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무런 불편한 감정을 느끼지 않는 것이 신기할 뿐이다.


아인트호벤에는 유명한 디자인 아카데미가 있다. 미술관 디자인도 탁월하다.


예를 들어 프리다 칼로의 전시회에서는 사람들은 그의 작품성과 장애를 극복하고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완성한 것에 무한한 애정과 찬사를 보내는 것이 일반적인 반응들이다. 더 나아가서 감상적으로 그의 인간승리의 모습에 동정도 하고 뛰어난 작품에 감동도 표현한다.

그러나 중도 복합장애를 가진 이가 애를 써가며 미술관에 드나들고 작품을 감상하려는 이에게는 ' 그냥 집에 편하게 있지. 왜 나와서 고생하며 그림을 보는가?'이렇게 생각한다.


단지 사람들이 성과주의·업적주의적 가치관을 가졌기에 이렇게 양면적인 시각을 갖게 된 것은 아니다.

애초부터 장애는 나와 상관이 없다는 생각의 출발선상에 이미 차별적이고 불공평한 시선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학습되어 있는 것이기도 하다. 장애는 언제든지 내게 발생할 수 있다는 엄연한 현실을 애써 외면하고 싶은 무의식의 발로 이기도하다. 비주류에 속하지만 주류에 속하고 싶어 자신의 정체성을 주류에 놓고 비주류를 무시하거나 차별하고 억압하며 사는 이들에게 나타나는 동일한 메커니즘이 장애와 비장애에 대한 가치관 형성에도 그대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선진국에서는 이러한 시각들이 전혀 없지는 않지만 상대적으로 적다. 선진국을 결정적으로 가로지르는 것은 사람들의 가치관과 생각과 태도인 경우가 많다. 그들도 사람이고 인간이기에 인간으로서 가지는 불공정한 생각과 삐딱한 심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네덜란드의 수많은 미술관 박물관을 돌아다니며 느낀 점이 그렇다. 어디든 경사로가 있고 리프트가 있다. 대중교통체계에도 물론이다. 버스에도 휠체어나 유모차가 탑승하기 좋도록 높낮이가 다른 출입구를 마련해놓았다.

어느 누가 관람을 하더라도 독특한 시선이나 주의를 주지 않는다. 그저 배려 차원에서 한 번 더 친절한 안내를 해준다. 오디오 가이드나 점자 안내판이 모든 미술관에 마련되어 있지 않지만 그들이 관람한다고 하면 언제든지 정책적인 배려를 해준다.


판압베 미술관은 그래서 내게 아름다운 미술관이다.





사랑하는 네 딸들아

너희들과 이 곳에 와서 보고 느낀 것을 엄마에게 이야기해주었을 때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 이 미술관에는 독특한 것이 있지? 다른 미술관과 다른 점을 한 번 말해보렴'

너희들은 너희가 느낀 그대로를 이야기해주었단다.

미술관이 멋져요라고 말하기를 시작해서

로봇이 있는 것, 자동차가 거꾸로 매달려 있는 것, 웰컴 박스를 받은 것

역시 언니들은 장애인들을 위한 특별한 장치들이 있는 것을 지목하여 대답을 했다.


사회적으로 배려가 필요한 사람들.

사회적 약자라고 표현하는 것에도 엄마는 조심스럽다. 누가 강자이고 누가 약자이던가 싶어서이다.

통칭 사회적 약자라고 부르는 그들을 배려하는 것은 곧 나 자신을 위한 배려이다.

그들과 함께 한 걸음을 걷는 것이

내가 수백 보 먼저 걷는 것보다 더 빠르게 갈 수 있단다.

엄마는 너희들이 천천히 함께 걷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란다.

엄마도 그렇게 살고자 하였고 아직도 그 길이 어렵다는 것을 알기에 너희에게 슬그머니 이야기한다.

실제로 엄마가 직접적으로 장애인들에게 빚진 적은 없지만 마음 한편에 마음의 빚이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단다.

그들과 함께 부대끼며 인간답게 살아가는 착한 세상을 일구어가는데 너희들도 함께 손잡고 가자꾸나.

너희는 너희 방식대로 너희만의 길로 대신 한 마음으로..

그래 줄 수 있겠지?


미술관 입구(옛 건물- 전시관은 새 건물이다)와 미술관 내 도서관

크리스마스 다음날에 갔었기에 온 동네가 아름다웠다

아인트호벤 기차역에 새겨진 문구


상기해주는 것으로써의 관습은 인생과 예술을 즐기는데 가장 큰 장애물이다

피이트 몬드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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