튤립, 수국이 탐스럽게 피어있는 동화같이 어여쁜 네덜란드 시골집 사이사이로 지독한 냄새가 온 동네를 휘젓고 다녔다. 어쩐지 익숙한 냄새 같기도 하지만 당최 ‘무슨 냄새이길래 저리 독할꼬’라고 혼잣말을 하며 설마 우리 집에서 흘러나온 냄새는 아니겠지 하며 조심스럽게 딸아이 손을 잡고 집에 왔다. 하굣길에 학교 정문 앞에 옹기종기 모인 학부모 중 행여 누구라도 이 지독한 냄새에 대해 한마디라도 하면 어쩌나 하며 잠시나마 마음 졸이기도 했다. 다행히 누구도 얼굴 찡그리거나 이게 무슨 냄새지? 하며 묻는 학부모가 아무도 없었다. 풀 썩는 냄새도 아니고 저 멀리 들판에 쌓인 건초더미에서 모락모락 풍겨 나오는 잘 익은 퇴비 냄새도 아니고 맛없는 음식이 상해 가는 케케한 냄새도 아닌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냄새. 하여간 자극적이나 불쾌하다고 말하기 애매한 독하고 진한 냄새.
부엌에 들어가서야 그 냄새의 정체를 알았다.
반찬거리로 계란 장조림을 만들다가 아이들 하교 시간이 되어서 잠시 가스불을 약불로 줄여놓고 집 앞을 나서자 마자 잠시 그 일을 잊었던 것이다. 7-8분 만에 간장이 졸여지며 활화산처럼 뿜어내는 조림간장의 향은 온 동네를 두엄 창고로 착각하게 만들었으니 그 향은 실로 독가스와 같은 위력이었다.
외국인들이 견디기 힘들어한다는 김치 냄새, 라면 냄새, 마늘냄새. 이는 나도 어느 정도 심하다고 인정하는 음식 냄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날 오후에 맡은 간장 냄새는 간장에 대해 새롭게 코가 뚫려버린 충격적인 냄새였다. 학교에서 집까지 200m 거리의 온 동네를 휘감았던 독하디 독한 냄새였으니 말이다.
첫째 아이 임신 6개월쯤 서울 사당동 어느 돼지갈빗집에서 시댁 어른이신 큰 어머님 생신 모임을 갖게 되었다. 입덧 증세는 거의 사라진 시기였기에 냄새에 그다지 민감하지 않아 이런저런 음식을 잘 먹던 시절이다. 게다가 뱃속 아기 핑계로 2인분씩 거뜬하게 먹는 일이 허다했다. 시어른 생신 행사 덕에 모처럼 양념돼지갈비를 신나게 원 없이 먹었다. 문제는 그다음 날부터 일어났다. 간장 냄새가 너무 싫은 것이다. 어제 그렇게 맛있게 먹었던 간장 양념돼지갈비가 생각만 해도 싫어서 헛구역질까지 나왔다. 첫째 딸을 출산할 때까지 간장과 간장 양념 요리는 일체 먹지 못했다. 신기하게도 첫째 딸을 낳고 나서는 이전처럼 모든 양념의 요리를 먹었다. 그런데 간장 양념이 들어간 요리를 보면 무의식적으로 움찔했다. 고추장 요리와 간장 요리 중 고르라고 하면 무조건 고추장 요리를 선택하는 소위 ‘입덧 후유증’이 생긴 것이다.
아이들은 너무너무 이쁘게 사랑스럽게 자라 갔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요리들을 해주는 기쁨이 컸다. 어린아이들이라 자극적인 것을 잘 못 먹어서 간장 양념을 한 요리가 대부분이었다.
불고기, 돼지 등갈비 조림, 메추리알 조림, 꿀 간장비빔국수, 버터 간장계란밥, 궁중떡볶이, 야채전과 간장, 두부 간장조림, 유자 간장 드레싱을 얹은 샐러드, 메밀국수, 간장 찜닭, 잡채, 장아찌, 삼겹살 간장구이, 심지어 간장게장까지. 우리 아이들은 너무나도 잘 먹었다.
그런데 정작 나는 잘 안 먹었다. 요리하면서 이미 간장 냄새에 질려버렸기 때문이다.
성인이 될 때까지 절대 간장을 싫어하지 않았다. 그때 그 입덧 아닌 입덧 같은 증상 때문에 간장은 무의식적으로 꺼려지는 양념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도 끊임없이 간장 요리를 했다. 신기하게도 별로 좋아하지 않은 간장 향이지만 아이들이 즐겁게 맛있게 냠냠 먹어주면 그 간장 향을 맡지 못했다. 후각은 쉽게 지치는 감각이라 그럴 수 있다고 과학적인 납득은 할 수 있으나 내가 그리 좋아하지 않은 간장을 사용하며 오랜 시간 요리를 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감정적인 동의는 잘 이루어지지 않다는 것이 그저 신기했을 뿐이다.
그래서 셋째 딸 데리고 하굣길에 맡았던 그 강렬한 간장 냄새는 강렬한 기억으로 자리 잡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살던 네덜란드 시골은 가정집을 제외하고 대부분 목장이 마을을 차지한다. 곳곳에 겨울에 소가 먹을 건초더미가 쌓여있고 퇴비용 거름이 쌓여있다. 하천이 곳곳에 있기에 때로는 하수구에서 나는 냄새 같은 개천 냄새가 난다.
그 어느 날도 어디선가 구수한 듯 시금털털한 냄새가 섞인 진하면서도 역한 냄새가 온 동네에 퍼져 있을 때 본능적으로 어느 집에서 된장찌개 끓이나 싶었다. 우리 집이 아니면 누가 된장찌개를 끓일 일이 없는데 말이다.
냄새는 외양간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냄새가 어쩌면 그렇게 된장냄새랑 비슷한지.
아마도 그때 그 독한 간장 향은 이러한 된장냄새 비슷한 퇴비 냄새에 익숙한 네덜란드 사람이라 그다지 역하게 느끼지 않았던 것 같다.
조금만 비숫한 향만 맡으면 한국을 그리워하고 추억해내는 향수가 고작 된장 향이었고, 공감할 수 있는 향이 간장 향이었다니.
유럽 음식에서조차 간장 양념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우리나라 발효간장의 깊은 맛이라기보다 맛간장의 얄팍한 맛이다. 초밥요리를 즐기는 사람들이 먹는 그 정도의 간장 맛.
오리엔탈 드레싱에 들어가는 염도의 간장 맛.
이 수많은 간장 요리 앞에서조차 난 항상 긴장을 한다. 간장에 얽힌 그다지 좋지 않은 기억 때문에.
난 간장 요리 별로인데...
그러나 어느새 난 간장을 사용한 음식을 만든다. 나 빼고 네 명의 딸 모두가 좋아하는 간장 요리, 심지어 남편까지 좋아하는 간장 요리.
독한 냄새. 특이한 냄새는 강렬한 방어기제를 형성한다.
좋아하는 치즈이지만 그 특유의 꼬리꼬리 한 향 때문에 오래 숙성된 치즈는 선뜻 먹지 못하게 만드는 장벽이 바로 치즈향이다.
쌀국수에서 고수를 빼고 먹는 사람들도 국물 맛을 망쳐버리는 듯한 고수의 향 때문에 꺼린다.
중동 노선의 비행기를 타면 특이한 냄새가 난다. 심지어 기내 서비스로 제공된 콜라에서조차 특유한 냄새가 난다. 그래서 그 콜라를 잘 못 마셨다.
맛은 천국인데 냄새는 지옥이라는 두리안이라는 과일도 익숙하게 먹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그만큼 독한 향은 강렬한 기억을 남기고 내 행동에 제약을 일으킨다.
그런데 맛의 기적이다.
맛을 기억하는 즐거운 경험이 냄새를 눌러버린다. 특히나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먹던 음식에 추억이 담기면 그 음식은 무조건 독한 향에 상관없이 세상 맛난 음식으로 격상된다.
내겐 너무 싫은 간장 향이지만 우리 아이들이 우리 가족이 즐겨 먹은 꿀 간장비빔국수는 언제나 흥겨운 잔치음식이다.
지금도 길을 가다가 어느 집에서 풍겨오는 간장 향을 맡게 되면 그때 그 독한 졸인 간장 냄새의 기억이 떠오르지만 이내 그 간장으로 요리하는 모든 음식을 맛있다며 허겁지겁 먹는 우리 아이들이 마구마구 생각난다. 다시 그 요리를 기뻐하며 얼마든지 해줄 수 있다. 난 비록 간장이 싫을지라도.
간장이 싫었던 나는 남편과 네 딸과 여러 가지 사정으로 잠시 떨어져서 홀로 외로이 간장 향을 맡으며 즐거운 가족과의 식사를 그리워하는 일시적 기러기 엄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