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세계문화유산 바덴해의 테설 섬은 우리나라와 인연이 깊은 곳이었음
네덜란드인이 사랑하는 휴양지. 드넓고 하얀 백사장과 태곳적 자연의 모습을 닮은 천연 갯벌이 숨 쉬는 곳. 바덴해의 테설(Texel) 섬. 비록 거친 파도와 차가운 바닷바람으로 유명한 북해이지만 그 아름다움은 널리 알려졌나 보다. 영화 ' 노킹온 헤븐스 도어'의 두 주인공 마틴과 루디가 생의 처음으로 보고 싶어 한 바다로 삼을 만큼.
뇌종양과 골수암으로 죽음을 향하여 달려가던 마틴과 루디가 저 남성미가 물씬 넘쳐나는 험한 바다를 바라보며 어떤 마음을 품었을까? 그들이 외친 ' 두려울 것 하나도 없어'라는 탄성에 가까운 자기고백을 바다가 품어 주었을까? 아니면 파도가 삼켰을까? 진정 그들은 죽어가는 시간 속에서 실상은 살아나는 생의 첫 경험을 한 의미 있는 외침이었을까?
그들은 죽음을 앞둔 제한적인 시간에 마지막 의미 있는 대부분의 시간을 바다 앞에서 흘려보내며 인생의 마무리를 아름답게 몸짓한다. 그 바다에 어울리는 선율은 밥 딜런의 'knockin on heaven's door'라는 OST로 죽음의 미학을 만들어낸다.
죽음만큼 두려운 것이 있을까? 죽음 앞에서 두려워할 그 무엇이 또 있을까? 이 천연 갯벌 습지 해안은 모든 것을 끌어안는다. 수많은 생명의 나고 죽음이 바다에서 이루어진다. 그래서 숭고하리만치 아름답다. 진정 두려운 것은 없었다.
네덜란드에서 가장 큰 섬. 청정지역, 천연 갯벌, 천혜의 생태계 보존지. 이 섬을 표현하는 말들이다. 네덜란드 사람들이 최고로 생각하는 자국 휴양지 중 하나이다. 이 곳은 북해 남동부와 연안에 위치한 국제 갯벌습지 생태계 보호구역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09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곳이다. 바덴해(海)는 덴마크 서해안의 호만에서 독일 북부 해안을 거쳐 네덜란드 북방 5개 섬의 마지막인 테설(Texel) 섬에 이르는 거대한 갯벌습지 지역으로 유럽 최대 갯벌이자 유일한 천연 갯벌지역이다.
네덜란드, 독일, 덴마크 이 세 나라가 공동으로 해안지역을 관리하고 습지 연구를 위해 체계적으로 협력하여 모범적인 과학적 연구의 모델이 되고 있다. 이 곳을 거쳐가는 철새만도 1200만 종류에 이르고, 2300종의 동식물종이 서식하고 있다. 해안 전체가 퇴적 지형으로 모래 장벽 해안이 대규모로 발달이 되어 멀리서 보면 하얀 백사장이 펼쳐지는 환상적인 모습을 연출한다.
이 곳에서 할 수 있는 활동들이 너무 매력적이다. 조개잡이 같은 갯벌체험을 하고 배를 타고 새우잡이에 참여하여 그 자리에서 그릴새우의 맛을 볼 수 있다. 해변가에서 영화처럼 승마놀이를 할 수 있고, 때만 잘 맞추면 각종 철새들의 화려한 군무를 볼 수 있다. 모래썰매를 타기도 하고 자전거 하이킹도 할 수 있다. 자연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연을 상대로 마음껏 놀 수 있다. 바덴해 내의 섬 투어를 할 수 있고, 테설 섬 내의 모래사장을 전용차를 타고 도는 유사 사막투어까지 가능한 곳이 바덴해이다.
Den Helder에서 배를 타고 십 여분 가게 되면 테설(Texel) 섬에 도착한다. 그곳의 랜드마크 중의 하나인 에코마레(Ecomare)는 거대한 국립공원 속의 아쿠아리움이라고 이해하면 쉽다. 에코마레에서 가장 인기 있는 동물은 이 섬에만 서식하는 참깨 점박이 바다표범과 회색 바다표범과 쥐돌고래이다.
.
국립공원이라는 팻말도 없고 누군가를 의식하는듯한 꾸밈도 없고 그저 여느 시골길에 무심하게 자라난 무성한 풀밭들과 눈부신 뭉게구름이 더없이 마음속에 파고드는 살가움 가득한 풍경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두덕 거리는 발걸음조차 흥겨운 국립공원 산책길.
테설 섬의 해안도로를 따라가다가 북부쯤에 위치한 De Cocksdorp이라는 곳에 이르면 테설 섬을 대표하는 빨간 등대를 맨 처음 마주한다. 그 빨간 등대를 보니 여수에 있다는 하멜등대가 절로 생각난다. 혹시나 하멜등대는 이 테설의 등대를 보고 만든 것은 아닌가싶다.
하멜표류기.
1653년 네덜란드인 하멜과 일행 64명은 스베르베르호를 타고 바로 북해와 연결되는 이 테설 섬에서 출항하게 된다. 오랫동안 네덜란드의 거점이었던 인도네시아를 거쳐 일본 막부의 서양과의 무역항인 나가사키로 가는 도중 제주도 근처에서 태풍을 만나 제주에 표착하였다. 그 상선에는 64명이 탑승하였으나, 36명만 태풍에서 생존하였고, 그 생존자들은 효종의 명으로 잠시 서울로, 그 후 강진으로 압송되어 7년의 세월을 보낸다. 이후 가뭄으로 인한 식량난 때문에 22명으로 생존자가 줄어들게 되고 여수와 순천 남원에 각각 분산 수용이 되었다. 여수에 오게 된 12명 중 하멜이 있었고, 거기서 그는 여수 전라좌수영성 문지기 생활을 하게 된다. 1664년에 전라좌수사로 부임한 이도빈은 성품이 인자하여 하멜 일행을 따뜻하게 보살펴 주었고 그들은 우정까지 쌓게 된다. 그 덕분에 하멜 일행은 양모 장사를 하여 탈출할 배도 살 돈도 벌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1666년에 부임한 수사 정영은 인자하지 못해서 하멜 일행은 어려움을 겪게 되고 결국 탈출을 시도한다. 이윽고 1666년에 탈출에 성공하여 일본을 거쳐 본국 네덜란드로 간다.
당시 조선에 머물렀던 13년 28일의 기록을 우리는 하멜표류기라고 부른다. 이 표류기 안에는 한국의 종교, 가옥과 가구, 결혼, 교육, 교역, 장례, 언어와 문자 , 문화 등이 기록되어 있어 중요한 기록물로 여겨진다. 하멜로 인해 낯선 한국이 유럽에 알려지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과연 하멜은 과연 한국을 알리고 싶어서 표류기를 썼을까?
당시 17세기는 네덜란드의 황금기로 동인도 연합 회사를 주축으로 활발한 무역활동을 하였다. 하멜은 그 동인도 연합 회사 측에 자신이 억류 또는 표류된 기간 동안의 임금을 받기 위해 보고서를 작성한 것뿐이다. 역시 네덜란드인답다. 계산에 정확하고 돈에는 빈틈이 없는 상인의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하멜 입장에서는 낯선 땅에서 억류된 자로 지내며 고되고 힘든 유배생활을 했을 것이기 때문에 기회만 오면 탈출을 시도하기 위해 평소 잘 관찰하고 기억하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던 중 친절한 이도빈 수사와의 인연이 뜻하지 않은 기회를 가져다주었고 여차 저차 하여 마침내 귀국길에 오른 자였을 뿐이다. 나중에 그의 표류 생활을 담은 보고서가 이국의 문물을 알리는 책으로 독일어 프랑스어 영어로 번역되어 유럽에 한국이 알려지게 되었다는 것은 결과적인 역사적 가치로 볼 수 있다.
그가 위대해서도 아니고 미래를 바라보는 뛰어난 식견을 가진 것도 아니고 한국에 대한 무한애정을 가지고 소중하게 하루하루를 기록한 역사가도 아니고 그저 살아남고자 하고 고국을 향한 마음으로 험난한 시간을 잘 버티고 견뎌왔다는 사실만큼은 대단하다고 볼 수 있겠다.
때로는 역사가 그렇게 보인다. 무료한듯한 일상의 연속이 나도 모르는 커다란 결과물로 퇴적되어 있다. 어쩌면 소가 뒷걸음치다 쥐 잡은 격으로 살려고 아등바등 거리다가 살아남고 보니 위인이 되었고 역사에 길이 남는 운 좋은 자가 되는 것이 엉뚱해 보이는 진실일지도 모르다.
우리 인생에는 피하고 싶고 벗어나고 싶고 숨 쉬는 것조차 버거울 때가 많다. 한없는 자기연민과 피해의식 속에
비련의 여주인공이 된 것 같은 착각 아닌 착각 같은 현실에 내몰릴 때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야 한다면 살아야 한다. 제자리를 지켜야 다음 자리로 나갈 수 있는 디딤목을 만든다. 하멜을 만일 위대하게 생각한다면 이 부분일 것이다. 하멜 자신은 의도하거나 예상치 못했던 역사적 인물로의 존재감까지 부여받았다. 이렇게 하멜등대까지 세워서 기념하기까지.
더 흥미로운 숨겨진 이야기가 있다. 2015년 6월에는 하멜이 태어난 호린쿰(Gorinchem)에 하멜기념관이 건립되었다. 호린쿰에 소재한 3개 초등학교에 특별수업으로 한국어를 배우는 교육과정을 실시하고 있다. 한국과 네덜란드 양국이 이를 기념하고 축하하였다. 하멜은 우리나라와 네덜란드의 친선대사 역할을 사후에 하게 된 것이다. 자기 자신도 자각하지 못한 채 남겨진 인연의 끈이 후손들의 필요에 의해 양국 간의 친선의 상징으로 자리매김되고 있는 것이다.
역사가 항상 무겁고 진지하지 않을 때가 종종 존재한다는 사실에 위로를 받는다. 우연하게 또는 누구도 예기치 못한 엉뚱한 방향으로도 흘러가기도 한다. 지금 내가 돌을 쌓는 그 작은 행동하나가 수백수십 년 지나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 아무도 모른다. 얼키설키 엮어져 있는 우연과 필연의 꼬임 속에 이왕이면 높은 뜻을 품고 진정한 가치를 가지고 움직인다면 얼마나 가슴 벅찬 미래가 다가와 새 역사를 만들어낼지...
네덜란드인이 사랑할 만큼 이 바다는 아름다웠다. 하지만 제주도처럼 아름답지는 않았다. 그러나 자연 그대로를 보존하는 아름다움을 본 것이 보석을 발견한듯한 가치이다. 갯벌과 모래언덕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본 것이다. 철새와 텃새와 회색 물개와 쥐 돌고래를 만날 수 있는 곳. 함께 호흡할 수 있기에 아름다웠다.
오랜 세월 퇴적된 모래 언덕이 눈부신 백사장으로 이름을 날리기까지 수많은 죽음을 수용하고 삶을 살아내며 만든 위대한 걸작으로 지어져 가는 곳. 그 아름다움이 묻어 세월처럼 흘러가는 곳.
그 섬에 언제든지 가고 싶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