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가 마음껏 행복한 CODA 도서관의 힘을 믿으세요
네덜란드의 도서관은 정말 훌륭하다.
명성 있는 건축가들이 설계하는 것부터 심상치 않지만, 그 안에 꾸며진 인테리어는 더치 디자인(Dutch Design)의 참모습을 자연스럽게 보여주기도 한다. 빽빽하게 책이 들어차 있는 창고 서재 같은 느낌이 아니라 풍경 속에 책이 들어가 있는 창의력 공간으로 꾸며져 있다. 그 안에 문화가 있고, 쉼이 있고, 노래가 있고, 그림이 있고, 먹거리가 들어가 있다.
지식인들의 점유 공간이 아니라 너와 나의 이웃들이 함께 어울림을 만들어 가는 살아있는 문화공간이다. 그러기에 빈 공간이 많아 보인다. 그것이 필요한 것이다. 가득 차 있는 공간에 비집고 들어갈 엄두를 내지 못하는 이들을 위한 최초의 배려가 숨겨져 있는 디자인 철학이다. 텅 빈 공간을 설계하는 그들은 그 안에 무궁무진한 공간을 재창조할 여지를 만들어 놓는다.
그래서일까?
아펠도른(Apeldoorn)의 CODA 도서관에 드나드는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삶조차 멋스럽다.
CODA 도서관은 하나의 건물이 아니다. 한 지붕 세 가족처럼 한 지붕 아래 박물관 ·도서관· 아카이브가 나란히 연결되어 있다.
CODA를 보고 듣고 경험하고 발견하세요
거대하고 다채로운 수집물을 보유한 문화 백화점을 즐기십시오
- CODA 디렉터 Carin E.M. Reinders -
CODA는 메가 문화센터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미술관에서 전시하는 전시회도 늘 흥미롭다. 미술관과 도서관을 연결하는 실외 공간에서 실외 전시회나 축제가 벌어진다. 재즈 소리가 넘실대고 보기에도 좋고 먹기에도 좋은 간식들을 팔며, 관람을 위한 미니 벤치도 마련되어 있다. 도서관에서는 미술관(박물관)의 연장처럼 도서관 한 코너에는 그 달의 주제에 맞는 전시물이 전시가 된다. 왔다 갔다 하면서 이것도 보고 저것도 느끼고 탐색하고 즐기는 일들이 흥성스럽게 이루어지고 있다.
누구에게나 개방되어 있으며 누구와도 자유로이 토론할 수 있는 분위기가 이미 조성되어 있다. 낯선 이방인들은 자신이 이방인이라는 생각만 버리면 스스럼없이 생각과 지식과 경험을 주고받을 수 있다. 언제든지 준비되어 있는 열린 공간들이다. 그것이 CODA의 운영철학이자 방침이기 때문이다.
높은 수준의 문화를 누린다는 것은 수동적인 감상을 의미하지 않는다. 보고 듣고 경험하고 발견하는 것을 근간으로 하여 여기에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제안하는 것까지 구조적으로 이르게 한다. 그래서 바로 당신(YOU)과 함께 이러한 것들을 일구어나간다고 자신 있게 외치는 복합 문화공간이다.
CODA 문화센터의 한 주축인 도서관은 그래서 더욱 특별하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것은 각종 포스터와 광고문들, 그리고 자율 책 반납대와 인포 데스크.
전체적으로 하얀 벽돌과 시멘트로 지어져 있기에 차분하고 깔끔한 인상을 받지만, 이내 아래층으로 내려가면 반전으로 인한 놀라움에 숨을 헐떡이기 시작한다.
아이들이 즐겁게 노는 실내놀이터도 이만큼 훌륭하지 못하리라
거대한 미끄럼틀을 타려고 오르내리는 아이들.
양과 돼지 등에 올라타 즐겁게 노는 어린이들.
게임에 열중하느라 조용한 오빠와 언니들.
공주 옷을 입어보기도 하고 화려한 색상의 가발을 써보기도 하고
미니 소극장에서 직접 인형극을 공연하는 아이들.
미니어처로 만들어진 나무 오두막 위에 올라가 눕기도 하고 앉아서 책을 보기도 하는 아이들.
배로 기어 다니면서 겨우 고개를 드는 아가들은 언니가 읽어주는 동화를 듣기고 하고 딸랑이를 가지고 놀기도 한다.
엄마들은 아이가 자유로이 노는 모습을 간간히 지켜보며 책을 읽기도 하고 잡지나 신문을 보기도 한다.
동네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어여쁘고 편안한 의자에 앉아 느긋하게 신문을 보시거나 소설책을 보신다.
아이들의 소음 소리는 그다지 크지 않다. 시장에서 떠들썩하는 소리보다 정겨운 소음이다.
누구 하나 감시하거나 주의를 주지 않아도 풀어놓은 아이들은 스스로를 규제하며 적절히 떠들고 적절히 움직인다. 마음껏 놀 수 있는 자유를 즐길 줄 알기 때문이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를 누리는 것을 배워오고 체득된 그들의 생활방식이기 때문이다.
윗 층으로 올라가 본다.
다양한 모양과 색상의 의자들. 이 의자에 앉아서는 미술책을 읽고 저 의자에 앉아서는 소설책을 읽는 것을 상상해보다가 이내 행복해졌다. 이 동네의 주민이라면 날마다 의자를 바꾸어 앉아가며 다른 책을 읽는 재미도 하나의 큰 흥밋거리가 될 듯 싶다.
입시 준비나 각종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들이 가득한 도서관의 모습이 익숙한 나에게 이런 자유분방해 보이는 도서관은 혁명처럼 다가왔다. 할아버지가 책을 읽는 모습은 영화의 한 장면 같고, 할머니가 헤드셑을 끼고 음악 감상을 하는 모습은 귀족부인이 누리는 호사처럼 보였으니 말이다. 심지어 애엄마들도 그림도록을 넘겨보면서 아이와 함께 도서관에서 느긋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시골쥐가 서울쥐 집에 놀러 가서 받은 인상보다 격한 문화충격이었으니까.
저들의 여유로움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
굳이 도서관에 가보지 않더라도 여기저기 동네 아줌마 이웃 할아버지들의 모습에서도 여유로운 모습은 자주 관찰된다.
집 앞 벤치에 나와 책을 보는 아줌마들. 동네 이웃들.
수영장에 가도 썬베드에 반쯤 누워 책을 보는 사람들.
바닷가에서 물놀이를 하는 중에도 잠시 동안 책을 보는 바캉스족들.
책을 보는 그들에게 단지 여유로움만 훔쳐보았다면 그들의 삶을 제대로 이해한 것이 아니다.
유럽여행을 간 많은 사람들이 여행지에서 책을 읽는 한가로운 모습을 사진기에 담고 그들의 여유로움을 칭송하고 부러워하는 것을 종종 접하게 된다.
나는 좀 생각이 다르다.
그들이 현재 누리는 여유와 품위가 어찌 절로 이루어졌을까?
천천히 사는 법을 어려서부터 보고 배우고 그 삶을 영위해 나가는 것을 우리는 하루아침에 따라잡을 수 없다. 겉모습은 흉내 낼 수 있어도 마음 깊숙한 곳에 잔잔히 흐르는 돌아볼 줄 아는 여유로움과 넉넉함은 진지한 삶의 결단이 없이는 모방이 불가능한 삶의 양식인 것이다.
거대담론으로 유럽의 역사를 거론하기까지 나가지 않더라도 이들의 자유와 평등과 박애를 향한 몸부림의 역사는 피비린내 가득한 치열한 역사이다. 그 오랜 세월 모멸과 자랑스러움이 교차된 시간이 켜켜이 쌓여 오늘을 이루어 내고 힘겹게 지켜가는 여유로움인 것이다. 만들어 낸 것에 만족하지 않고 지켜가는 그들의 역사인 것이다. 누군가가 성급하게 서두르면 옆에서 제재를 가한다. 혼자만의 앞서감이나 일탈을 주의 깊게 바라본다는 의미다. 함께 이루어 낸 '다 같이 한걸음'의 가치를 알기에 지켜가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한 사람의 마음이 진정으로 움직여지도록 기다려주고 설득하고 설명하고.....
이러한 시간을 헛되다 여기지 아니하고 협력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대화와 설득과 토론이 사회적으로 통용되어 있다.
이들에게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것은 그래서 지극히 정상적인 절차가 되는 것이고 그 과정이 있어야 비로소 진정한 협력이 된다는 것을 몸으로 익혀온 사람들이다.
졸속이라는 것은 무책임하다는 것을 온몸으로 겪은 이들이다.
coda의 철학은 이러한 것을 모두 다 담아냈다.
그것의 결정체가 도서관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2,3세 아가들을 위한 북스타트 프로그램 운영
어린이들(KIDS)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
청소년(Junior)들을 위한 별도의 프로그램
어른들과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위한 문화적 연계 프로그램
이방인들의 네덜란드어 학습을 위한 언어 프로그램
각 프로그램 속에 토론은 기본이고, 각종 문화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의견 개진이나 의사소통 참여는 언제든지 열려있다. 도서관의 운영방침과 이용방법에서 다른 이들을 배려하는 것은 실제 이용하면서 몸소 배우게 된 산 지식인 것이다. 공공의 질서를 위해 최소한의 예절을 지켜가는 것이다.
무엇보다 공공복지의 실현이라는 점이 크나 큰 매력이다.
처음 지하의 어린이책 코너를 돌아보면서 이 곳은 도서관이 아니라 키즈카페가 아닌가 하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었다.
그러나 곧 여기는 도서관이라는 것에 대해 흐뭇하였다.
아펠도른 시민이라면, 아니 단순하게 방문한 사람이라도 (대출을 제외한 모든 자료를 자유로이 열람할 수 있다) 마음 놓고 도서관의 모든 시설과 책과 자료를 향유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특장점인가?
한국에서 키즈카페를 이용해 보지 않았지만 - 물론 이 나라에도 있다- 엄마와 아기들이 동시에 만족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매력적인 장소라는 것은 안다.
하지만 청결과 위생, 이용료, 보유한 장난감이나 설비들의 수준에 따라 만족도가 달라질 것이다.
그런데 이 도서관은 공공복지가 실현되는 곳이다.
청결과 위생의 문제는 정기적으로 점검되고 관리가 되며, 도서관장의 역량에 따라 보유하는 책과 자료들이 구비될 것이다. 지역마다의 특색을 살린 특색사업이 이루어지고 시민들의 쉼터가 되고 사랑방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가는 도서관 문화가 자리 잡은 곳이 네덜란드이다.
공존공생이 자연스럽게 실현되고 있는 곳이 이 도서관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무슨 경쟁이 있던가?
물론 경쟁이 있다. 해마다 올해의 도서관을 정하는 행사가 있어 도서관마다 개성을 강조하고 특성 사업을 벌이기도 한다. 아름다운 경쟁이다. 누구를 떨구어 내는 경쟁이 아니다.
공존을 하기 위해 공생을 할 수 있는 시작점은 이들의 삶 전반에 녹아져 내린 여유로움이다.
도서관에 흔히 말하는 공부만 하러 오지 않는다.
그들의 삶을 정신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 책을 보러 온다. 그래서 늘 문화적인 요소가 곁들여져 있는 것이
네덜란드 도서관의 가장 큰 특징이다.
책만 보는 바보가 없다. 책도 보는 바보는 있을지언정.
도서관의 경계를 허물어가면서까지 그들이 도서관에 투자하고 일구어 내는 다방면의 노력은 한 명의 천재가 일구어가는 애씀이 아니라 마을 시민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 도서관을 운영 관리하는 자나 도서관을 이용하는 자나 모두가 한마음으로 책과 도서관을 아끼고 사랑하며 채색해가는 과정일 뿐이다.
네덜란드인들의 삶 속에서 우러나오는 배려와 관용과 여유의 근원은 이들의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 유럽에서 가장 관용적인 나라가 네덜란드인 것은 수많은 역사 속의 인물들이 그 증언자들이다. 그들의 삶과 철학을 담고 있는 곳 중의 하나가 바로 도서관이다.
네덜란드 도서관 여행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사랑하는 네 딸들아
너희들이 소박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아이들로 자라주어 고맙다.
행복을 비교하며 가늠해보는 것이 좋지 않다마는, 내가 어느 곳에 처해 있는지를 알 수 있는 지표가 되기에 한 번쯤은 비교 행복론을 끄집어본다.
흥미롭고 화려한 볼거리와 놀거리 가득한 곳에 데려가 주는 것도 아니고
맛집이라고 소문난 곳에 가서 맛보게 해주지도 못하고
박물관 카드로 갈 수 있는 곳과 책을 실컷 볼 수 있는 도서관과 서점만 데리고 다니는데도
쫄래쫄래 따라다니며 고맙습니다 라고 말하는 너희들이 참 고맙다.
어쩌다 아이스크림 하나 사준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하여 인사하는 너희들에게
미안함을 감추고 기특하다는 말로 칭찬해주는 엄마를 따라주니 내심 고맙고 미안하구나.
그 가운데 너희들이 배운 것이 있다면 자그마한 것에서 감사함을 느낀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감사함은 마음의 여유가 없으면 잘 표현되지 않더라. 너희들이 이 곳에서 네덜란드 친구들과 뛰어놀며 서로를 배려하고 다름을 존중해주는 문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지내왔기에 스스럼없이 너희들도 다른 이들들 배려할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하리라고 믿고 바란다. 도서관에 드나드는 친구들과 어른들의 태도에서 질서를 배우고 도서관에서 진행되는 여러 행사들을 엿보면서 다양함을 몸소 경험하는 것들이 자양분이 될 것이다. 이 경험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경험이라 생각해.
그 경험에서만큼은 너희들이 부자인 것 같다. 가난한 경험이 아니라 경험이 가난하지 않다는 의미란다. 너희들보다 수많은 가난한 경험자들을 위해 너희들의 풍부한 경험을 나누고 전하는 진정한 어른들로 성장할 것을 기대한다. 마음껏 행복해보는 어린 시절의 경험이 앞으로도 너희들의 인생의 밑거름이 될 것도 물론 기대하고.
오늘도 같이 가서 즐겁게 보낸 이 도서관이 마음에 들었는지
다음에 또 가자며
마치 놀이동산 갔다 온 마냥 떠들어내는 너희들의 순진무구함에 오늘도 엄마는 미소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