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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네딸랜드 Mar 31. 2016

괴테는 이토록 아름다운 도서관의 관장이었다

책을 사랑한 안나 아말리아 공작부인과 괴테와의 문학적 교류가 있던 곳

남몰래 흠모하는 사람을 만나는듯한 기대감에 부풀어 향했던 곳이 있었다. 독일 고전주의가 꽃피운 유서 깊은 도시 바이마르로 향하는 발걸음은 그렇게 조심스러웠다. 어릴 적부터 너무 익숙하게 들어온 괴테, 그의 작품들, 읽지 않은 괴테의 책도 읽은듯한 착각을 할 정도로 괴테의 이름은 숱하게 많이 들어왔다. 괴테와 실러의 도시라는 것을 손쉽게 알 수 있도록 고속도로부터 튀링겐 주 언저리에 들어서면 그 둘이 나란히 서 있는 사진이 넘실댄다. 여기가 괴테와 실러의 도시 바이마르입니다. '환영합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어디 괴테와 실러뿐이랴. 가는 발걸음 발걸음마다 역사 속의 인물들이 말을 거는 것 같다. 이 골목에서는 마틴 루터가 내려다보고 있다. 예전에 사역했던 건물이 지금은 호텔로 바뀌었고 그를 기념하는 기념비만 남아있다.  저 모퉁이에 가다 보면 요한 세바스찬 바흐가 악보를 그리고 있다.  저쯤에서는 괴테와 쉴러가 나란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고 다시 돌아보면 프란츠 리스트가 선율 고운 피아노 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이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문학의 향기와 예술의 정취가 온 마을 감싸는 그곳은 지나치게 평온해 보이고 관광객을 실은 마차를 끄는 말들의 말굽 소리만이 살아 움직이는 소리였다.


동네 할아버지 할머니와 단체 관광을 온 수많은 사람들도 호기심과 자랑스러움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듯해 보인다. 가이드분들의 우렁찬 목소리에서 이 작은 도시에 대한 자부심이 흘러넘치고 듣는 이들 역시 한마음으로 과거의 영화를 추억하며 지금의 축복을 누리는 자의 여유를 보인다. 다른 유명 관광지에 비해 한국인들이나 동양인들이 덜 한 까닭에 이 도시를 방문한 사람들은 독일인들이나 인근 유럽 사랍들이 대부분이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부모와 함께 나지막이 대화를 나누며 이 작은 도시의 위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이 곳에 너무나도 아름다운 도서관이 있다.

로코코 양식의 우아하고 아름다운 도서관, 화재로 인하여 귀중한 책과 보물이 소실되어 바이마르 시민들이 인간띠가 되어 귀중한 고서들을 살려내고자 했던 쓰라린 과거를 안고 있는 도서관.  루터 번역 성서 초판본(1534년), 파우스트 완판본(1854), 괴테와 니체, 리스트와 관련된 장서와 모차르트, 하이든의 악보, 셰익스피어 컬렉션 등 그 밖의 희귀본을 소장하고 있는 보석 같은 도서관, 바이마르 헌법으로 유명한 그곳은 한 마디로 독일 문화의 자존심을 곧추 세워주는 도시이기에 이 곳의 도서관은 역사이자 보물창고인 것이다.

무엇보다 독일 문학의 대가인 괴테가 이 도서관에서 38년간 관장으로 있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당연히 책을 좋아했을 것이고 책을 많이 읽었을 것이라는 것까지는 쉽게 유추할 수 있으나 이 도서관에서 38년 동안 책을 수집하고 도서관을 가꾸었다는 사실이 뜻밖의 소식처럼 반가웠다.


어떻게 괴테는 이토록 아름다운 도서관의 관장으로 있게 되었을까?



이 도서관의 정식 이름은 '안나 아말리아 대공비 도서관"이다. 프로이센 왕 프리드리히 2세의 조카 슈바이크 볼펜뷔텔 공주로 태어난 안나 아말리아는 1756년 17살 어린 나이에 병약한 작센 바이마르 아이제나흐 공작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2세와 결혼한다. 7년 전쟁 기간 중 공작은 사망한다. 이때 안나 아말리아는 뱃속의 아기를 포함하여 두 아이의 어머니였다.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되었으나 곧 후견인이 되고 섭정을 하면서 바이마르를 지혜롭게 다스리기 시작한다. 책의 도시 볼펜뷔텔 출신답게 바이마르에 있는 초록색 작은 성을 개조하여 도서관을 짓기로 결심한다. 또한 연극, 음악, 문학을 사랑하여 화가나 음악가 문학가들을 초대하여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들을 가짐으로  바이마르에 자유정신을 심어놓는다. 이들 중에 괴테는 두 아들의 개인교사로 있었고 이후 안나는 괴테에게 작위를 수여해 군주와 한 테이블에 앉을 수 있도록 파격적인 배려를 해준다. 서서히 바이마르는 독일 문화의 수도로 성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화려한 도시는 유수한 세월이 흐른 후에 동독 시절 암흑기를 보낸다.  2004년 신관 도서관이 완성되고 기존의 초록성에 있던 책을 옮기는 과정에서 노후된 전선에 불이 붙어 초록성에 화재가 일어난다. 이 화재로 인해 5만여 권의 책이 불 속으로 사라졌고 6만 2천여 권이 훼손됐다. 상당수의 희귀본이 화염 속에 잠들어 버리는 안타까운 일이 생긴다.  전 세계가 애도를 했고 복구를 위한 움직임에 동참했다. 2007년 10월 드디어 옛 모습으로 복원되어 아름다운 로코코 홀에 귀중한 장서들이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물론 신관 도서관도 함께 운영이 되고 있다.  






사랑하는 네 딸들아

이 곳에서 엄마는 여러 사람들을 만난 것 같구나. 도서관을 사랑한 바이마르 시민들도 만났고 루터도 만났다.  또한 안나 아말리아 공작부인도 새롭게 만났다.


도서관 전시실에서 우리는 도서관 화재 시의 상황과 이후 복구작업과 새로 신축된 도서관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과정들이 담긴 사진과 자료를 보며 흥분도 하고 공감도 하고 그랬었지. 너희들도 한마음으로 역사의 흐름을 느낀 것 같더라.

특히 도서관에 활활 불이 타올라 귀한 서적들이 새까많게 된 것을 보니 우리나라 서울에서 일어났던 남대문 화재사건이 떠올랐었지? 그때 비록 TV 화면에서 그 화재 장면을 보았지만 보는 내내 눈물이 나고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 불타오르는 것처럼 안타깝고 속상하고 눈물이 났었지. 그 사건과 이 도서관의 화재사건이 점철되어 같은 안타까움으로 다가옴이 전혀 이상한 일은 아닌 것 같다.



책들이 타버리고 있을 때 자신들의 추억과 기억이 불타오르는 아픔을 겪었을 것이다.  그 안타까움은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대를 불러일으키어 전 세계적인 복구의 손길들이 이루어졌다. 원래 모습으로 복원되어 지금의 어여쁜 자태로 새롭게 역사 속에 나타났다.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기쁨이었을까? 비록 타버린 지적재산에 대한 쓰라림은 가슴에 묻어둘지라도.  그렇기에 더 애틋하게 이 도서관을 아끼고 사랑할 것이다. 화마가 새겨놓은 오명의 역사가 두 번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다짐을 할 것이다. 그 마음이 더욱 귀하다. 책은 불타도 사람들의 마음은 불타 없어지지 않았던 것이지. 책을 사랑하지 않으면 결코 생기지 않았을 바이마르 시민들의 협조가 참 귀하구나.



엄마가 너희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또 있단다.


안나 아말리아 공작부인의 책에 대한 사랑이야.  

전쟁터만큼 치열하고 살벌한 정치판, 폭력과 살인과 권모와 술수가 넘치는 그곳에서 어떻게 그 어린 나이에 안나 아말리아 공작부인이 바이마르 공국을 다스리고 그곳을 학문과 문화의 중심지로 성장시켰는지 곰곰이 생각할수록 마음속에서 존경심이 생긴다. 참 지혜롭고 지적인 여인이란 생각이 든다. 어릴 때부터 보아 왔던 궁정의 수준 높은 문화와 볼펜뷔텔 도서관에 있는 장서에 대한 향수가 아마도 그렇게 이끌지 않았을까?  볼펜뷔펠에서 자라난 안나는 어린 시절부터 책을 많이 읽고 독서토론도 하고 작곡도 하고 연주하기를 즐겨하는 교양과 품위와 지식이 넘치는 귀족이었던 것이지. 영화에서 보던 우아한 귀족의 자녀의 품격을 다 갖추고 있었던 거야. 그게 밑바탕이 되어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되었어도 이에 개의치 않고 두 아들을 훌륭하게 키워냈다. 그리고 당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라는 책으로 유명세를 떨치던 괴테를 직접 초대하여 두 아들의 개인 고문으로 두기까지의 안목과 교육적인 조치가 놀랍다.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수많은 문인들과 예술가들을 초대하여 마련한 수요 문학의 밤 같은 행사를 통해 바이마르를 문학의 도시로 채색해간다.  그 덕에 괴테는 이 도서관에 관장까지 맡게 되었고 죽을 때까지 이 곳에서 관장으로 지내게 된다. 단지 문인으로만 알았던 괴테는 이 곳에 머무르면서 창작활동을 했을 뿐 아니라 도서관 장서를 잘 관리하고 귀중한 도서를 수집하고 관리하여 오늘날의 훌륭한 도서관으로 발전시켰단다. 그리고 엄청난 독서광이었기에 그가 읽은 책은 별도로 표시가 되어있다고 하는데 우리는 미처 그것까지 확인은 못 해본 것이 아쉽다. 아마도 그 안의 도서관의 책 대부분을 읽지 않았을까 싶다.


엄마가 너희들에게 괴테와 같은 개인교사를 곁에 두게 하지는 못하지만 그를 만날 수 있는 이 곳으로 데려온 이유를 먼 훗날 너희들이 깨달았으면 좋겠다.  


안나 아말리아 공작부인이 책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괴테와 안나 아말리아 공작부인의 문학적 교류가 없었다면

불타 버린 이 도서관에 대한 바이마르 시민의 애정이 없었다면

오늘날 가슴 아프지만 소중한 도서관의 역사로 아로새겨진 이 도서관을 우린 볼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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