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현필
2002년도에 대학에 입학한 저는 ‘한국사 연구회’라는 학회에 가입했습니다. 신입 회원인 제게 한 학번 선배가 선물한 책은 유시민의 <내 머리로 생각하는 역사 이야기>였고, 다른 사람이 써놓은 역사를 그대로 믿지 말고 내 머리로 생각해서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내용이 담긴 그 책의 첫 페이지에는 ‘앞으로 네가 배울 것들은 지금까지 알던 것들과는 많이 다를 거야’라는 선배의 글씨가 적혀있었습니다.
매주 주제를 정해 진행되는 세미나와 다양한 독서를 통해 지식을 쌓고 사고의 폭을 넓히는 일은 재미있었습니다. <내 무덤에 침을 뱉으라>(조갑제)고 하자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진중권)라고 하는 일은 유치해 보이면서도 진지했습니다. 다만 책을 선물한 선배의 말처럼 제가 접한 내용이 전에 알고 있던 것과 달랐다고 하기도 뭐한 것이, 사실 다 새로운 것들이었거든요. 이제 막 수능시험을 보고 대학에 입학한 제가 역사를 알면 뭐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요.
대학 졸업 이후 학회 사람들을 만나면 역사 이야기는 뒤로 하고 술 마시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는 게 전부였는데, 지난 몇 년 새 유독 역사 관련 논쟁이 많아져서 나라가 시끌시끌해진 탓에 또 신경이 쓰였습니다.
황현필의 <진보를 위한 역사>는 표지에 나와 있듯 ‘진짜 진보의 지침서 & 가짜 극우의 계몽서’를 표방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계몽하려면 계엄령 정도는 되어야 할 텐데 과연 가능할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읽어봤습니다.
어떠한 일에 대한 평가는 제각각일 수 있지만 분명한 사실을 외면하거나 왜곡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측면에서 이 책은 어느 한쪽의 입장만을 일방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수치나 다른 근거를 바탕으로 사실에 입각한 역사 해석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특정한 정치적 이념을 떠나 역사를 제대로 보자’는 것인데, 그 내용이 저들의 주장과는 다르니 편향된 것처럼 보일 수는 있겠지요. 논쟁적인 주제들에 대한 자료와 사실들이 간략하게 잘 정리되어 있으니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 생각합니다.
덧. 저는 “계몽되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습니다. 아직도 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고 사고와 표현력의 부족함을 느끼며 답답해할 때가 많거든요. 누군가의 말처럼 ‘모든 것을 알 만큼 젊지는 않다’고나 할까요. 패배적 역사관보다는 건강하고 발전적인 역사관을 가지기 위해 노력할 뿐입니다.